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다. 실제 나는 인생에서 간절히 원하던 것을 대부분 이루며 살아왔다.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고 입양으로 가족을 이룬 것, 책을 쓰고 글쓰기 공동체를 꾸린 것, 정원을 가꾸는 삶으로 진입한 것 모두 내가 간절히 원해 이뤄진 것들이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말은 뜨겁게 기도하는 마음이 되면 그 마음에 감복한 신이 선물처럼 꿈을 이뤄준다든지, 내가 쌓은 덕이나 선행이 하늘 끝에 닿았기에 온 우주가 합심해서 내 소원을 이뤄준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내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건 그것이 안될만한 만 가지 이유를 만나더라도 휘둘리지 않는 마음이고, 나의 모든 에너지와 시간, 우선순위를 그곳에 두는 결심이며, 될 때까지 길을 찾겠다는 의지이다.
나는 꽤 심플한 사람이다. 관심사가 넓지 않아 아는 것도 많지 않고 삶이 걸쳐있는 영역 또한 넓지 않다. 하지만 한번 어딘가에 꽂히면 깊이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이다. 그 사랑은 너무도 강력해 아무 도움이 없어도 홀로 탐험을 시작하고, 그 세계에서 진짜 보고 싶었던 장면, 알고 싶었던 진실을 만나기까지 왠만하면 멈추지 않는 에너지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간절히 원하는 걸 이루는 시간이 점점 단축되는 걸 느낀다. 마법같은 능력이 생겼다거나 남이 모르는 지름길을 알게 되었다기보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진짜 원하는 삶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몸으로 익힌 덕이 아닌가 생각한다. 원하는 게 또렷해지는 순간, 몸의 온 에너지가 한곳으로 몰리면서 머릿속 모든 계획이 빠르게 재편되는 걸 느낀다. 새로운 명령어를 입력하지 않아도 온몸과 마음이 그 삶을 원한다고, 이제 준비되었다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생각이나 말이 아닌 온몸이 준비된 때가 오면 이제 그 삶을 살아내는 것만 남는다.
한 남자를 향한 성실한 사랑, 낯선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 말하는 듯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 자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매일 기대하며 산을 오르던 발걸음을 이십년쯤 이어왔다. 돌아보니 신기하게도 ‘내가 간절히 원하던 그 곳’에 도달해있는 것을 본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힘은 외부의 전능한 손이나, 꿈같은 기회, 범접할 수 없는 탁월함이라기 보다 지금 내 눈앞의 세계를 진실로 사랑하는 것, 내 몸과 마음, 온 삶을 그곳에 포개어 사는 것임을 배웠다.
드디어 정원을 가꿀 땅, 내 명의의 토지가 생겼다. 부모님으로부터 증여받은 땅이 내 이름의 토지대장으로 나왔다. ‘토지주‘가 되고 보니 땅을 가진다는 건 내게 어떤 의미인가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부동산 공화국에서 땅을 소유했다고 하면 ‘건물주’나 ‘부자’ 같은 단어를 떠올리기 쉽지만, 시골에 땅을 소유하게 된 나에겐 다른 단어가 떠오른다. 바로 ‘지속가능한 삶’.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단어이다.
시골의 땅값은 도심에 비해 많이 저렴하다. 투기를 위한 땅이 아닌 삶을 지어 올리기 위한 터전으로서의 땅을 원하는 이들이 적기 때문이다. 이 터전 위에 가꾼 삶은 훗날 어디로 옮길 수도 없고, 비싸게 되팔 수도 없기에 시골에서 땅 주인이 된다는 건 그저 이곳에서의 삶을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흙을 밟고 땅의 힘을 빌어 자연을 가꾸는 라이프 스타일로 살아가겠다는 뜻이다.
오늘은 설계를 위한 미팅이 있었다. ‘정원이 있는 시골민박’을 하고 싶다는 꿈을 구체적인 발걸음으로 옮기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홀리가든 미오님과 함께 땅을 둘러보았다. 머릿속에 몇몇 이미지로만 떠다니던 장면들이 함께 걸으며 숙소 공간과 게스트의 동선을 상상하는 동안 홀로그램처럼 눈 앞에 3D로 세워지는 듯 했다. 자연의 품에서 깊이 사색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쉼을 누리며 즐거워하는 이들의 표정이 그려져 슬그머니 가슴이 부풀었다.
부지런히 일을 진행하다 보면 ‘토지주’에서 ‘건축주’ 그후엔 ‘건물주’로 명칭이 바뀌겠지만 그런건 내게 별 의미가 없다. 그런 단어는 행정문서나 계약 서류상의 호칭일 뿐, 내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삶의 주도성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얼마나 창의적으로 꿈을 이뤄가느냐이다. 적어도 열심히 만들어놓은 공간에서 어이없이 쫒겨나는 일은 없을테니 ‘지속가능한 삶‘을 담보 받은 느낌이랄까. 꿈꾸는 장면을 삶으로 구현하고 누릴때까지 언제까지고 마음껏 이어나갈수 있는 안정감을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나의 땅에 정원을 가꾸고 싶다는 오랜 꿈이 첫 발을 내딛은 날이다. 찾아온 이들이 쉼과 영감을 얻고, 자신의 삶과 화해하도록 돕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현실의 땅은 매우 척박한 상태이고 우리가 쥔 돈은 넉넉하지 않지만, 나는 이 꿈이 이뤄지지란 걸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시골에서의 삶을 사랑하고 있고, 하루도 빠짐없이 자연으로 달려가며 순수한 기쁨을 누리기 때문이다. 매일 새롭게 발견하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소중한 이들에게 이 좋은 것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매일 쌓이는 동안 내가 꿈꾸는 정원은 어느새 현실이 될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일상이 될 것이다.
*글쓴이 – 이설아
작가,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리더, 정원이 있는 시골 민박을 준비하는 초보 가드너. 저서로는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돌봄과 작업/공저>,<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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