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시를 인용하는 것도 저작권법 위반인가요?_알쓸법놀_로에나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2023.02.20 | 조회 9.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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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글을 쓰다보면 다른 작가가 쓴 책이나 시를 인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문화평론가나 비평가들은 평론을 쓰면서 타인의 저작물인 책 내용 중 일부나 시 전체를 인용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저작권 침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Pixabay로부터 입수된 Daria Głodowska님의 이미지 입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Daria Głodowska님의 이미지 입니다.

 

저작권법 산책

저작권법 제28조에 따르면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해 정당한 범위 안에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 여기서 인용이란 논문을 작성하며 타인의 논문 일부를 빌려오거나, 소설 작품 속에 타인의 시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저작물을 작성하면서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인용의 경우에도 인용되는 저작물이 공표된 저작물이고, 인용하는 목적이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한 것이며,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는 방법으로 인용한 경우에는 저작권법 침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을 하나씩 살펴보자.

 

인용되는 저작물은 공표된 저작물이어야 한다.

공표는 저작물을 공연, 공중송신 또는 전시 그 밖의 방법으로 공중에게 공개하는 경우와 저작물을 발행하는 경우를 말한다(2조 제25). 이미 출판된 책이나 논문이라면 당연히 공표된 저작물에 해당하고, 상영된 영화와 같은 영상저작물 역시 공표된 저작물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시험문제로 출제되었으나 공중에게는 공개되지는 않은 토플시험문제는 어떨까?

서울고등법원은 이미 실시된 토플시험 문제를 입수하여 피고가 토플시험 대비용 문제집을 발간한 사안에서 원고는 토플시험 응시생들에게 문제지의 소지, 유출을 허용하지 아니하고서 그대로 회수함으로써 시험문제들이 공중에게 공개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고, 시험이 시행된 후에 원고 자체의 판단에 따라 재사용 여부나 공개 여부, 공개 시기 등을 별도로 결정하고 있는 사실은 앞에서 본 증거로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사정 아래에서 제한된 범위의 응시생들이 토플시험을 치르는 행위만으로는 이를 공표라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토플시험문제의 경우 공표된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1995. 5. 4. 선고 9347372 판결).

 

인용하는 목적이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때 인용하는 목적이 반드시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목적일 필요는 없고, 이와 유사한 목적으로 인용하는 경우에는 본 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 또한, 해당 조항은 비영리적 목적에 한해 적용되는 것은 아니므로, 영리 목적으로 책을 출판하며 타인의 저작물을 인용하는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다른 여행사의 안내서에 작성된 내용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그대로 베끼어 제공한 사건에서 서적의 일부를 베낀 목적은 홈페이지 게재 자료를 작성하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기 위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여 보도, 비평 등과 상관없다 할 것이고, 출처가 원고의 저작물이라는 것도 명시하지 않아 인용 방법도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지 않는다 할 것이므로, 도저히 저작권법상 허용되는 인용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서울지방법원 2003. 5. 30. 선고 2001가합64030 판결). , 비평, 교육, 연구 등과 무관하게 오직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여 영리를 추구할 목적으로 타인의 저작물을 인용하는 경우에는 본 조항이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저작권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을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을 참고하세요

 

정당한 범위 안에서 인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범위에서 인용하여야 정당한 범위 안일까? ‘정당한 범위에 관하여 일정한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법원에 의해 판단될 수밖에 없다.

다만, 법원은 정당한 범위에 들기 위해서는 그 표현 형식상 피인용저작물이 부연, 예증, 참고자료 등으로 이용되어 인용저작물에 대하여 부종적 성질을 가지는 관계(, 인용저작물이 주이고, 피인용저작물이 종인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대법원 1990. 10. 23. 선고 90다카8845 판결). , 타인의 저작물을 인용하고자 할 경우, 인용되는 타인의 저작물이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종적인 존재여야 한다.

예컨대, 타인의 저작물인 소설이나 시를 비평하는 평론집을 출판하면서, 인용되는 소설이나 시가 평론집 중 대부분의 쪽수를 차지하고 비평에 관한 부분은 몇 줄 되지 않는다면, 이는 정당한 범위 내의 인용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법원은 피신청인이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저작권자들로부터 아무런 승낙을 받지 않고, 고등학교용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 또는 비교적 문학성이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을 선정하여 단편소설은 그 전문을, 장편소설은 그 일부를 발췌하여 수록한 편집물을 출판한 사례에서 아래와 같이 판단하였다.

 

이 사건 저작물이 대학입시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소설 감상능력을 키워 주기 위한 목적상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설들을 선정하여 수록하면서 각 작품마다 그 작가를 소개하고, 그 작품의 주제, 줄거리, 단락, 플롯, 시점, 등장인물과 인물의 묘사 방법, 배경, 문학사적 의의 등을 간략하게 기술한 작품해설을 싣고는 있으나, 그 작품에 대한 해설은 그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분량에 그치고 있으면서 실제로 그 각 작품 자체를 읽을 수 있도록 단편의 경우에는 그 전문을, 중·장편의 경우에도 상당한 분량을 인용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그 인용 부분이 주가 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는 정당한 인용의 범위를 넘어 원저작물의 시장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정도라고 판단되므로, 인용저작물과 피인용 저작물이 부종적 관계에 있다거나 정당한 관행에 합치된 인용이라고 보기 어려워서 피신청인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할 것이다

서울민사지방법원 1994. 7. 29.자 94카합6025 결정

 

, 위 사례에서 법원은 출판된 소설집이 단편의 경우 그 전문을, ·장편의 경우에도 상당한 분량을 인용하면서, 각 작품에 대한 해설은 필요 최소한의 분량만을 기재하여 인용된 타인의 저작물이 오히려 주된 부분이 되었다고 보아 정당한 인용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저작물에 인용된 소설에 대한 저작권 침해나 그 사용허락의 문제는 새로운 저작물의 저작자가 부담함이 원칙이나, 출판사도 저작자와 함께 공동불법 행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아 출판사와 저작자 모두에게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였다.

