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세바시는 지금 제 삶에서 가장 복잡한 존재에요. 내 자식 같기도 하고, 내 삶의 의미이기도 하고, 소중하면서도 힘들기도 한 그런 존재죠.”
늘 강연 기획과 송출, 회사 운영 등 전천후 역할을 하고 있는 구범준 PD를 만났다. 여러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쁜 그를 간신히 만난 것이었다. 그날도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강연 촬영과 연출을 위해 이동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15분짜리 강연을 시청하는 입장에서는, 그 이면에 얼마나 복잡하고 수많은 일들이 펼쳐지는지 쉬이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은 20여명의 직원들이 바삐 일하는 주식회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 세바시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 방송은 내게 ‘방송’ 데뷔나 다름없던 자리이기도 했다. 사실상 처음 방송국에 가서 제작진들로부터 강연에 대한 코칭과 격려를 받을 때, 아직 20대였던 내 눈에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대단한 프로처럼 보였다. 그 중심에 구범준 PD가 있었고, 그로부터 10년쯤 지나서야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러 갈 용기를 낸 셈이었다. 어찌 보면, 구범준 PD가 만든 세계에 한 명의 미숙한 꼬마로 입장했던 시절로부터 아득히 지난 오늘날, 비로소 어른이 되어 그 세계를 만드는 이야기를 들으러 간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세계를 만들고 10년 이상 이어온 사람에게는 반드시 귀담아 들을 이야기가 있다. 더군다나 그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무수한 시간들을 만드는 일을 전두지휘한 한 사람에게서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나는 그가 그 시간을 이어올 수 있는 마음의 힘이 궁금했다. PD로서, 한 회사의 대표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그가 만들어온 시간에 대해 듣고 싶었다.
결핍 속에서 자기의 길을 만들다
“재밌는 얘기 하나 들려드릴게요. 저는 사실 처음 PD로 입사했을 때, 거의 3년 정도 제대로 일을 못 했고, 제대로 월급도 못 받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그런데 저의 합격자 발표나기 한 달 전에 IMF가 터졌고, 저는 수습만 마친 후 무기한 대기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마도 기자나 PD 중에서는 유일하게 ‘수습생활’을 두 번 한 경우일 거라 말했다. 기자들의 수습생활이 어떠한지는 널리 알려져 있다. 반년간 경찰서 등에서 먹고 자면서 열악한 생활을 하는 게 그 시대의 ‘수습기자’ 생활이었다. 그는 PD로 입사했지만, 당시 CBS의 특성상 ‘경찰기자’ 수습생활을 했다. 그렇게 첫 수습생활을 마쳤지만, IMF로 인해 정식 PD 발령을 받지 못한 채 한참을 기다렸다.
“그 때 저는 CBS 뉴스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당연히 회사에서 시킨 것도 아니었고, 회사 소유의 홈페이지도 아니었죠. 그냥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CBS 뉴스 모니터링 기사를 올리고, 동기들이랑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수습들끼리 그러고 있다가, 어느 날 한 언론사에 ‘이주의 홈페이지’로 소개가 되었고, 그때서야 선배들이 ‘얘네 아직 살아있구나.’하고 인지를 했죠.”
요즘 같으면 어딘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회사가 공채로 합격한 직원들을 무기한 대기발령을 보내는 건 둘째치더라도, 거기에 대한 그의 ‘대응’이 내겐 무척 낯설고 신선하게 들렸다. 대부분은 그런 경우 그냥 포기하거나, 법적 투쟁을 하거나, 이직을 알아볼 것이다. 그러나 구범준 PD는 그냥 ‘없던 길’을 만들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스스로 기자 겸 PD가 되었다. 나중에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꼈지만, 그것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였다.
“그 이후에는 어찌저찌 정식 PD 발령을 받았는데, 언론노조에서 파업이 일어나고, 곧이어 우리나라 언론 역사상 최장 기간 파업이 CBS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거의 3년 간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못 했죠. 어찌 보면 결핍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이었죠.”
