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

[나의 떡] 노력보다 운이 더 빛났던 순간, 낯 모르는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떡이 더 큰 순간을 우리는 종종 모르고 넘어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2025.05.02 | 조회 162 |
0
|
일류여성의 프로필 이미지

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은둔자입니다. 지난 주 부유하는 유부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이번 주의 주제는 ‘나의 떡이 더 커 보일 것 같은 순간’입니다.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아 끙끙거리는 삶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따라해 보고 싶거나 반짝이게 보이는 순간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떠올린 아이디어인데, 과연 제게도 그런 순간이 있긴 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아빠의 어깨에 올라 타고 있는 딸> by Thomas Nast  // 사실 뉴턴의 말을 빌려 거인의 어깨에 타고 있는 모습을 AI 이미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저의 설명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너무 무서운 그림만 나와서 ㅎㅎ 저작권이 만료된 기존 화가의 그림으로 대체해봤습니
<아빠의 어깨에 올라 타고 있는 딸> by Thomas Nast  // 사실 뉴턴의 말을 빌려 거인의 어깨에 타고 있는 모습을 AI 이미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저의 설명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너무 무서운 그림만 나와서 ㅎㅎ 저작권이 만료된 기존 화가의 그림으로 대체해봤습니

저희는 외서 기획팀이 따로 없는 회사입니다. 출판사의 비율상 외서 기획팀이 따로 있는 경우가 드물긴 해서 각종 해외 도서전이 열리는 달에는 대부분의 출판편집자들이 매우 빠르게 다양한 외서를 검토하게 됩니다.(그게 비록 현재 편집 진행중인 책의 마감 일주일 전일지라도!) 분야별로 혹은 관심사별로 할당받은 외서를 검토합니다. 그리고 검토 자료(대체로 프로포절, 소개글일 때도, 샘플 원고 혹은 완전 원고일 때도 있습니다.)를 요청하게 됩니다. 

이 때는 모든 출판사가 눈에 불을 켜고 좋은 책을 찾아 달려들기 때문에(물론 좋은 책이란 기준이 회사마다 다르겠지만요) 한 책에 여러 회사가 검토 요청 혹은 계약 요청을 하기도 합니다. 좋은 책이란 것은 결국  합리적인 가격으로 저작권을 구매해서 한국 출판 시장에서 손익과 메시지 전달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책이라고 정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비슷한 책으로 계약이 몰립니다. 

제게도 이번에 그런 책이 있었습니다. 제가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외서를 마침 발견한 것이죠. 그래서 열심히 기획안을 쓰고 기획부 회의를 했는데 기획안에 이런 저런 보충 내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회사에서 판매 때문에 호불호가 있는 아이템이어서 설득에 시간이 걸릴 거라는 생각은 원래 하고 있었던 터라 회사 스타일에 맞게 기획안을 수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옵니다. 오퍼 마감 날짜가 잡혔다고요. 다른 회사에서 계약 의사를 밝히고 선인세와 인세율을 원 저작권사에 제출했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마감 날짜가 너무너무 밭게 잡힌 거예요. 팀 헤드에게 내용을 공유하고 우리도 출간 판단을 빠르게 진행해야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덕분에 야근하며 기획안 수정하고 영업부와 대표님 모시고 각각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재미있는 게, 기획부에서 조차 우리가 이 책을 잘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회의였는데 다른 회사에서 오퍼를 넣었고 출간하려면 우리도 비딩(Bidding, 저작권 관련 경쟁 오퍼에 참가하는 것을 출판계에서는 비딩이라고 종종 부릅니다.)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갑자기 기획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역시 홈쇼핑의 매진 임박 기술은 저작권 구매에도 적용이 되는 모양입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저희가 선인세와 인세율을 제시했는데 1차에서 결정이 안 납니다. 상대 출판사도 아주 비슷한 조건으로 오퍼를 넣었다고 하더라고요.(그쪽도 손익을 계산했을 때 그 이상을 쓰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2차 오퍼가 들어갔는데 저희는 인세율을, 상대방은 선인세를 조금 더 높게 써서 또다시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저자가 직접 회사 소개글을 요청했어요. 언제 설립해서 어떤 종류의 책을 냈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 책을 어떤 방향성으로 내고자 하는지 영문으로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팀 헤드와 제가 이리저리 내용을 덧붙이고 AI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소개글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나의 떡이 주제인 걸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가 저작권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그간 저희가 출간한 책 라인이 좀 더 본인 마음에 들었다고요. 어떤 의도로 자신의 책을 내고자 하는지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그래서 저희 회사에서 내는 것이 더 알맞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저자가 좋아했던 책을 낸 편집자들은 이제 이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열심히 일했던 유산 덕분에 저는 제가 만들고 싶었던 책을 얻을 수 있게 된 거죠.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에 상대 출판사가 어디였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만약 신생 출판사거나 관련 분야를 처음 출간하려는 회사였다면 이번 케이스는 확실히 제가 운이 좋아 보였을 것 같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지요. 선인세, 인세율 비슷했다는 건 수요 예측도 비슷했다는 거고 기획의 방향성도 명확한 책이었기 때문에 저 자체만 놓고 보면 딱히 제가 뭐 특출난 게 없으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히스토리라는 건 그간의 기록일 뿐 지금 당장 무언가 더 낫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어려운 근거일 수 있죠. 그래서 좀 부러운, 혹은 아쉬운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저의 최근 고민 중에 지금 있는 조직에서 더 잘 견디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는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먼저 지나쳐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유산이 회사에 있어요. 담당 편집자는 그만두었지만 당시에 함께 근무하던 사람이 팀의 헤드가 되었으니 개략적인 히스토리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큰 회사 혹은 오래된 회사가 할 수 있는 책들이 있어요. 신생 회사는 새롭고 참신한 기획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존의 무게감 있는 기획을 덧붙이려면 그 외의 다른 요소도 필요합니다. 

