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키운 것은 불편함이었어요.”
<자존감수업>, <마음지구력> 등을 쓴 윤홍균 의사는 인터뷰 중간에 문득 자신에게는 어릴 적 마음의 병이 있었다고 했다. 달리 말하면, 그의 마음에는 항상 어떤 ‘불편함’이 있었다. 그는 자기의 삶이 그 불편함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고 했다.
“저는 조금 이상한 청소년이었어요. 무언가 마음 속에 가득했던 불편함이 있었죠. 아마 그 불편함 때문에 저도 모르게 도서관의 정신의학 책이 끌렸던 것 같아요. 주변에 도서관에서 정신의학 책을 굳이 빌려보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죠. 그렇지만, 저는 제 안에 있던 불편함의 정체를 알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순간 문득, 한 청년이 홀로 도서관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청년의 모습은 윤홍균 의사의 어린 시절이기도 했지만, 나의 청년 시절이기도 했다. 나 또한 친구들이라곤 아무도 없는 도서관 한 구석에 박혀 20대를 보내곤 했기 때문이다. 나도 내 안에 꿈틀대는 어떤 불편함, 불안, 낯선 마음을 해결하고 싶어 그렇게 부단히도 도서관에 갔을 것이다.
그러자 윤홍균 의사를 처음 만났던 순간도 자연스레 생각이 났다. 한 연말 모임 자리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가운데 다소 어색하게 앉아 있던 내게 그가 다가왔다. “평소에 글 잘 읽고 있어요. 왠지 저랑 매우 서로 닮은 것 같아서 말 걸어봤어요.”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게는 다소 영화같이 남아 있는 장면이다. 추운 겨울, 연말의 저녁 자리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득 말 걸어 온 그의 다정한 표정이 뇌리에 남아 있다.
“청소년기 이전에도 사실 저는 조금 어둡고 부정적인 편이었어요. 무기력하다는 말이 어울렸죠. 특히, 몸이 약해서 자주 아파서 학교도 종종 결석했어요. 동네 어른들도 저를 보면 늘 ‘기운 좀 내라, 어디 아프니.’ 그렇게 말하곤 했죠. 그러다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소설 <동의보감>을 읽게 되었어요. 소설에서 허준을 보면, 원래 방황하는 청년이었다가 의사가 되면서 근사하고 멋진 일들을 하거든요. 저도 의사가 되면, 그렇게 멋있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죠.”
그는 자신의 어릴 적 결핍에 대해 솔직히 말하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결핍이나 치부를 드러내길 꺼린다. 그것이 약점이 되고, 자기를 초라하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시종일관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느낌을 받았다. 나로서는 충분히 어색하고 낯설 수 있는 상황임에도, 금방 친근한 느낌이 들었던 건 그가 가진 솔직함의 힘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처음 의사의 꿈을 가졌고, 이후 의대에 입학해서는 자연스레 정신과를 택했어요. 저는 수학 같은 이과적인 것이나 손재주에 별로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대신 좋아하고 오래 해도 지치지 않는 게 ‘읽고 쓰는’ 것이었죠. 일대일로 대화하는 것도 좋아했고요. 그러다 보니, 정신과를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커다란 의미 부여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저 이과적인 것이나 손재주에 자질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자기 자질에 맞는 것을 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인생에서의 선택들을 거창하게 치장하기 바쁜 시대이지만, 그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한 인간으로서 누구나 할 법한 선택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자기 결핍을 마주하면서, 그저 자기에게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소박하고도 겸손한 태도처럼 느껴졌다.
경청하며 배우고 다시 이어주는 일
“저는 내원하시는 분들한테 배우는 점이 정말 많습니다. 선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들, 거기에다가 능력까지 출중한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가 삶을 배우게 돼요. 그런 분들이 그저 잠을 잘 못 자거나, 숨이 차거나, 비행기를 못 타거나 할 때 저를 찾아오곤 하는 것이죠.”
흔히 정신과에 다닌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나는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배운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손님이나 의뢰인을 존경하기 보다는 귀찮게 생각하거나 이용할 대상으로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를 느꼈다.
