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

08. 너희가 내 오쏘뮬이세요

긍정적인 생각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생각하는 거예요. -이리앨 『울트라셀프』 저자

2023.06.23 | 조회 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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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은둔자'입니다. 오늘은 제가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하는 힘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누군가는 가족일 것이고 혹은 대출일 수도 있지만 ㅎㅎ 저는 덕질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일상을 지켜가게 만드는 존재는 소중한 것 같아요. 이 글이 구독자님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한번쯤 웃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간기획안을 쓰다보면 가끔 내가 천재인가?’ 생각할 때가 있다. 마치 술마시고 밤에 연애편지를 쓰는 자의 마음 같은 거랄까? 너무 술술 써지고 진짜 세상에 다시 없을 끝내주는 메시지를 너무 훌륭한 그릇에 담아내는 것 같은, 그리고 내가 그런 기획안을 제안하고 싶은 저자를 찾아냈는 것에 스스로 취하는 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런 감상은 아무리 오래 가더라도 그 기획안의 기획회의에서 무조건 무참히 깨지게 되어 있다. 제법 판매가 되는 책을 기획했던 경험이 있는 편집자가 되었지만 다음 책이 같은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 이리 재고 저리 살펴보는 기획회의에서 좋네요, 이대로 해봅시다.” 하는 기획이 사실 몇 개나 있을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스스로 지은 별명이 일희일비일 정도인 나는 갑작스레 이 일이 혹은 이 회사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집에 가고 싶어진다. (물론 여기서 집에 간다는 건 퇴근과 퇴사를 동시에 아우르는 의미다. ㅎㅎ) 그래도 별수 있나? 내 자아에는 육체가 있고 나는 나를 먹여 살려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게다가 내가 좀 많이 먹냐는 말이다. 생활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하거나 스스로 틀렸다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하고 꾸역꾸역 출근해야 하는 날들도 있다.

그런 나의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은 아무래도 덕질이다. 스스로도 일평생 덕질을 안 한 순간이 없다고 고백할 만큼 나는 늘 무언가를 좋아한다. 장르가 넓은 소위 잡덕인데, 아이돌부터 클래식 연주자, 각종 스포츠와 그 종목 선수들 심지어 최근 3~4년 정도는 한 태국 가수에게도 꽂혀있는데 내 인생 마지막 아이돌 인피니트가 인피니트컴퍼니로 돌아오는 바람에 다시 케이팝에 열광할 예정이다. 덕질의 끝판왕이라는 종교에도 꽤 깊이 심취했었으니 이정도면 덕질하기 위해 일한다.

덕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섞여 있다는 걸 안다. 특히나 아이돌 팬에게는. 그러나 나에게 덕질은 평생 가도 마주치지 못할 성향과 직업군, 나이대의 사람들을 대면할 수 있는 행운을 준다. 김이나 작사가가 결혼 혹은 아이를 기르지 않는 사람일수록 덕질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100% 동의한다. 나이가 들수록 만나는 취향의 사람이 확고해지는 만큼 그 범위가 협소해지고 새로운 세대의 사람을 만나는 건 더욱 어렵다. 운이 좋아 좋은 후배들을 많이 만나지만 혹시 그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질까 다가가는 게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덕질은 다르다. 열 살쯤 차이나는 친구와도 최애 얘기를 하면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어떤 인간관계를 맺게 되기도 하고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도 엿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걸 목적으로 덕질을 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시각을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한 내 일에서 나를 세상에 고립시키지 않는 사적인 네트워크가 생긴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이리앨 작가가 드로우앤드류와의 인터뷰에서 긍정적인 생각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좋은 점을 먼저 생각하는 건 긍정이 아니라 낙관이라고. 일할 때 늘 같은 상황에서 부정적인 면을 먼저 걱정한다고 타박도 많이 들었지만, 세상에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도 많은 나는 어쩌면 생각보다 긍정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긍정의 힘으로 여태 일했고, 앞으로도 일하게 되겠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아도, 개인의 자유 측면에서 보아도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어쩌면 실제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여러 고민에 대한 답을 직장생활안에서 찾아보고 싶다. 그게 비록 어리석을지라도. 이게 내가 생각하는 덕질의 힘이다. 내가 걷고 싶은 방향으로 나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

그래서 요즘 집중하려고 하는 건 한 가지다. 8월에 있다는 인피니트의 그 무언가(당사자들이 날짜 외에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음. 아마도 공연으로 추정)’에 내 자리가 있을 것인가! 8월까지 나를 열심히 일하게 하는 힘은 그 무언가일 것 같다. 너희가 내 오쏘뮬이세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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