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멀리 왔다는 느낌이 든다. 며칠을 보내고 나니 익숙하고 사랑했던 여러 가지를 저 멀리에 두고 왔다는게 실감이 났다. 거리로는 불과 220km 정도, 시간상으로는 3시간 여의 거리로 이동한 것인데 왠지 다른 차원의 세계로 건너온 것만 같다.
아파트 단지만 벗어나면 드넓은 초록 뷰가 펼쳐지고, 거리의 대부분이 한산한 이 곳. 건물과 사람, 자연의 비율이 10:12:1 정도이던 곳에 살다 2:1:15 정도의 비율인 곳으로 옮겨오니 어디를 봐도 한가롭고 조용한 느낌이다. 스케쥴러를 꽉 채웠던 To do list를 모두 클리어하고 내려오니 정말 휴가지에 온 것 같다.
경북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겨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인생 후반전을 살아보자고 결심했을 때 가장 마음에 걸린 건 우리 아이들이었다. 기억나는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한결같은 배경이 되어준 나의 동네를 떠난다는 것, 집 밖을 나서면 어디서건 한두 명씩은 마주치던 꼬꼬마적 동네 친구들이 사라진 낯선 곳에 정착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이들은 상상이 될까. 이별이 쉽지 않은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 가능한 한 이사를 하지 않고 한 동네에서 쭉 살아왔는데, 막상 큰 폭의 이주를 결심하고 나니 아이들과 나에게 특별한 도전이 되겠구나 싶어 이 전환의 시기를 잘 지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집을 매물로 내놓고 매매되기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집을 보러오는 이가 아무도 없는 동안에도(언젠가는 이 집과 동네를 떠난다는 전제하에) ‘어떻게 잘 이별할지’에 대해 매주 가족시간마다 조금씩 이야기를 나눴다. 타 지역으로의 이주를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드는지, 이곳에서 자라는 동안 어떤 기억이 특히 좋게 남아있는지, 헤어지기 전 친구들과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이 동네를 떠나기 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등등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한달여 만에 바로 매매 계약이되었다는 소식을 알리자 아이들은 약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특히 이 집에서만 11년째 성장한 막내는 집이 매매되던 날 많이 우울해 했다. 이 집이 다른 이의 소유가 된다는 것,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집으로 들어와 살고 우리가 가꿔왔던 이 공간이 모두 사라질 거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했다. 집이 매매된 주간에는 생전 따라나오지 않던 저녁 산책을 같이 하자더니 손을 잡고 공원 숲길을 걷는 동안 한숨을 길게 여러 번 내쉬기도 했다.
첫째와 둘째 역시 이 동네와 친구들 사이에 더이상 머무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워하긴 했지만, 새로운 곳에서 펼쳐질 새 삶에 대한 기대도 차오르는 것 같았다. 더욱이 친구들과 SNS나 연락처를 통해 언제든 소식을 나눌 수 있다 보니 내가 어린 시절 전학하며 느낀 생이별의 느낌은 아닌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사 갈 지역의 상황을 친구들과 공유하며 방학 때 꼭 놀러오라는 말을 부지런히 전하는 녀석들을 보며 내 마음도 조금씩 편안해졌다.
남편과 나는 또 다른 각도에서 마음 한구석 서늘한 바람이 드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신혼이 시작되었던 아파트 원룸을 시작으로, 첫 아이를 맞이하며 부모가 되었던 친정부모님의 아파트, 두 남매를 키우며 분가했던 우리의 첫 전세 아파트, 삼남매의 부모로 거듭나면서 선물처럼 만났던 마지막 아파트까지 25년간 우리의 터전은 경기도 어느 도시의 반경 10km안을 넘지 않았었다. 남편과 나의 인생 중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기를 품어준 ‘마음의 고향’을 떠나야한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중요한 것을 두고 가는듯한 상실감이 자꾸 일었다.
이삿날이 잡힌 후 매 주말이면 우리가 사랑했던 공간을 둘러보았다. 식성이 다양해 하나로 모아지기 쉽지 않던 다섯 명의 입맛을 만족시켰던 동네 맛집부터,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나무들이 가득한 공원과 숲 길 등을 함께 걸었다. 둘러보다 보면 세상 밝은 표정으로 엄마를 부르며 달려오던 그 시절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며 웃어주던 어린 날의 녀석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 뒤로 아이들의 자전거를 챙겨 뒤따라오는 젊은 남편의 모습도 보이고, 내 품으로 달려와 안긴 녀석들을 꼭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는 십 년 전의 내 모습도 아른거렸다. 다 끌어안고 가지 못할 기억들이라 그런지 눈에 담는데도 가슴이 저릿했다. 이사를 일주일 남겨두고부터는 그간 좋은 이웃이 되어주었던 앞집과 위 아랫집, 교회 식구들과 아이들 학원 선생님들을 찾아뵙고 마음 담은 인사를 드렸다. 아이들도 자신의 소중한 이들로부터 축복과 아쉬움이 담긴 저마다의 이별식을 치렀다. 그렇게 사랑하고 익숙했던 것들을 잘 떠나보내며 2023년 7월 10일 우리가족은 경북 어느 시골로 이주했다.
경북으로의 이주는 단지 낯선 지역과 새로운 집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내 삶의 고유함을 되찾기 위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의 진입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지금까지도 주도적인 삶이었다 말할 수 있지만, 남은 인생은 자연을 누리며 조금 더 나답고 충만하게 살아내고 싶어졌다. 그런 꿈을 꾸는 내게 이곳은 약간의 절충지대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낼 그릇을 준비하며 몸과 마음과 생활의 기어를 변속시키는 시공간이랄까. 건물과 사람, 자연의 비율이 1:1:50 정도인 시골 오지로 한번 더 옮겨가려는 우리에게 경북 소도시에서의 삶은 ‘정말 옮겨갈 준비되었냐’고 내내 물을 것 같다. 속도가 아닌 방향에 민감한가, 해야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놓치지 않고 있는가, 자연을 정복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보는가. 진실한 대답을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우리가 이 곳으로 이주했음을 알고 있는 이들은 아파트 관리실의 세 분, 동사무소 직원 두 분, 막내와 함께 축구공을 찬 초딩 꼬마 서너 명, 어제 저녁 수박을 들고 찾아가 인사를 드린 앞집 아주머니 정도이다. 여전히 낯선 풍경 가득하고 마음 둘 곳을 찾아야 하는 나날이지만, 인사 나누는 이들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우리 안의 닻이 조금 더 깊이 내려지는 느낌이 든다. 얼마를 머물지 알 수 없는 정박지이지만 좋은 시간이 준비되어 있을 거라 믿는다.
실은 그립다. 수십년 살았던 이전 동네도 그립고, 맞춤옷처럼 잘 맞고 익숙했던 이전 집도, 카톡 메시지 하나면 곧장 만남이 이어지던 지척의 친구들도 그립다. 그리움에 잠시 젖어있다가도 ‘이전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3초도 지나지 않아 ‘아니!’ 라는 속마음이 들려온다. 맞다. 그립긴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오랜시간 꿈꾸며 그려온 삶이 지금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익숙해서 그리운 것들은 그 자리에 두고 나는 ‘지금의 나’를 또 부지런히 살아내고 싶다.
*글쓴이 – 이설아
작가,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리더, 정원이 있는 시골 민박을 준비하는 초보 가드너. 저서로는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돌봄과 작업/공저>,<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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