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사생활

아들과 단둘이 스페인 여행 6_자날이모

2024.02.14 | 조회 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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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여행을 갈 때마다 제가 갈 여행지에서 열리는 좋은 공연이 있는지 조언을 구하는 클래식 마니아 언니가 있는데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자마자 그 언니께 전화를 드렸어요. 저는 공연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기 때문에 클래식에 조예는 없지만 클래식 공연 보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일정도 알려드리면서 좋은 공연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래서 추천받은 것이 리세우 대극장에서 열리는 <투란도트> 공연이었답니다. 

 푸치니나 오페라 <투란도트>는 몰라도 '네순도르마(Nessun dorma)' 혹은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노래를 들어보신 분들은 많으실 거예요. 저는 젊은 시절 클래식 공연 영상을 틀어주는 카페에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가사를 몰라도 이렇게 큰 감동을 주는 노래가 있구나 하는 걸 느꼈었답니다. 물론 파바로티의 괴물 같은 노래 실력 때문에 더 감동받은 것도 있지요. 지금도 테너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고 싶을 때 즐겨 부르는 노래라서 오페라 곡들 중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노래이기도 하고요. 클래식 공연에 그닥 흥미가 없는 막내가 오페라를 보러 가자는 저의 권유에 쉽게 설득 당한 이유도 바로 이 노래 때문입니다. 많이 들어본 노래이고 워낙 곡이 좋아서 한 번쯤 들으러 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나 봐요. 이번 여행은 막내의 의견을 무조건 존중하기로 했기 때문에 막내가 싫다고 하면 혼자 보러 갈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참 다행이죠?

기념품 폭풍 쇼핑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와 잠깐 휴식을 취한 우리는 공연 관람용 복장으로 나름 치장을 하고 다시 전철을 타러 나왔어요. 마침 카사 밀라에 예쁜 조명이 켜져 있길래 기념 사진을 몇 장 찍었죠. 어느새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더 오래 눈에 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리세우 대극장 앞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관객들이 입장하고 있었어요. 들어가기 전에 인증숏은 빼놓을 수 없어서 각자 하나씩 찍고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로비와 중앙 계단의 크리스마스 기념 장식이 우리를 먼저 반겨주더군요. 공연도 보기 전에 살짝 들뜨더라구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간 카펫이 깔린 중앙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길래 우리도 따라 올라갔어요. 그랬더니 공연 전에 가벼운 음료나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홀이 나왔는데 궁전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장식이 아름다운 홀이었어요. 티켓 옵션 중에 스낵을 함께 구매하는 옵션이 있었거든요. 그 광경을 보니 돈을 좀 더 쓸 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됐어요. 괜히 목이 마른 것 같은 기분도 들었구요.

아쉬운 맘을 달래며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예전에 지어진 유럽의 오페라 극장들은 금칠한 곳이 많아요. 리세우 대극장도 당연히 금칠이 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었지요. 그런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금빛이었다고나 할까요? 천장까지 아주 노오란 금칠이 두텁게 도배되어 있더군요. 원래는 1847년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1997년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1999년에 재건축해서 그런지 금빛이 더욱 선명한 느낌이었어요. 막내랑 둘이 눈이 마주쳤는데 '옹~'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더군요. 금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가보셔야할 곳이예요.

10년 전쯤 TV에서 이탈리아였는지 어디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투란도트>를 야외공연하는 걸 보고 완전히 반해서 죽기 전에 유럽에 가서 꼭 한번은 봐야겠다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무대 장치의 규모와 화려함이 어마어마했던 기억이 나요. 의상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래서 야외극장은 아니지만 대극장에서 하는 <투란도트> 공연이라 하니 좀 비싸도 망설임 없이 티켓팅을 한 거죠. 특히 리세우 대극장이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게 큰 오페라 극장이라고 하니까요.