관련 분야에 대한 조언을 줄 전문가라든가, 그 분야의 새로운 소식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 번역가 혹은 저자, 추천가 등. 사실 히스토리라는 건 비용이나 규모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물면에서 힘을 내는 경우가 흔하죠.(저희 회사는 한동안 그 관리가 안되어서 애를 먹은 면도 있습니다. 이제 다시 관리를 시작했으니 뭐라도 되겠쥬? 😁) 

저는 아직 다양한 사람들과 일해 보고 싶습니다. 계속 노력 없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이 회사에서 다른 단점을 견디고서라도 그 장점을 활용해 보고 싶다는 건 욕심보단 목표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계속 고군분투해 보고 그 이야기들을 전해볼게요. 여러분들께도 온 우주가 돕는 행운이 돌아오길 바라며.

 

<코너 속 코너> 회사는 얼마나 개인을 괴롭게 하는가?

오늘은 코너명이 좀 다르죠? 저에게 진짜 ‘떡’과 관련된 황당한 일이 있어서 공유하려고요. 제가 최근에 낱개로 포장된 찹쌀떡을 좀 많이 선물받았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간식으로 먹으려고 가지고 갔어요. 드시고 싶다는 분들도 좀 드리고 낱개에 각각 이름을 써서 냉동실에 넣어두었습니다. 굳이 낱개에 각각 이름을 쓴 이유 자체가, 저희 탕비실의 개인 물품이나 먹을거리 등이 묘하게 종종 없어지곤 했거든요. 다들 긴가민가 하는 정도로? 그런데 제 그 떡이! 비닐 봉지에 넣어둔 거의 5개가 넘어가는 떡이 통째로 없어졌답니다?? 종종 냉장고 청소를 해 주시는(너무 감사한 분, 그 분께는 언제든 꺼내 드셔도 된다고도 해두었지요. 😭) 동료가 계셔서 혹시 치우다 뭔가 착오로 없어졌나 싶어서 여쭤 봤더니 안그래도 2주 전쯤부터 아예 보질 못했다며, 제가가 다 먹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이번에도 누군가 가져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간 없어진 건 그래도 테이블 등 바깥에 남아 있는 걸 가져가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아예 냉동실을 열고 가져간 거예요! 그분도 황당하다는 의견을 주셨고요. 달라고 하면 안 드릴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통째로 가지고 갔을까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동료분들이 그냥 적선한 셈 치라는데 아니 적선을 안 했는데 어떻게 적선한 셈을 치냐고요!🤬 21세기에도 이런 일을 겪다니 너무 황당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회사에 다니고 보니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거예요. 비율이 적지도 않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은 대체 왜 그렇게 사는 걸까요? 저희 회사에 긴가민가 하던 분들도 아마 없어진 게 맞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런 사람들과 함께 조직 생활을 해야 하다니, 회사란 개인에게 너무 해롭지 않습니까? 😂😭 가져간 물건이 별 거여서가 아니라 그 행투리 때문에 너무 계속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전 용서보단 저주를 걸기로. 누가 그걸 가져가서 혼자 먹었든 나눠 먹었든 먹는 내내 체했으면 좋겠어요. 시간 약속 촉박할 때 꼭 눈 앞에서 버스나 지하철 놓쳤으면 좋겠고요, 문지방만 있으면 발가락 찧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의 이번 외서 계약처럼 실력이 비등할 때 운이 필요하다면 그 운은 절대 그 사람을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씩씩) 대신 늘 타인에게 너그러운 사람들에게는 그에게서 빼앗을 행운이 모두 돌아가면 좋겠어요. 출근길엔 버스든 지하철이든 타자마자 앞에서 앉을 자리가 나고, 먹고 싶은 음식은 마지막 남은 1개라도 꼭 사거나 얻을 수 있고, 티켓팅할 땐 늘 원하는 자리를 얻을 수 있기를! 그래야 세상이 좀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 그런 의미에서 저희 레터를 읽어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는 구독자님께는 행운 가득한 날들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이번 주 일류여성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만족스럽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더 깊고 나아진 일류여성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일류여성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