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혹자는 개인주의가 팽배하여 이웃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요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다. 그러나 저 말은 결국 한 인격체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한 마을’ 만큼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요즘 나는 그 말을 체감한다.
16년간 물건을 쌓아두기만 한 집을 이사 가는 것 마냥 정리하다 보니 그동안의 기록물들이 눈앞에 쏟아진다. 그중에는 내가 만들어 온 예쁜 쓰레기들이 있다. 부모님이 버리기 아까워하여 여전히 집 어딘가에 포진해 있는, 어린 내가 접은 색종이와 같은 것들 말이다. 어린 내가 쓴 일기와 글짓기와 보고서들이 있다. 다시 읽어보니 생각 없이 컵볶이만 먹을 것 같았던 초등학교 6학년의 나는 상당히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사유를 하는 어엿한 어린이였다. 어린 날의 기록물들을 보며 현재의 나는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였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훨씬 더 잘 알고 있었고, 이건 그 어린이가 순진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순수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기록물들 중에는 부모님의 일기장들이 한 선반 가득히 있다. 그들이 나와 비슷한 나이에 했던 생각들과 고민들. 그런 것들을 엿보며 나는 내가 참 단단한 사랑의 기초에서 돋움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때의 부모님은 단단함과는 거리가 먼,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하루하루가 불안한 청춘이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그 글들은 더 단단하다. 그들의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나에게 이러한 단단한 기반이 허락되었음을 안다. 그 기록물들을 통해 나는 내가 존재하기 이전 나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내가 어떠한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기록물들 중에는 나에게 수신된 편지들이 있다. 오래전부터 나에게로 부쳐진 모든 편지들은 죄다 내 방 책상 아래 어떤 상자에 보관되어 있다. 오늘 그 편지들을 정리하고 복기하며 나는 내가 부모님과 가족한테서만 나를 안정케 하는 사랑을 받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는 사랑을 받고 있었다. 물론, 아주 당연하게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감정만을 받으며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나는 적의도, 시기도, 악의도, 미움도 어쩌면 더 많이 받았다. 하지만 결국 남는 건 편지고 기록물이며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메아리다. 나에게 편지를 한 자 한 자 써 준 사람들 중에는 내가 더 이상 연락하고 지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 편지에 적혀 있는 것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닌 사람들도 있다. 가족들의 편지도, 쪽지도, 누군가의 이름 없는 편지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이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그들에게로부터 나는 그 편지에 적힌 글자만큼의 사랑과 진심을 받았고, 그 사랑은 오늘의 나를 만드는 데에 적어도 벽돌 하나만큼 일조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를 키운 마을은 나의 모든 기록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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