역시 기대대로 무대 장치와 등장인물들의 규모, 그리고 의상의 화려함이 라스베이거스 공연 못지않더군요. 커튼콜 사진밖에 없어서 아쉬워요. 1,2막의 무대들이 훨씬 크고 화려했거든요. 그리고 가수들의 노래 실력과 오케스트라의 연주 수준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연주자들만이 공연할 수 있는 극장이니까요. 막내는 노래나 연주도 좋았고 무대가 바뀔 때마다 보는 재미가 있어서 한 번도 졸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얼마나 기대했던 공연인데 저는 어이없게도 중간중간 많이 졸고 말았네요. 공연 시작도 전인데 이미 공연장 구경만으로도 피곤한 느낌 아세요? 사실 낮에 폭풍 쇼핑하느라 제가 많이 피곤했나 봐요. 쌀쌀한 데 있다가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니까 더 나른해진 것도 있겠지요. 1막 중간부터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라구요. 졸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는데 맘대로 안되더라구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네순도르마>는 잘 들었다는 거죠. 3막 첫 곡이었거든요. 아~~~진짜 진짜 속상해요.

속상하니까 속도 더 허하더라구요. 러닝타임이 3시간짜리라서 꽤 늦은 시간에 공연이 끝났어요. 우리가 묵었던 호텔 옥상 라운지바가 유명한 곳이라 저녁은 거기서 먹기로 했었는데 라스트 오더 시간이 지나버렸더라구요. 음료는 가능하다는데 배가 고파서 안되겠더군요. 지금도 4박이나 했는데 호텔 라운지바를 못 가본 건 많이 후회되네요. 거기서 바라보는 뷰가 정말 좋다는데 말이죠.

막내가 마침 파이브 가이즈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가보자고 했는데 다행히 그 시간에 문을 열었더군요. 결국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프랜차이즈 햄버거로 때웠네요. 맛은 있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오렌지 환타를 사서 마시니 공연을 완전히 감상 못한 속상한 마음도 조금은 달래졌구요. 아무튼 다음에 공연을 보러 갈 때는 푹 쉬고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이제 몸이 제 맘과는 달리 더 이상 젊지 않으니까요.

유럽은 어디가 됐든 클래식 공연이 열리는 공연장은 건축물 자체로도 화려하고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티켓값도 우리나라에서 보려면 최소 1.3~1.5배 정도 더 비싸게 주고 봐야 하는 좋은 공연들이 많기 때문에 이왕 유럽까지 같다면 공연장 구경도 하고 수준 높은 공연도 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를 놓치면 아까운 것 같아요. 여러분, 바르셀로나에 가시면 카탈루냐 음악당이든 리세우 대극장이든 가셔서 공연 하나는 꼭 보고 오시길 추천드려요. 그냥 눈으로 즐기는 것도 좋지만 공연을 위해 지어진 건축물들은 그 안에서 열리는 공연을 봐야 그 건축물의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되니까요.

우리는 다음날 아침 체크아웃 시간이 12시라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카사바트요 내부를 관람하기로 했어요. 공식 오픈 시간 전에 먼저 들어가서 감상할 수 있는 Be the first 티켓을 예약했죠. 8시 30분부터 입장할 수 있어서 관광객들이 붐비지 않을 때 조용히 감상하면서, 옥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예약했는데 새벽부터 보슬비가 내리는 바람에 일출 감상은 물 건너가버렸죠.

그래도 안 보고 왔으면 후회할 뻔했어요. 건물 자체도 정말 멋졌지만 태블릿 PC로 해설도 듣고 증강현실 화면으로 바트요 일가가 살던 당시의 생활을 엿보거나 가우디가 이 건물을 지을 때 구현하고자 했던 생각들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면서 보니까 감동적이더라구요. 바다 빛깔 타일 벽이 중정을 중심으로 빙 둘러져 있는 아름다운 건물 곳곳에 태블릿 PC를 갖다 대면 해파리가 둥둥 떠다니는 풍경이나 고래나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가구가 다 빠져서 텅 빈 공간도 태블릿 PC를 통해 보면 사람들이 살고 있던 옛날 모습이 어땠는지 보여주더군요. 현실과 가상현실을 넘나들며 카사바트요의 숨은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가우디가 '직선은 사람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고 했다죠. 카사바트요 내부의 디테일들을 보면 가우디가 건축물에 곡선의 미학을 어떻게 천재적으로 구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구불거리는 벽면, 나선 모양의 계단들, 문의 모양, 천정 장식, 손잡이, 의자 하나 하나까지 기능적으로 피치 못하게 직선을 써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곡선으로 만들었는데 디테일이 워낙 고급스러워서 모두가 다 예술작품 같았어요.

