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닿는 길

찍을 후보 없음_목담

2024.04.18 | 조회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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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4월 10일 선거일이다. 살면서 여러 번 투표를 하게 되지만, 그중에 정말 내가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한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특히 그것이 권력과 책임이 집중되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지자체장 선거일 경우엔?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최악이다. 역사적으로 유례없이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현 정부도 그렇지만, 그것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야당도, 그리고 그런 정부에 맞서 제대로 싸우지 못한 진보 정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도 ‘울며 겨자 먹기’로 투표소에 가야 한다는 것이 참 슬프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365일 중에, 딱 ‘하루’, 국민이 주인인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온 관심사와 매스컴이 국민의 표심에 쏠려 있고, 적어도 투표 행위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몇 천만분의 일인 내가 뭔가를 결정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루’ 주인이라는 말은 정치인들에게는 틀린 말이 아니다.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364일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었다가 그 하루 만큼은 자신의 운명을 가름하는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금 전에 출구조사가 발표되었는데, 국민들은 현 정치판이 형편없지만, 최악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현 정부에 대해 심판을 택한 듯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달갑지가 않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어떤 정당도 어느 누구도 뽑을 사람이 없는 선거에서 나는 나의 권리를 행사하는 ‘주인’이기보다 나의 권리를 제한당하는 ‘종’이 된 기분이다.

함께 일하는 40대 후반의 동료는 마포에 사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찍고 싶은 후보가 생겼다고 했다. 그 후보가 나의 지역구에서 나왔다면 나도 그런 기분을 느꼈을지 모른다. 물론,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찍었다고, 그가 무조건 되는 것도 아니요, 그가 당선되었다 해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어쨌든 나의 정치적 바람과 ‘결’이 같은 정치인이 후보로 나와서 기꺼이 투표를 할 수 있게 하는 경험, 그것은 정치가 마땅히 해주어야 할 의무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공약이 맘에 들어도 실현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하면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선거에서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또는 차악을 선택하게 만드는 정치공학으로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 정당이나 약자 정당의 정책은 늘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이 되어 버린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기득권 정당들은 ‘정치’를 바꾸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정권’의 순번을 바꾸는 데에만 목숨을 걸었다. ‘정치’를 바꾸고 국민의 ‘삶’을 바꾼 것은, 옳긴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공약들이었고, 이것들은 늘 제도권 밖의 오랜 투쟁과 함께 이루어졌다. ‘토지공개념’이나 ‘금융실명제’가 그랬고, ‘무상교육’이나 ‘무상급식’이 그랬으며, ‘이자제한법’ 같은 것들이 그랬다. 주류 경제 질서를 꽉 잡고 있는 세력들이 허용하기 쉽지 않은 정책들이 결국은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따라서 우리 삶을 변화시킬 정치는 제도권 안에서 적당히 타협해서 얻어질 수는 없다. 이를 위한 투쟁은 기본이며, 부의 재분배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또한 현실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이 가져올 새로운 사회에 대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다.

얼마 전 모임에서 한 여성 주권자가 제안한 발상이 인상적이었다. 투표용지에 ‘찍을 후보 없음’ 칸을 만들면 정말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이 의견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제도 안에 갇힌 사고의 틀을 넘어서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

‘찍을 후보 없음’ 칸이 ‘카운팅’됨으로써 그냥 버려지는 기권이나 사표와는 달리 유권자의 의사가 표현된다. 한 발 더 나아가 선거에서 ‘찍을 후보 없음’이 과반수 나오면, 해당 선거구 후보들은 모두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각 정당들은 후보들을 거둬들이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검증된 후보들을 다시 출마시키는 것이다. 그럴 일은 드물겠지만 만에 하나 두 번째에도 ‘찍을 후보 없음’이 과반수 나온다면? 그 정당들은 당해 선거에는 출마하지 못하는 것으로 하자! 적어도 잘못된 정치를 해서 그 책임을 받아 마땅한 정치 세력들이 다시 뽑아달라고 후보를 내고, 심지어 당선되는 이 기막힌 정치판을 조금이라도 쇄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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