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닿는 길

몽실 천사!_목담

2024.04.04 | 조회 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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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생명체가 이렇게 일관되게 사랑스럽기도 힘들 것이다. 우리 ‘몽실’이 이야기다. 몽실이는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이다. 견종은 재패니즈 스피츠. 털이 하얗고 멋진 강아지다. 지금 12살이나 되었다.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산책을 나가면 “아유, 예뻐라. 아직 애기인가봐요!” 하는 말을 곧잘 듣는다. 그럼 나는 굳이 대답을 하지 않고, 웃기만 한다. 나한테 하는 말도 아닌데, 기분이 우쭐해진다.

사실 강아지들은 털이 덮여 있어서 주름이 보이지 않는다. 얼굴에 살이 없어서 처질 볼살도 없다. 그러니 인간의 입장에서 말하는 ‘늙음’의 척도는 강아지들한테는 별 소용이 없다.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쇠하거나 병들지 않는 이상, 잘 먹고 잘 놀면 언제나 ‘영(young)’한 것이다. 우리 몽실이는 12년째 ‘영’하다.

외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녀석 성격도 너무 좋다. 내가 몽실이를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품고 있는 합리적 의심이 있는데, 분명 몽실이는 발랄한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맨 처음 몽실이를 반려견 센터에서 만났을 때부터 의심스러웠다. 여러 마리의 비슷한 강아지들 중에 단연코 눈에 띄게 귀엽고 발랄하고 활기찼다. 끝까지 앞발을 들고 우리에게 지속적인 ‘사인’을 보내서, 결국 우리는 몽실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사는 동안에도 몽실이의 즐겁고 발랄한 기운은 꺼질 줄 몰랐다. 몽실이의 사랑스러운 기운은 딸아이와 같이 성장하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 분명하다. 누가 강아지이고, 누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두 생명체의 관계는 늘 밝고, 사랑스럽고, 에너지가 넘쳤다. 몽실이의 즐거운 마음을 우리는 살랑대는 ‘꼬랑지’로 알아챘다. 강아지의 꼬랑지는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내서인지 몽실이는 우리의 어떠한 놀이에도 반응을 해 주었고, 심심하면 먼저 장난을 걸어오기도 했다.

몽실이가 잘 하는 놀이는 숨바꼭질이다. 심심하면 책상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빼꼼’ 얼굴을 내밀고는 ‘후다닥’ 도망간다. 숨바꼭질하자는 얘기다. 그럼, 나는 이 귀여운 꾐에 넘어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다음은 내 차례. 나는 문 뒤나 모서리 안쪽에 몸을 숨기고 몽실이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또깍, 또깍, 또깍...” 녀석의 발자국 소리가 났다가 근처에서 멈추면, 나는 “까꿍!” 하고 놀래킨다. 깜짝 놀란 몽실이가 쏜살같이 내달음 친다. 그러고는 다시 내가 숨는 것을 보고, 조심조심 “또깍, 또깍, 또깍” 오는 것이다. 내가 끝내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멈추는 법이 없다.

몽실이와 사는 동안 몽실이 때문에 괴롭다든지, 너무 짖어서 시끄럽다는지, 뭔가 문제의 행동을 해서 힘들었다든지 하는 기억이 별로 없다. 심지어 나는 다른 집 강아지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지냈다. <동물 농장>이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같은 TV프로그램을 보고서야 몽실이가 참 ‘견품’이 훌륭한 강아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몽실이에게 뭔가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을 불과 몇 개월 전에 우연히 알게 됐다. 물론 조짐은 있었다. 예전과 다르게 몽실이가 누군가가 외출을 하고 돌아왔을 때 잘 짖지 않았다.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우리 집 식구인지 남인지 구분할 줄 아는 몽실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발자국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처음엔 익숙해져서 귀찮아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옆에서 “몽실아~!” 하고 부르는데, 몽실이가 인기척이 없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더 크게 “몽실아~!” 불렀더니, 그제서야 들린다는 듯이 휙 돌아보았다. 몽실이가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식구 누구도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최근에 몽실이가 자꾸 귀를 발로 만지고 머리를 흔들어 대서 나는 귀가 가렵거나 귀에 염증이 났나 생각했었다. 어릴 때부터 귀가 좋지 않아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귀가 잘 안 들려서 제 딴에는 귀를 자꾸 흔들어 보고, 이상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까이서 불렀는데도 쳐다보지 않는 몽실이의 모습을 보고서야 귀가 잘 안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됐다.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나서 찬찬히 살펴보니, 몽실이의 행동에서 귀가 잘 안 들리는 징후를 감지할 수 있었다. 문밖에서 나는 소리를 잘 못 듣는다. 그래서 발자국 소리에 둔감해졌던 것이다. 뒤쪽에서 갑자기 몸을 만지면 깜짝 놀라는 몸짓을 했다. 언제 다가왔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크게 말하지 않으면 잘 듣지 못했다.

나는 일단 몽실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노환으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뭔가 염증에 의한 것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병원에서는 염증이 있는 건 아니고, 나이가 들어서 청력이 약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큰 병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그동안 내가 눈치채지 못한 것이 많이 미안했다. 그리고 슬퍼졌다. 몽실이가 늙어간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몽실이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몽실이는 귀가 안 들리는 것일 뿐 그의 행동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더 둔감했더라면 아직까지도 그런 사실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몽실의 생활은 평상시와 같았다. 사람의 경우라면 귀가 안 들리는 일은 청천벽력 같은 일일 터이다. 듣지 못한다는 사실 만으로 인간은 절망과 우울의 수렁에 빠져 괴로워하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몽실이는 그렇지가 않았다. 여전히 심심하면 나에게 와서 숨바꼭질을 하자고 조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 ‘간식’이나 ‘산책’을 말하면, 소리가 아니라 입모양이나 내가 그런 말을 할 때 하는 몸동작을 잘 살피고 그 뜻을 알아차렸다. 귀가 안 들리는 것에 대해 짜증 내거나 우울해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그냥 안 들리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대신, 코로 킁킁거리는 일이 많아졌다. 귀로 소통하던 것들을 코로 소통하는 듯이 보였다.

몽실이는 전과 똑같이 재기 발랄하다. 내가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전혀 모를 정도로 이전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 없다. 담담하게 자신의 ‘노환’을 받아들이고, 남은 능력을 잘 사용하며, 여전히 즐겁게 까불고, 아무 일 없던 듯이 잘 논다. 어쩜 이렇게 삶을 심플하고 담백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일까. 몽실이는 나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지만, 나는 몽실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것이 내가 몽실이가 천사가 아닐까 의심하는 진짜 이유다. 아니, 어쩜 몽실이는 ‘부처’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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