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된 마음

김풍의 살아있고 싶은 마음_밀착된 마음_정지우

김풍 인터뷰_정지우의 밀착된 마음

2023.02.22 | 조회 5.0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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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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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갑갑한 권태로 뒤덮인다고 느낄 때, 김풍 작가를 만나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그 좋은 기분은 일종의 자유로워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째서 한 사람이 매번 그렇게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항상 기분 좋은 활기로 가득 찬 사람인 건 아니었다. 때론 자기 안에 깊이 침잠해 있어 보이기도 했고, 때론 방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그런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무언가가 내면에 있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인터뷰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그의 내면에 있는 그 무언가를 알고 싶어서였다.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인터뷰를 해보겠다는 마음 자체를 먹지조차 않았을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0여년 만에,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을 처음 만난 셈이었다. 그의 마음에 밀착할 수 있다면, 삶의 비밀 하나를 알 수 있을 거라는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인터뷰를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흔쾌히 찾아오라고 했다. 수험생활을 하던 시절, 그는 내가 있던 부산에 몇 번인가 찾아왔다. 그는 부산에 오는 이유는 너를 보기 위해서야.”라고 말했다. 고립되어 있던 수험 시절, 그 말이 내게는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모른다. 바닷가에 머무르던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부산에 살면서도 바다를 보러 가기 힘들었던 내게 바다를 보는 몇 안 되는 시간이었다.

이제 나는 그를 찾아가고 있다. 그가 있는 곳은 한강 변이다. 그를 만나는 곳에는 언제나 바다나 강이 있다. 강은 바다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을 바닷가에서 보낸 내게, 바다는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자유의 상징이었다.

 

김풍 작가가 매일 작업하는 작업실
김풍 작가가 매일 작업하는 작업실

 

죽음에 예민한 마음

 

그는 광안대교가 보이던 어느 카페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걸 보는데, 아버지가 참 편안해 보이더라. 그렇구나, 죽음이란 이렇게 편안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그를 위로해야 하는 것일까, 고민했다. 그러나 그 다음 말은 나를 조금 놀라게 했다. 그런데 그 무렵 나도 참 편안했거든. 인생이 그렇게까지 애쓰는 것도 없고, 그냥 너무 편안해서 좋았어. 그러다가 그날 집에 돌아와서 생각한 거지. 사실, 이건 죽음이구나. 사람이 가장 편안하고 싶으면 죽으면 되는 거구나.”

이번에 인터뷰할 때도 그는 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마침 창밖으로는, 한강 위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비교적 쉽게 우울함을 느끼는 편이었던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떤 침울한 방향으로 흐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의 결론은 그러니까, 편안해지면 안되는 거야.라는 것이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그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편안하게 방송하면서 광고나 찍고 충분히 안락하게 살아갈 수도 있는 입장이었지만, 그는 어떻게든 다시 창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가 치열하게 구상했던 웹툰의 스토리만 여러 개를 들었다. 영화 시나리오를 구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평생 처음 드라마 작가에 도전했다. 아마 나의 수험 생활보다도 더 길고 지리멸렬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이겨냈다.

사실, 그가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창작에 몰두하고,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는 순간도 있었다. 더 큰 성공을 바라는 걸까?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유명해지고 싶어서일까?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는 두렵다고 했다. 자신이 더 이상 창작할 수 없는 때가 올까 봐, 조바심을 느낀다고 했다. 나이 들어감이, 늙어감이 아쉽다고 했다.

창작에 절실한 그 마음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 순간,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무언가를 너무 사랑할 때, 죽음이 두렵다. 그는 자신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었던 것 같은 순간에 대해 말했다. 그 순간이 바로 창작의 순간이었다. 과거 찌질의 역사라는 작품을 쓰면서, 인물들이 살아나 춤을 추는 세계에 진입하면서, 그는 자신이 창작의 순간을 가장 열망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는데 남아 있는 스테이플러 심이랑 쓰다 못한 지우개가 있더라고. 아버지도 이걸 다 쓸 거라고 생각하셨겠지. 우리는 그렇게 가진 걸 다 쓸 거라고 생각하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잖아. 죽으면 다 아무것도 아니라서, 그래서 더 삶을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

있는 건 삶밖에 없다. 그는 살아 있다는 건 기회이고, 이 기회를 잘 쓰고 싶다고 했다. 가만히 편안한 상태로 죽음에 가까워지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라고 했다. 그에게 고통이나 괴로움, 힘겨움 같은 건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더 경험하고 싶어 했고, 더 아쉽지 않고 싶어 했고, 더 후회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는 여한 없이 살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저 삶이라는 바다로 던지고자 했다.

