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공교육이 아닌 대안학교를 졸업하였다. 6년간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사곡리에 있는 ‘삼무곡청소년마을’이라는 곳에서 지냈고, 몇 년 전 중졸 검정고시만 본 채로 스무 살이 되었다.
중학교 검정고시를 보았던 날,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대학 입시도 아닌데 걱정 반 염려 반이었다. 저녁에 소갈비를 재웠다가 구워서 도시락 반찬으로 넣고, 밥도 고슬고슬 새로 지었다.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검정고시 장이던 한 중학교 앞에 내려주었더니 우산도 쓰지 않고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시험 잘 보고 와!”라고 손을 흔들었다. 내가 긴장되는 것은 왜일까. 초·중·고·대학까지 수많은 시험을 거치면서 살아왔지만 매번 시험은 만만하고 쉬운 게 아니다. 시험을 보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쌓인다. 아무리 경험해도 재미를 못 느끼는 일이 시험보는 것 같다.
생애 첫 시험을 본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보다 검정고시 시험장 앞에는 차가 많았다. 학교 밖 청소년도 있을 테고, 제 때 학교를 못 다닌 사람들도 뒤늦게 학력을 인정받기 위한 시험을 보러 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인생의 다른 선택을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모와는 달리 아이는 조금 남다른 길을 걷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좋고, 놀아도 좋고, 정규 교과를 배우는 학교가 아니어도 좋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길이 있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떠한 길도 자신이 만들어 가기 나름이라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내가 살아온 길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도록.
사회에서 생각하는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편견이 있다. 정규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며, 학교 부적응 등의 문제가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많은 사람들은 정도(正道)에서 벗어나거나 시스템 밖에 있는 상황을 못 견뎌 한다. 벗어났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을 지닌다. 학교라는 곳은 사실 안전한 곳이 아니며 완전한 배움도 아닐진대 그것밖에 모르고 살아간다.
검정고시를 보게 된 아이는 사실 검정고시 자체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무학(無學)으로 살아가는 삶을 실험해 보고자 했다. 하지만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하는 진로에 있어서 어느 정도 학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고졸은 되어야겠다고 스스로 느낀 것이다. 어쩌면 훗날 대학을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가능성의 미래가 열려 있으니, 또다른 배움을 이어 나갈지도 모른다. 그러한 모든 과정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했을 뿐이지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길을 가는 게 아니다. 아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나 역시 응원하고 믿어줄 뿐이다.
어른이 되어 보니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존재한다. 같은 운명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은 없으며, 모두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나의 길이나 방법이 전부가 아니다. 사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교재를 몇 번 읽어보고 예상 문제 등을 풀어 보면 60점 이상의 합격 점수는 그럭저럭 채울 수가 있다. 졸업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배움을 이어나갈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배운다는 건 뭘까. 전제는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다. 배우면 쓸모가 있어야 하고, 그 쓸모는 세상과 사람을 이롭게 해야 하는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만드는 공부여야 한다. 단지 졸업장이나 자격증만을 위한 공부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 공부를 통해 진짜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고 자기다움을 향해 나아간다면 바랄 게 없다.
내가 잘 배웠다고 생각한 순간은 학교가 아닌 사회였고, 삶 그 자체였다. 삶에서부터 배운다는 것은 이 세상을 배움터, 놀이터, 경험의 장으로 여기는 사고에서 나온다. 책에서 배우고,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배우고, 유튜브와 SNS에서도 배운다. 사람에게서 배우고, 상실과 슬픔으로부터 배운다. 내 것으로 겪어낸 경험만이 온전한 배움이 되기에 책을 암기하고, 단편적인 지식을 많이 습득한다고 해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2018년 여름 종영된 지 오래된 KBS프로그램 중 ‘1대100’이라는 퀴즈 쇼에 나가서 최후의 2인으로 남았던 추억이 있다. 어릴 때는 장학퀴즈같은 방송 보는 것을 좋아라했고, 상식문제집을 읽고 외우는 것도 즐겨했기에 인생에서 한번쯤은 퀴즈쇼 출연을 소망한 적이 있었다. 문제를 잘 맞추어 나가면서 출연진들이 하나 둘 탈락될 때 스릴이 느껴졌고, 최후의 2인으로 남겨졌을 때는 심장이 쫄깃할 정도로 초긴장 상태였다. 물론 TV의 퀴즈쇼는 알고 있는 지식의 쓸모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었기에 입시 경쟁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럼에도 단편적인 지식이 삶을 구원할 수 없기에 퀴즈 프로그램의 도전은 한 번으로 족했다.
검정고시를 보고 온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 아는 게 제일 안 좋은 거 같애. 이것 저것 어디서 듣고 본 걸로 내가 안다고 착각하니까. 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라 진짜 내가 아는 사람이 된다는 건 삶으로 살아내는 게 아닐까”
그저 계속 배우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인생 앞에 주어진 모든 일들을 배움의 주제로 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날 저녁 외식을 하기 위해 찾은 곳은 동네에 새로 생긴 파스타 집이었다. 식당의 젊은 사장님 역시 맛있는 한 그릇의 파스타를 팔기 위해 꾸준히 배웠을 것이다. 요리를 하겠다는 열망으로 학교나 학원을 다녔을 테고, 졸업 후에는 계속 연마하고 갈고 닦기 위해 일을 하면서 몸으로 습득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접시를 닦고, 장을 보고, 레시피를 연구하는 등 누군가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을 선보이는 등의 일도 계속했을 것이다. 돈을 벌고,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보람도 느끼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진짜 자신의 가게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을 꿈꾸었을 것이다.
어떤 식당에 가서 단순히 만원을 내고 밥을 먹는다 해도,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한 사람이 이룬 것들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게 된다. 식사를 잘 하고 공손하게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아이는 인사를 했다. 식당 주인은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나보다. 인스타그램에 식사 후기를 올렸는데 댓글을 달아 주었다. 학생의 밝은 모습이 기억에 난다고 하면서 말이다.
‘삶에서 배움은 뭘까?’라는 질문을 갖고 타로카드 한 장을 뽑았다. ‘원반3번’이라는 카드가 뽑혔다. 세 명의 여인이 벽돌을 쌓아서 집을 짓는 그림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 건물을 지을 수는 없다. 함께 벽돌을 만들고, 옮기고,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계획과 목표를 세우는 것은 물론이며, 협력과 소통은 기본이다. 과정을 견디며 지루한 시간들을 묵묵히 거쳐가는 것 모두가 배움의 시간이다. 스무 살이 된 아이는 곧바로 군대를 갈 예정이고 나무로 뭔가를 만들는 목수의 꿈을 꾸며 시골에서 살아갈 삶을 구상한다. 지난 세월 속에서 배워온 것들을 떠올리고,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시간들을 생각하니 그것만으로 흐뭇하다. 삶에 대한 믿음이 차오른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오후의 시선』『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등 다양한 책을 썼습니다.
책이 있는 명상공간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카드로 마음 공부하는 글을 씁니다. 타로카드가 주는 의외의 기쁨과 성찰의 순간으로 위로받으며 잠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