“정신과 의사가 하는 여러 일 중에 하나가 ‘듣는’ 일이에요. 잘 들어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죠. 물론, 현실적으로 한정된 시간 안에서 항상 많이 들어드린다는 건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종종 내담자분들이 ‘툭 터놓고 이야기하니까 마음이 해결되네요.’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또 배우는 거죠. 나도 힘든 일이 생기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툭 터놓고 이야기해봐야겠다, 하고요. 물론, 이론으로는 알고 있던 것들이지만, 그렇게 한 분 한 분을 만나며 더 진짜로 알게 되는 거죠.”
그는 정신과 의사가 ‘듣는 직업’이라고 했다. 그의 스승은 내담자가 한 페이지 말하면, 의사는 한 두마디 하는 게 역할이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많은 내담자를 만나야 하는 입장에서 하염없이 듣기는 쉽지 않지만, 경청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모모>를 떠올렸다. 소설 속 어린 소녀인 모모는 말하자면 ‘경청의 천재’로 나온다. 모모는 듣는 것으로 사람들을 치유하고,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준다.
“<자존감수업>을 시작으로 저는 몇 권의 책을 썼어요. 그런데 제가 쓴 책들은 어떻게 보면, 누군가 저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들이에요. 내원하시는 분들께 들은 이야기들도 있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에서 들은 이야기도 있죠. 그밖에도 여러 사람들을 통해 제게 들어 온 이야기들이 책으로 구조화된 것이죠. 저는 남들에게 들은 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고 느껴요. 내가 썼지만 내가 쓴 것 같지 않아요.”
그의 삶은 듣고 배우고 다시 나누는 일로 이어져 있었다. 삶이라는 게 때론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에서 보면 아주 단순하기도 하다. 그저 매일 내 삶에 들어오는 여러 배움들이 있고, 한편으로는 그 배움들을 다시 나누는 일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들어온 것 만큼을 내보내며 산다. 인생을 살아오며 배운 수많은 것들을 타인들에게 다시 내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단순성은 자아에 집착하기 보다는, 삶을 타인들과의 진심어린 교류라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방식일 것이다. 윤홍균 의사는 그런 아름다운 단순성의 경지에서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삶의 문제들에 대항하는 방법
“저는 정신과 의사가 일종의 군인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의 스트레스라는 거대한 주적과 전투를 벌이는 거죠. 스트레스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부상병들을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는 위생병 같은 역할이라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예방 사업 역시 중요합니다. 글을 쓰고 강의를 다니는 건 제게 일종의 부상을 방지하는 예방 사업에 참여하는 느낌이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싸워 이길 수 있길 바라며 부지런히 발로 뛰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에 좋은 쪽으로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윤홍균 의사는 병원을 운영하면서도, 작가로서 생활하며 집필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정신과 의사가 된 이후에는 일종의 사명감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자기 일에서 의미를 발굴하고, 그 누군가에게 기여한다는 마음이 그를 강하게 해주는 듯했다.
