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지는 삶

이탈리아 여행 이야기(14) 여행의 마지막 - 우리가 기억하는 로마_월요

2024.12.16 | 조회 23 |
0
|
이상한 요일들의 프로필 이미지

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나라가 이리 어려운데 한가하게 여행기를 써도 되나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일단 계획한 것을 마쳐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탈리의 여행의 마지막 이야기로 여행기를 마무리한다.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호텔,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호텔의 아침 식사 이야기다.

많은 주부들이 그렇겠지만 여행 중에 호텔에서 눈을 떠서 우아하게 식당으로 내려가 먹을 수 있는 조식 서비스는 너무나 감동적이다. 부엌에 들어가 전날 건조대에 엎어놓은 그릇을 정리하고 도마를 꺼내고 가스불을 켜고 수저를 놓지 않고도 – 아니 그 대신에 – 방 키만을 챙겨서 커피향이 가득한 식당으로 내려가 식구들이 다 같이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호텔 조식을 먹으면서도 매번 만족했다. 보통 샐러드와 과일이 구색을 맞추고 있고 이탈리아의 여러 빵들이 버터와 쨈과 함께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계란 요리와 햄 그리고 치즈 한두 종류, 디저트로 보이는 케이크나 머핀 등의 단 빵, 요구르트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울리는 이탈리아 커피. 관광지 식당의 물가가 사악한 수준이었기에 호텔 조식이 되려 싸게 느껴졌다.

로마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잡은 숙소는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곳이었다. 작은 쪽문 같은 호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데스크가 나오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하얀 판석에 둘러싸여 있는 안쪽 조그마한 정원이 나왔다. 그 정원을 둘러싸고 방이 있는 형식이었다. 그러니까 가정집이라고 해도 아주 부잣집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곱슬머리를 부채처럼 펼치고 있던 데스크 직원은 아주 말이 많은 아주머니셨다. 우리 앞에 한 팀을 체크인 하는데 도저히 끝날 기미가 없어 보였다. (한국 사람으로는 참 이해가 안 되는 업무태도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자 우리에게도 역시 내일이 자기 휴가라는 둥 근처 어떤 곳이 좋다는 둥 필요한 정보와 알아도 별 소용이 없는 정보를 섞어가며 자세하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셨다. 호텔에 엘리베이터가 없었지만 우리 가방은 2층까지 옮겨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식당이 작기 때문에 아침식사를 위해서 30분 간격으로 시간을 미리 정해야 한다고 하셨다. 보통 호텔은 아무 때나 와서 먹어도 되기 때문에 좀 의아하기는 했지만 여기는 그런가 보다 하고 시간을 정했다.

그렇게 가방을 맡기고 로마 관광을 마치고 (그러니까 박물관도 보고 아이스크림집도 발견하고) 방으로 들어와 보니 안마당이 내려다보이는 방에 짐이 옮겨져 있었다. 남편은 마지막 호텔이기 때문에 나름 평이 좋은 호텔로 예약한 것이었는데 호텔 규모나 방이 생각보다 크거나 좋지 않다며 실망스러워했다. 게다가 작은 호텔이라 방 외에는 편의시설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래? 그런데 평이 좋았다면 혹시 조식이 좋았던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는데 정말 맞는 생각이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왜 시간을 정해 조식을 제공하는지를 깨달았다. 식당 안에 있는 4인용 테이블이 오직 두 개뿐이었던 것이다. 길쭉한 모양의 식당 안쪽은 주방이었고 두 개의 하안 테이블이 금색 매트와 남색 헝겊 냅킨이 정갈하게 놓인 채로 앞뒤로 벽에 붙어있었다. 그 두 테이블만으로도 공간이 가득 찰 정도의 크기였다.

볼이 빨갛게 상기된 친절한 눈빛의 아주머니가 우리를 안쪽 테이블로 안내해 주셨다. 호텔 조식은 당연히 뷔페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정찬 코스처럼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주방에 한 분의 직원이 더 계신 것 같았다. 버터와 잼이 곁들여진 따끈한 빵이 나오고 신선한 샐러드가 나왔다. 아주머니는 늘 웃음을 머금고 계셨는데 커피 주문을 위해 질문을 하실 때도 수줍은 듯이 조그만 목소리로 이야기하셨다. 영어에 서툴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말수가 적어 보이는 이탈리안이 아주 신기하게 느껴졌다.

막 부친 듯한 여러 재료가 들어간 바삭한 계란 부침 같은 계란 요리가 나오고 햄과 치즈가 나왔다. 조용한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제공해 주시는 음식을 우리 역시 조용히 감탄하며 먹었다. 배가 부르다고 생각했는데 디저트인 듯한 파이와 케이크가 나왔다. 더불어 예쁘게 담긴 과일과 요구르트가 나왔다. 그야말로 뭐가 자꾸자꾸 나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우리는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연신 맛있다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남편은 방에 돌아와서 다시 팁을 챙겨 내려갔다. 아주머니가 아주 좋아하셨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아침은 에스프레소에 크루아상 정도로 간단하단다. 하지만 우리의 이탈리아 마지막 아침은 따뜻하고 맛있고 풍성하고 감동스러웠다.

로마는 대단한 도시다. 화려한 건축과 온갖 예술작품이 가득한 곳이다. 더불어 우리 가족에게는 맛있는 젤라또와 또 상냥하고 아름다우셨던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하고 풍성한 아침으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첨부 이미지

 

Hotel Vespasiano - 바티칸에서 가깝고 상냥한 아주머니가 아침을 차려준, 올드브릿지 젤라또와 두 블럭 거리의 아름다운 호텔

Via Vespasiano, 49, 00192 Roma RM, 이탈리아

 

* '이상한 요일들(240days)'은 건강한 삶을 짓고 나누는 커뮤니티 꼼(comme)안에 있는 글 쓰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카페: https://cafe.naver.com/societyofcomme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comme_verse/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ommejirak

 

 

* '이상한 요일들(240days)'은 자율 구독료로 운영됩니다. 혹 저희를 응원하시고픈 분이 계신다면 아래 '댓글 보러가기'를 통해 본문링크에 접속하셔서 '커피 보내기'를 클릭해 주시면 된답니다. 보내주신 구독료는 뉴스레터를 운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드립니다. 

 

* '이상한 요일들'은 어떤 형태의 제안도 열려 있습니다. 관련 문의는 reboot.keem20@gmail.com 통해 문의 주세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이상한 요일들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4 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메일리 로고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