그리고 독창적인 예술성을 유지하면서도 가우디가 건물의 환기나 배수에 얼마나 신경을 쓰면서 설계했는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겠더라구요. 가우디가 위대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건축가로도 인정받는 이유겠지요.

 마치 공룡의 척추뼈를 연상시키는 계단들도 공룡 뱃속을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복도도 직접 걸어 다니면서 보면 가우디의 예술성과 천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어요. 심지어 하녀들의 방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더군요. 

지붕의 갖가지 장식과 굴뚝들도 멋졌죠. 날씨가 좋아서 해가 났다면 옥상의 멋진 뷰도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흐린 날씨라 뷰가 조금 아쉬웠네요.

입장하자마자 볼 수 있는 가우디 돔은 가우디가 어린 시절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순간을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곳인데 그걸 모르고 보면 멋지긴 한데 음향이나 분위기가 살짝 무서워요. 집 안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컨시어지의 방도 완전히 복원되어서 구경할 수 있었는데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장치를 해두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내부 관람을 다 끝내고 지하로 내려가면 세계 최초로 시도된 360도 체험형 미디어 아트 작품 <가우디의 마음 속에서>라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뉴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의 작품이라고 하네요. 360도로 거울이 둘러쳐진 방에 들어가면 처음엔 어지럽기도 하고 이상해요. 그런데 영상이 시작되면 정말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넋 놓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게 됩니다. 

카사바트요 내부 관람 티켓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저는 가능하다면 블루나 실버보다는 골드티켓을 선택하시길 추천드려요. 몇 만원 더 비싸긴 하지만 자주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어차피 보실 거라면 기다리는 시간 없이 더 많은 공간을 다양한 방법으로 안내받으면서 감상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서요. 물론 저처럼 아침 일찍 시간이 나시면 Be the first 티켓도 나쁘지 않구요, 오후 늦게 방문하시는 분들은 매직나이트 티켓 옵션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내부 관람 후에 옥상에서 공연도 보고 음료도 마시면서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대신 겨울에는 하지 않으니 참고하세요.

카사바트요에는 기념품 숍이 내부에 하나, 출구 근처에 또 하나가 있는데요, 기념품들의 퀄리티가 좋고 일반적인 기념품 말고도 카사바트요 내부 장식에 쓰인 문 손잡이나 가구 같은 인테리어 용품들의 복제품도 팔고 있어서 천천히 둘러보시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참, 여러분! 기념품 사실 때도 택스 리펀 서류 받는 것 잊지 마세요.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지역에 따라 도시세를 내야 하는 곳들이 의외로 많아요. 바르셀로나도 그런 도시 중 하나예요.

선불로 받는 곳도 있지만 후불로 받는 곳도 많습니다. 숙소 예약하실 때 도시세가 얼마인지 미리 꼼꼼하게 체크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모르고 있다가 체크아웃할 때 돈을 내라고 하면 기분 상해하는 분들 많으시더라구요. 저는 알고 있었는데도 체크 아웃할 때 순간 당황했어요. 호텔 등급이 높아서 내야 하는 돈이 제법 많았거든요.

어찌 됐든 무사히 체크아웃을 끝낸 막내와 저는 마지막까지 알찼던 바르셀로나 여행을 마치고 기차를 타기 위해 산츠역으로 향했어요.

여러분, 다음 주엔 마드리드 여행기로 돌아올게요.

즐거운 한 주 보내시고 다음 주 수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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