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가을_카페인사이드_정인한

2022.10.08 | 조회 8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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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요즘은 정말이지 날씨가 좋다. 여름 내내 손님이 아니라 가을을 기다렸던  같기도 하다. 여름이 끝나갈 즈음에는 커피를 내리면서도, 손님과 이야기하면서도 생각은 종종 덥다 더워 튀었다. 그 늘어진 듯한 더위는 끝이 없을  같았다. 타는 태양은 영원불변의 존재처럼 보였고, 이글거리는 지면을 보면서  고장  듯한 열기가  거리를 영속적으로 지배하는  아닐까 상상하곤 했었다. 그랬던 것이 불과  주전이다. 그러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단체 손님처럼 가을이 찾아왔다. 

아침 여섯  삼분에 카페에 도착해서 테라스 창을 활짝 열면, 내가 백수 시절 그려왔던 공간의 풍경이 만들어진다. 열린 곳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어떤 날에는 귀뚜라미가 카페 안에도 들어왔는지 카페 깊숙한 곳에서도 귀뚤귀뚤 했다. 산책로에는 낙엽이 제법 깔려 있고, 운이 좋으면 떨어지는 낙엽도   있었다. 테라스에 매장에 보관했던 테이블과 의자를 하나씩 빼는 동안 카페는 어느새 좋은 예감처럼 상큼한 공기가 가득해졌다. 

아무도 없지만,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을 잔잔하게 틀어놓으면 낡아가는 곳이지만, 공간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어떤 손님이든 반갑게 맞이할 수가 있다. 카페 손님이아니라, 단지 화장실을 쓰기 위해서 오는 객들도 환영이었다. 카페 서재에는 요즘 책이 늘었다. 집에 있는 책꽂이가 부족해서 억지로 보관하던 책을 조금씩 옮겨 놓고 있다.  속의 이야기들이 손님에게 혹은 직원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했다.

계절이 이렇게 좋아졌으므로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실은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일을 하고 있다. 여름 끝물에 허리 디스크를 진단받았기 때문이다. 어느  꼬리뼈 부근이 멍이  것처럼 아파 병원에 갔더니, 단골손님이기도  의사 선생님은 그렇게 진단을 내렸다. 진단을 받고 하루 이틀 정도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계절이 오는 것처럼 정해진 순서라고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방과 바를 이어지는 곳에 간이 철봉을 설치했고,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면서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일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며칠 그렇게 바르게 걷고 앉아 있으니 통증이 사라지는 듯해서 희망이 생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찾아서 장사할 맛이 나는 것처럼, 통증이 없어졌기 때문에 뭔가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긴다. 

가을이 되고 가게의 흐름이 눈에 띄게 차분해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주가가 내려가고 집값이 떨어지고, 고용지표가 악화하면서 일어나는 거시적인 이유인지, 아니면 주변에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생겨서 혹은 나의 미묘한 표정 변화로 인한 미시적 이유인지는   없으나, 실제로 이건 뭐지 싶을 정도로 가게의 흐름이 차분해지고 있다.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 딱히 불만은 없다. 직원들에게 약속한 급여를   있다면, 내가 돈을 조금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가로운 시간을 이용해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 위한 웹서핑을 하기보다, 책을 많이 읽으면 특별히 문제  것이 없게 된다. 그런 기분도 해가 뜨면 사라지는 어둠처럼 계절이 흐르면 바뀌는 바람의 질감처럼 언젠가는 바뀌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한적했기 때문에  구석에서 영화나 볼까 하다가, 생각을 바꿔서 각본집을 읽었다. <헤어질 결심>, <아가씨>, <나의 아저씨> 읽었다. 그중에서 <나의 아저씨> 정말이지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등장인물이 이웃 같아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그중에서 주인공 동훈의 말이 좋아서   옮겨 적었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박해영 작가의 말도 좋아서   옮겨 적었다. “ 쓰려고 하면 영점 조준이 잘못된 것이다. 인물을 아끼고 사랑하자. 사랑이  한다.”  삶에 대비하자면, “장사를 잘하려고 하면 영점 조준이 잘못된 것이다. 손님과 직원을 아끼고 사랑하자. 사랑이  한다.”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이 마음에 들었고 그것을 며칠 동안 지키다 보면,  괜찮은 날들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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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10년째 좋아서 하는 카페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글을 쓴다. 2019년부터 2 동안 <경남도민일보> 에세이를 연재했고, 2021년에 『너를 만나서 알게  것들』을 썼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ung.in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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