 

김풍 작가의 작업실에는 천장에 닿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의 화분이 있다.
김풍 작가의 작업실에는 천장에 닿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의 화분이 있다.

 

김풍의 살아있고 싶은 마음

 

그의 인생 역정은 참 특이하다. 흔히 김풍이라고 하면, 방송인이나 예능인, 그리고 웹툰 작가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히 말하기 어려운 삶의 과정을 살아왔다. 캐릭터 사업을 하는 회사를 차리기도 했고, 영화 잡지에서 기획자와 기자로 일하기도 했고, 극단에서 한 동안 연극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몇 년간은 그냥 백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30대에는 현재의 그를 만든 두 가지의 큰 계기랄 게 있었다. 하나는 트위터에 요리를 찍어 올리다가 요리 관련 채널에 출연하기 시작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웹툰 ‘찌질의 역사’를 창작한 것이었다. 그는 찌질의 역사를 하려고 한 당시의 설렘에 대해 이야기했다.

“몇 년 만에 다시 웹툰을 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설레더라고. 사실, ‘찌질의 역사’는 초반에 반응이 별로 안 좋았지만, 나는 너무 좋았어. 지난 20대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 시절로 들어가는 일이었지. 그건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어. 나이가 더 들면 20대의 느낌을 다 잊어 버릴테니 말이야.

이 부분에서 나는 그의 마음의 핵심이랄 것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언제나 그때가 아니면, 이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듯했다. 그 마음은 본질적으로 흘러가는 인생에 대한 아쉬움이 아닐까 한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매 시절마다의 의무랄 게 있다. 매 시절, 그 시절 가장 사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어린 날의 놀이든, 청춘 시절의 연애든, 젊은 날 꿈을 좇는 일이든, 지나고 나면 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삶에는 있다.

사람들은 흔히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본 김풍 작가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집어던지기 일쑤였다. 방송이나 광고 요청이 쏟아져 들어올 때도, 그는 과연 그것이 자기가 이 시절 할 수 있는 최선인지 고민했다. 그는 자신이 이때가 아니면 할 수 없으면서도, 자신이 가장 사랑할 수 있고, 생생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그 어떤 일이 무언가를 집요하게 찾아갔다.

그 동력은 바로 살아있고 싶은 마음이 아닌가 싶다. 그 마음은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든지, 타인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든지, 같은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김풍의 마음은 죽기 전까지는 죽지 않고자 하는 마음, 권태에 파묻혀 정지되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다.

“나한테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있구나, 내가 최고라기 보다는 나 스스로에게는 단지 뭔가 해볼 수 있는 힘이 있구나, 라는 그 느낌을 좇는 것 같아. 하고 싶은 걸 하고 싶고, 그럴 때 내 안에 아직 피가 끓고 있다는 걸 느껴.”

그는 유튜브 등 방송으로 또 다른 전성기를 맞고 있지만, 그가 원하는 건 그런 외면적인 인기나 성장만은 아니다. 그는 바로 이 순간에도, 다시 자기를 실험하려고 한다. 불가능할 것처럼도 보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무언가로 자신을 집어 던질 결단을 하고 있다. 그는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 굳어 버리기 전에, 죽음에 더 가까워지기 전에, 창작에 몰두할 수 있을 때 또 어떤 작품을 창조하고자 한다. 그것이 그가 죽음을, 그리고 삶을 대하는 자세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최근 그에게는 첫 아이가 생겼다. 그는 그 아이의 탄생을 인생에서 아주 역동적인 사건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아이로 인해 미래가 생긴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 이전까지 자신에게 있는 건 현재 뿐이었다면, 아이가 태어나면서 미래가 무척 구체적인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묘하게도 나는 그가 아이와 함께 맞이할 그 미래가, 새로운 그 세계가 무척 기대되었다. 그라면 후회 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그 시절을 사랑할 것만 같다. 아마도 그는 그 시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하기 위하여, 아이와 둘도 없는 어떤 삶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다.

그를 생각하면 바다가 떠오른다. 그는 언제나 바다에 어울릴 것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항해하는 마음, 바다에 뛰어드는 마음,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는 죽기 바로 전까지 살아있기 위하여, 누구보다도 가장 살아있는 마음으로 삶에 속해 있을 것이다. 그가 떠난 방에는 남은 스테이플러 심도, 남은 지우개도 없을 것이다.

 

 

* '정지우의 밀착된 마음' 인터뷰어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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