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수상한 시절이어서 2024년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고, 사실 아직은 2025년이 시작한 것도 잘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니 새해의 바라는 점도 좋고, 새해에 일어났으면 싶은 가상뉴스도 좋겠다고 레터의 주제를 정해보았다. 나도 좋다좋다, 해보자 해보자 했다. (원래 일류여성 회의 때 뭘 하지 말자고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어려울 것 같으면 천천히 해보자고 하는 편이에요. 두 에디터의 상상력이나 기획력이 항상 저를 앞서고 또 저도 제 평생 제가 해보지 않은 것들을 이들과 해보면 좀 든든한 뒷배가 있는 느낌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레터를 쓰려고 앉으니 정말 쓸 말이 없다. 작년 빙고판 1년 실천 현황을 설명하면서도 말한 적이 있는데 어차피 내 인생은 계획이나 바라는 대로 된 적이 거의 없다. 이건 내 실천이나 노력, 열정이 부족할 때도 있었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다가온 때문일 때도 있었지만 어쨌건 결과적으로는 늘 그랬다. 좀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안하던 빙고판도 해보았지만 건강 이슈가 덮치니 이것도 무용지물. 그래서 올해는 그저 다가오는 내 일상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정도의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가 겨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이 레터는 예약 발행 되었습니다. 😆) 이미 그 바람도 꺾였다. 나는 정말 유연함이라고는 없는 사람, 그렇다고 딱히 계획적이지도 못해서 플랜B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또 일하다가 여실히 느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마다 내 하소연을 들어주고 같이 화내주는(! 이게 포인트다 😄) 지인과의 약속을 잡아두고서야 불안증세가 가라앉았다. 그치만 그것도 뭐 나인데 어쩌랴, 되는 대로 살자 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진짜 진짜로 너무 바라는 게 없는 것이다.
그럼 대체 레터를 어떻게 써야 하지? 내가 레터를 쓴 이래 제일 짧은 글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고민을 수십번 했다. (그러나 보셔서 아시겠지만 쓸 말이 없다는 말을 무려 세 문단에 걸쳐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짧게 쓰지 못하는 병에 걸려버렸어요.😁) 그래서 내가 내 인생에 바라는 것은 없어도 새해를 핑계삼아 누군가에게 축복을 빌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나의 최애.
15년 활동할 동안 팬들이 보는 곳에서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나의 최애는 2024년 팬미팅에서도 콘서트에서도 두 번이나 울었다. 심지어 콘서트에서는 거의 40분 가량을 훌쩍였다. 물론 그 안에는 감사나 안도, 추억에 대한 반가움 같은 긍정적 감정도 있었으나 팬들이 아는 힘듦, 알지 못하는 어려움 같은 것도 있었다. 나는 최애가 울 때 따라 울지 않는 방법 같은 건 모르니까 같이 펑펑 울고, 콘서트를 함께 보고 있는 주변 다른 팬들에게도 휴지 나눔 해가며 서로 눈이 띵띵 부은 걸 보고 웃었는데 그러고 나니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최애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보여주듯 어른이 되면 단색의 감정을 갖기는 어렵다. 긍정의 감정만 섞인 순간을 마주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부정적인 감정 같은 건 하나도 겪지 않고 마냥 즐겁고 환희에 찬 순간을 마주하면 좋겠다고.
근데 문제는 그렇게 되려면 혼자만 행복하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무탈하고 행복해야지. 주변 사람이 불행하면 결국 자신도 불행해지니까. 그래서 생각하니까 또,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려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무탈하고 행복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 중에는 그의 팬도 있으니까 그럴려면 나도 행복해야 하고, 내가 행복하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행복해야 하고…. 그래서 나의 2025년 소원은 최애 팀(인피니트, infinite, 무한한, 한계가 없는)의 이름처럼 무한하게 앞으로 걸어나가는 등비수열같은 행복의 확장이 되었다.
바라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면서 너무 거창한 소원이 되어버린 것 같긴 하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희망 뉴스인 걸? 그리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인생은 원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도 있고,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바위에 결코 대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계란에서 나온 닭이 그 바위를 넘어서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도 한다(영화 <변호인>에 나온 대사 인용, 정확한 워딩은 아니었지만 이런 의미의 임시완 대사가 있었다는 기억이 나네요. 현재의 여러 상황도 더디고 느리지만 결국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겠죠). 그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나의 최애가 행복하고, 최애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최애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2025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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