또한, 질적인 측면에서도 인용 저작물이 주가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피인용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인용저작물이 저작물로서의 독자적인 존재의의를 가지는 창작적 부분이 존재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원은 사진작가인 원고가 일본 시사주간지 플래쉬(FLASH)”에 자신이 제작한 누드사진 11점을 게재하도록 허락해 주었는데, 피고들이 자신이 발행하는 월간지인 직장인뷰티라이프한국 여대생, 연예인 누드사진이 포르노로 둔갑”, “사진예술작품들 일본으로 건너가 포르노성 기획으로 전락이라는 제목아래 위 플래쉬지에 게재된 원고의 사진들을 원고의 동의를 받지 않고 게재한 사안에서 아래와 같이 판단하였다.

*오승종, 저작권법 제5, 743.

 

이 사건 기사 중 사진부분을 제외한 해설기사는 "직장인" 및 "뷰티라이프"의 해당 2면 중 3분의 1 정도에 그치고 그것도 대부분이 위 "플래쉬"지의 해설을 그대로 번역한 것인바, 이 사실과 위에서 본 이 사건 게재사진들의 성상, 크기, 배치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인용저작물이 종이고, 피인용저작물이 주의 관계에 있다고 보여져 피고들의 이 사건 저작물의 인용은 보도, 비평 등을 위한 정당한 범위에 합치되지 않는다

대법원 1990. 10. 23. 선고 90다카8845 판결

 

, 위 사례에서 법원은 월간지에서 피인용저작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에 대한 해설기사는 월간지의 해당 면에서 3분의 1 정도에 그칠 뿐만 아니라, 그 해설기사 부분 역시 타인의 저작물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어서 인용저작물 자체의 창작적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 인용의 정당한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는 방법으로 인용하여야 한다.

인용하는 분야에서 인용에 관한 관행이 존재한다면 그 관행에 합치되도록 인용하여야 한다. 만약 인용하는 분야에서 인용에 관한 관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이 경우 반드시 비영리적인 이용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은 비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의 경우에 비하여 자유이용이 허용되는 범위가 상당히 좁아진다.”(대법원 2014. 8. 26. 선고 201210786 판결 참조).

예를 들어 보도의 재료로서 저작물을 가져다 쓰는 것, 타인의 학설이나 견해를 논평하기 위하여 자신의 저작물 중에 타인의 저작물의 일부를 인용하여 비평하는 것, 자기의 논문 중에 타인의 논문 일부를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보강하는 논거로 하는 것, 소설을 저술하면서 그 배경이 되는 시대상황을 설명하거나 묘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작품으로서 타인의 시가(詩歌)의 한 문구 또는 한 구절을 삽입하는 것, 미술작품에 관한 평론을 저술하면서 타인의 회화를 인용하는 것 등은 저작물의 성질에 비추어 공정한 관행에 합치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승종, 저작권법 제5, 752.

 

출처를 명시하여야 한다.

저작권법 제37조 제1항은 저작물을 이용할 경우 그 출처를 명시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저작권법 제138조 제2호는 이를 위반하여 출처를 명시하지 아니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표된 저작물을 인용하는 경우 반드시 그 출처를 명시하여야 한다.

 

 

사안의 경우

문화평론가가 다른 작가가 쓴 책을 평론하면서, 해당 작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그 책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한 경우, 평론 부분이 인용된 부분보다 더욱 길고 자세하게 작성되어 있고, 인용된 부분은 평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그쳐 평론 부분에 대해 종적인 존재로 판단된다면, 저작권법 제28조의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해당되어 저작권 침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의 경우 평론을 하기 위해 그 전체를 인용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가 존재하므로, 평론을 작성하면서 해당 시 자체가 아니라 그 시에 대한 비평 등이 주된 부분이 된 경우라면 마찬가지로 저작권법 제28조의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해당하여 저작권 침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출처를 명시해야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알쓸법놀(알면 쓸모있는 법률놀이터)’ 글쓴이 -  로에나

지식재산권 담당 사내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가끔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합니다. 오늘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이 콘텐츠 창작자들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한 권으로 마스터하는 저작권법의 모든 것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등 20여 권의 저서를 쓴 작가이자 문화평론가, 변호사인 정지우가 LG 계열사 IP팀 사내변호사 정유경과 함께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저작권 책을 썼다. 작가이자 문화평론가로서 콘텐츠 창작자들의 생태계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저자가 현직 변호사의 관점에서 쓴 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신뢰할 만하다. 1부 〈저작권의 원리〉에서는 어려운 법률 용어를 최대한 지양해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춘 생생한 비유와 예시로 저작권의 기본 개념을 재미있게 습득하도록 했다. 2부 〈저작권의 해결〉에서는 콘텐츠 창작자들이 가장 많이 질문하는 저작권 문제를 총망라해 1부에서 배운 내용을 실전에서 바로 응용할 수 있도록 했다. 누구나 창작자가 되는 콘텐츠의 시대, 저작권에 대한 지식은 필수다. 이 한 권의 책이 콘텐츠 창작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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