곰자자족

49. 우리 집에 놀러와, 언제든

기꺼이 귀찮음을 감수하는 위선자가 되어보려는 이유

2024.06.07 | 조회 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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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곰자자족입니다. 초록이 짙어진 자연의 기세만큼 힘찬 6월 맞이하고 계신가요? 저는 아이의 수족구 재발로 조금 정신없이 6월을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없다 보니 자연스레 저의 일정은 돌봄과 육아로 집중됐는데요. 하려고 했던 일들이 올스톱된 와중에 문득 깨닫게 된 것들을 적어볼까 합니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니 바람만 드나드는 줄 알았는데 사람도 드나들고 제게도 좋은 마음이 드나들던 이야기를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

낮 기온이 25도 이상 올라가는 날이 많아지면 현관문을 열어둔다. 우리 집은 구축 복도식 아파트인데 현관문과 베란다 창을 열면 맞바람이 쳐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시원한 계곡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세상이 흉흉하니 절대 문 열어두지 말라고 자주 신신당부를 하시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리 집은 괜찮아, 양 옆집들도 늘 열어두거든이라며 대범하게 말했지만 사실 나 또한 낯선 인기척이나 발자국 소리에 놀라거나 긴장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때론 현관문을 닫아두었다. 이미 계곡 바람의 상쾌함을 알아버린 나는 아무리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도 어쩐지 아쉬웠다. , 자연 바람을 이길 수가 없구나. 그때 알았다.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는데, 양 옆집의 어르신들이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따라 여는 것이었다. 우리 집만 혼자 열어두면 위험할지 모르지만 다 같이 열어두면 덜 위험할 거란 계산이었다. 대신 옆집 어르신들이 문 닫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얼른 따라 문을 닫았다. 문 열다 어르신들을 마주치면 자연스레 안부 인사를 나눴다. 현관문 앞 자연스런 만남의 횟수가 잦아지면서 나는 양 옆집 어르신들이 모두 황혼 육아를 하는 부모님뻘 되시는 분들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매일 걸어도 자꾸 걷고 싶어지는, 아이만의 즐거운 런웨이ㅎㅎ
매일 걸어도 자꾸 걷고 싶어지는, 아이만의 즐거운 런웨이ㅎㅎ

하루는 아파트 복도 끝에서 끝을 무한반복으로 걸어 다니는 아이 뒤를 쫓는데, 옆집에 사는 다섯 살 된 여자 아이가 궁금한지 현관의 접이식 방충망 문을 열고 우리를 보러 나왔다. 멀찍이 지켜보기만 했던 첫날과 달리 둘째 날에는 여자 아이도 돌 지난 아이 뒤를 따라 다니며 말을 시켰다. 그렇게 며칠 쯤 지난 어느 날, 옆집 아이는 활짝 열어둔 우리 집 현관문 방충망 문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말했다.

집에 놀러가도 돼요?”

들어오라는 말에 아이는 신발을 벗고 곧장 거실 장난감 박스로 향했다. 분홍색 장난감들만 골라내는 걸 보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색깔을 알게 됐고, 돌 된 우리 아이의 최애가 타요 자동차라면 다섯 살 여자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타니핑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복도에서 만나 노는 날이면 어김없이 마무리는 우리 집이었다. 논다고 해봐야 만 1살과 만 5살이 함께 어울린다기보다는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쫓거나 따라가는 식이었지만. 아무튼 나한테 없는 장난감이 많이 있다며 자연스레 우리 집 현관에 신발을 벗는 아이가 솔직히 매번 반가운 건 아니었다. 과자도 주고, 식혜나 음료도 주고, 사탕도 주며 친절한 어른인 양 행동했지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찾을 때까지 집에 가지 않는 아이가 조금 귀찮은 날도 있었다. 어디 갔었냐며 나무라듯 손 붙들고 데려가는 할머니에게 밥 먹고 옆집 또 놀러갈 거예요말하는 당찬 아이가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이 티가 났던 걸까. 비누방울을 불며 왜 복도에 놀러 안 나오냐는 듯이, 어쩌면 나오길 기다리는 듯이 현관 앞을 배회하던 아이가 며칠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어르신을 만났다. 생떼와 고집이 부쩍 는 아이 때문에 날마다 시끄러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런 말 마라. 다 그러면서 크는 거니 우리는 전혀 신경 쓰지 마라.”

어르신 얘기에 안도하는 마음. 아파트 이웃끼리 소음 때문에 싸움이 많이 일어난다는데 나는 참 운이 좋다,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말했다. “, OO 요즘 안 보이던데, 하원하고 저희 집 놀러 와도 되니 편하게 오라고 하세요.” 누나가 놀러오니 아이가 덜 심심하고 같이 시간 보내니 좋을 거라는 말까지 덧붙일 줄은 나도 몰랐지만, 내 입은 나도 모르게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귀찮을까봐 그런다는 말에 속마음이 들킨 것 같이 뜨끔해져 정말 괜찮다는 거짓말까지 하다니.

그 날 밤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착한 척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렇지만 또 놀러오라는 말이 백 프로 거짓은 아니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아예 왕래까지 끊고 지낼 마음은 없었으니까. 나는 하나의 노선을 정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면 귀찮음을 감수하는 쪽이 되어보기로, 이왕 뱉은 말을 지키는 쪽이 되어보기로 했다. 내 아이가 누군가의 집에 놀러가고, 같이 놀고 싶어 하는데 그 아이의 부모나 돌보는 어른이 귀찮아하거나 꺼려한다면 어떨지 생각하니 답이 쉽게 정리되었다.

내 아이가 누구에게나 환대받는 소중한 존재로 자라길 바라는 만큼 내가 먼저 그런 마음을 먹어야지. 이게 내 아이를 생각하는 이기적 다정함 혹은 한시적 다정함일지라도 나는 나의 마음을 속이면서 기꺼이 귀찮음을 감수하는 위선자가 되어볼 요량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빛에도 자라는 까닭이다. 그리고 문턱은 낮을수록 좋으니까, 그게 무엇이든.

구축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는 덕분에 누리는 나만의 행복. 맑은 하늘만큼 좋은 마음이 드나들기를.
구축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는 덕분에 누리는 나만의 행복. 맑은 하늘만큼 좋은 마음이 드나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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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께는 남겨주신 휴대폰 번호로 음료 쿠폰💌🥤을 보내드릴게요. 참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일류여성 에디터에게 남겨주셨던 질문들도 차례차례 레터를 통해 답변을 전해 드릴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앞으로도 많은 응원과 사랑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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