그는 그 시절을 ‘결핍’이라 표현했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PD로서 훈련을 한 시간이었다고도 말했다. IMF 이후 작가나 조연출이 PD를 보조하는 시스템이 없어졌고, 대본이나 구성안 등을 모두 혼자 쓰면서 영상을 만들었다고 했다. 특히, 언론노조 파업 당시 그는 라디오 PD였음에도, 파업 홍보 ‘영상’을 직접 만들며 영상 만드는 능력을 쌓기도 했다. 그 시절은 단순한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기른 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시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한 명의 주체적인 인간이 자기만의 삶을 만드는 방식에 관해 깊이 느꼈다. 우리는 완벽한 조건 안에서 배우고 준비하고 실력을 쌓으며 완성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어떠한 상황이나 악조건에서든 그 어둠의 장막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빛의 구멍을 발견하고, 그 빛을 따라갈 때 자기 자신의 삶을 만든다. 모든 결핍은 그에 적절한 방식으로 우리를 가르친다. 바로 그런 ‘시작의 결핍’이 있었기에 그는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익혔고, 자기만의 길을 나아가기 위한 능력을 쌓을 수 있었다.
돈으로 나를 평가해달라
“그로부터 10년 정도는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러다 세바시를 만들기 1년쯤 전이었죠. 저는 ‘블로규멘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다큐멘터리는 짧아도 4주가 걸리는 대장정의 작업입니다. 우리 팀은 그 과정을 모두 제작일지처럼 블로그로 썼어요. 용산 참사 당시, 유가족은 모든 언론을 거부했지만, 오직 우리 팀만 받아주겠다고 했죠. 그렇게 유가족과 한 달간 함께하며 그 모든 과정을 ‘블로규멘터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TV 프로그램 <용산, 아벨의 죽음>은 그 해의 YWCA가 뽑은 좋은 프로그램상에서 ‘대상’을 받았죠.”
구범준 PD는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내게는 에피소드 하나하나에서 깊이 느끼는 것이 있었다. ‘블로규멘터리’라는 새로운 시도를 해본 이야기도 그랬다. 나도 직장생활을 해봤지만, 직장에 있으면 관성에 젖기 쉽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튀는 놈’은 어떻게든 욕을 먹게 되고, 결국에는 늘 하던대로 중간만 가자는 게 습관화된다. 그러나 그는 직장 안에서도, 자기의 창의력과 열정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온 듯했다. 나는 그 힘과 용기, 추진력과 기세랄 것에서 깊이 감화받았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애써서 대상을 받았지만, 대중의 관심은 예능 프로그램 등에 훨씬 쏠려 있었어요. 그러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가 닿는 것도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렇게 어떻게 사람들을 돕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도, 사람들에게 널리 닿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 고민의 끝에, 반년 뒤 ‘세상의 바꾸는 시간 15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바시의 이런 ‘탄생비화’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바시는 한 명의 PD가 무한 대기발령 속에서 혼자 뉴스 모니터링 홈페이지를 자발적으로 만들면서 자기의 추진력을 실험하고, 그 뒤 10년 넘게 자기만의 길을 찾기 위한 부지런하고 끝없는 시도 끝에 탄생하게 된, 한 사람의 일생이자 세계였던 셈이다. 그 프로그램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었다.
“세바시를 2011년 5월에 만들었는데, 당연히 처음에는 반응도 없고 썰렁했죠. 그러다가 2012년 1월에 처음으로 강연장 만석이 됩니다. 저는 국실장 회의에 들어가서, 세바시를 ‘사내 벤쳐’로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다른 건 둘째치고, 흑자를 유지하면 그렇게 해달라고 했죠. 사실, 자기를 돈으로 평가해달라고 하는 PD는 없어요. 오히려 적자니 흑자니 얘기하면 싫어하죠.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해서라도 세비시를 책임지고 이어가고 싶었어요.”
세바시는 결국 ‘흑자’를 유지하고, 2013년 7월에 사내벤쳐가 된다. 그 뒤, 3년 동안 흑자를 더 유지하면서 정식 법인으로 출범했다. 보통 프로그램 PD는 3년 정도 지나면 교체되지만, 이렇게 세바시가 ‘법인’이 되면서, 구범준 PD는 대표를 맡게 되고 13년째 세바시를 이어오고 있다. 그가 아니었어도 CBS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아니었다면 세바시는 없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한 프로그램을 회사로까지 만들어내진 못했을 것이다. 대개 고유한 삶이란, 그렇게 만들어진다. 기존에 있는 세상의 틀에 자기만의 스타일이라는 재료를 섞어, 전에 없던 무언가가 세상에 등장할 때, 그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삶은 모두 ‘고유함’의 반열에 들어선다.