“사실, 정신과 의사들도 아플 수 있어요. 정신과 의사들은 내가 의사니까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죠. 털어놓을 용기를 내지 못해서 스스로 아파지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도 같은 사람일 뿐이고, 마음이 아플 때는 역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저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보고 있습니다. 약이 필요할 땐 약을 먹기도 하면서, 제 정신 건강을 챙기고 있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일도 제 삶에 의미를 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감기에 걸리듯이 마음이 아플 수 있다. 그것은 치부가 아니고, 누구에게나 살면서 있을 수 있는 문제다. 정신과 의사가 스스로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하니 참으로 위로가 되기도 했다. 윤홍균 의사가 택한 하나의 방법은 좁은 하나의 세계에만 갇혀 있지 않고, 넓은 세계를 돌아다녀 보는 것이다. 강연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삶의 방향을 잡는 것이다. 그로부터 타인에게 기여한다는 삶의 의미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삶에는 ‘대책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무슨 일이 생기면, 대책이 있어야 하는 거죠. 가족하고 시간을 보내든, 문제를 함께 상의하고 조언해줄 사람이 있든, 경제적이거나 시간적인 여력이 있든. 삶에는 언제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대책이 있는지를 미리 생각해야 합니다. 예전에 저는 대책이 없었거든요. 요즘에는 대책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있고, 스스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알죠. 대책 있는 시스템을 주변에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날, 삶에는 갑작스러운 우울이나 절망,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 어떻게 그 문제를 이겨낼지도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그 문제를 도와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가족이 그런 역할을 해주겠지만, 그 밖에도 좋은 관계가 필요하다. 솔직하게 문제를 털어놓고 조언과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곧 ‘대책’이다. 우리는 삶이라는 전투 속에 있다. 전투를 혼자 치를 수는 없다. 부상 예방 훈련을 받든, 부상 이후 치료를 받든, 함께 전투를 치루든, 그 모든 일에는 타인의 존재가 필요하다. 삶은 사람 사이로 들어서는 일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 용기와 부지런함에 관하여
“저는 워커홀릭으로 10년 이상을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삶이 조금 후회가 되어요. 만약 다시 지난 10년을 산다면, 저는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 것 같아요. 수험공부하듯이 시간을 할애해서 가족과 양질의 시간을 쓸 것 같아요.”
나는 자기 삶의 어떤 면을 ‘후회’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그의 솔직함에 놀랐다. 생각해보면, 나는 삶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데 일종의 두려움이 있지 않나 싶다. 지나온 삶을 어떻게든 긍정하려는 습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자기의 결핍이나 문제를 솔직하게 말했다.
“얼마 전, 미국에 사는 조카가 대학생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의 형은 미국에서 20년 간 살고 있는데, 제가 20년 동안 한 번도 미국에 가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거죠. 조카를 한 번도 못 봤던 거예요. 그 때, 저는 무언가 삶을 잘못 살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휴가를 내고 미국에 1주일 다녀왔어요.”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어딘지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 들었다. 중요한 인연과의 만남을 미루고 미루다가, 어느덧 만난지 한참이 지나버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인생이 그렇게 바빴을까, 하루도 내지 못할 만큼 시간이 없었을까, 아니었다.
“도대체 왜 20년간 형을 찾아가지 않은걸까 생각했어요. 형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닌데요. 저는 제가 ‘게을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사는대로 사는 게 편하니까, 그렇게 살았던 거에요. 내담자분들께 일주일 정도 병원을 비우겠다고 말하는 게 어딘지 두렵고 귀찮았던 거죠. 그러나 막상 말하니 내담자분들은 잘 다녀오라고 했어요. 그분들도 제가 행복하길 바랐지, 워커홀릭이길 바라진 않았어요.”
문제는 두려움과 게으름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연락했을 때, 내 연락을 귀찮아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 내 삶의 흐름을 끊고 어딘가 다녀와야 한다는 데서 느끼는 부담감과 게으름. 나는 윤홍균 작가의 말이 맞다는 걸 깨달았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가려면, 내 안의 두려움과 게으름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려면, 내 삶을 후회하지 않고 진심으로 좋아하려면, 시간을 내는 부지런함과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윤홍균 작가를 만난 것도 어쩌면 모두 용기와 부지런함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애써 내게 와서 말을 걸어준 그의 용기, 그에게 다시 만나자는 부탁을 한 나의 용기, 바쁜 일상 가운데도 애써 시간을 내기로 한 그의 부지런함, 그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 나의 부지런함, 그 모든 게 그와 나 사이의 시간을 만들었다. 내 삶에 바로 그런 용기와 부지런함이 자리잡길 바랐다. 삶은 두려움과 게으름이 아닌, 용기라는 토양 위에 핀 부지런함이라는 숲에 있다.
* '정지우의 밀착된 마음' 인터뷰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형사사건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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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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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가려면, 내 안의 두려움과 게으름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려면, 내 삶을 후회하지 않고 진심으로 좋아하려면, 시간을 내는 부지런함과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 오늘의 명언으로 제 머리와 가슴에 접수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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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잇
두 분 인터뷰를 통해서 두려움과 게으름을 마주하는 불편한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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