의미를 좇는 마음
“저는 PD에요. 그러니까, 콘텐츠 제작자이죠. 콘텐츠 제작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다르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옳음을 추구하고자 해왔어요. 제가 생각할 때 세바시는 참 의미있고 옳은 콘텐츠죠. 세상을 바꾸는 이 옳은 콘텐츠들을 만들어왔다는 게, 제게는 삶의 의미입니다.”
구범준 PD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만 해도, 나는 PD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대체로 PD들, 특히나 시사교양 PD들은 나름의 ‘옳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돈을 많이 벌겠다거나 엄청 유명해지겠다는 마음 보다는, 세상에 의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PD들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바로 납득되었지만 이전에는 그런 생각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세바시를 너무 오래 이어오다 보니까 요즘에는 지칠 때도 있어요. 13년간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셈이니까요. 작년에는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면서, 더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저를 버티게 하죠. 저는 세상을 바꾸려고 PD를 해왔고, 그것이 제 삶의 의미가 되었어요.”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만의 ‘의미’를 좇는다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졌다. 다들 어떻게 더 돈을 벌 것인지,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갈 것인지, 어떻게 현실에서 자리잡을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자기 삶의 의미, 정의, 신념, 옳음을 좇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구범준 PD의 이야기가 어딘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도 세상에는 삶의 진짜 의미랄 것을 좇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말이다.
“저는 제 삶이 일종의 선순환에 들어서 있다고 느낍니다. 세상을 바꾸는, 세상에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그것은 제 삶에도 좋고, 제 삶에도 의미가 되고 있죠. 나아가 제가 만드는 콘텐츠들 자체가 저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주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강연을 하거나 하면, 의미를 좇으며 선순환에 들어서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삶도 과연 그런 선순환으로 굴러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들이 과연 이 세상에도 좋은 일일까. 내가 때론 세상에서 의미 있다고 믿는 일을 하면, 그 일은 내 삶에도 좋게 작용할까. 그런 일들이 또한 나에게 해롭지 않고 이로울까. 이런 질문을 하고 답하기는 쉽지 않지만, 삶에서 꼭 필요한 질문이라 느꼈다. 나에게는 ‘나의 세바시’가 있을까, 나는 나만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나는 2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이야기하고 나서도, 지친 기색 하나 없는 그가 너무 신기했다. 그는 곧바로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고, 강연 촬영을 간다고 했다. 그 체력이 비결이 무어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청년들이 농구하고 있는 영상을 하나 보여주었다.
“이게 저예요.”
20대들과 농구를 하는 그는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섞여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진심으로 놀라웠다.
“저는 행복은 근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세바시를 만들면서 무척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감정을 쓰거나 대화를 하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고, 무엇보다 행복과 불행을 따지는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근육을 키우려면 근육을 쓸 수밖에 없는 것처럼, 행복하려면 행복을 쓰는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기로 했다고 한다.
세바시가 있는 CBS 건물을 나오면서, 한동안 계속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의미라는 단어 안에는 ‘타인의 삶에 대한 나의 개입’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삶의 의미는 타인의 증언 속에 있다는 그의 말을 기억하고 싶었다. 나도 죽을 때까지 ‘삶의 의미’를 좇고 싶다고 생각했다.
* '정지우의 밀착된 마음' 인터뷰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형사사건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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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el
행복은 근육이다! 옳은 컨텐츠 세바시에서 느껴진 멋짐이 행복 근육이었군요. 13년만의 적자가 적자가 아니라, 투자 기간이었다는 인터뷰 글도 곧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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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안 맹민정
세바시는 늘 나아가고 있음을 그 변화가 항상 사람을 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지만 구범준PD님의 저런 시간들과 의미가 있으셨다는 사실을 이렇게 인터뷰로 알려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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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잇
13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한 프로그램과 함께하셨군요^^ 앞으로도 꾸준히 만들어가실 의미를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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