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피온스, 헤세, 전혜린, 그리고 독일

독일에 정말로 부러운 게 있다면

2023.08.22 | 조회 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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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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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피언스와 헤르만 헤세라니 이상한 조합이군”

20년 전, 업무로 만나 독일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냐고 물었을 때 내가 대답하자, 내 나이많은 독일 친구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일로 만났지만, 내가  일을 떠나서도 오랫동안 우정을 이어온 그 친구는 몇 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스콜피언즈는  30여 년 전, 락 발라드 Still loving you와 Holiday  여러 명곡들로 오랫동안 한국에서 사랑받았던 독일출신 헤비메탈 그룹이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이나 황야의 늑대 등으로 사랑받았던 독일의 소설가다. 당시 문학을 좋아하던 많은 한국 젊은이들처럼 나도 헤세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탐닉하고 열광했던 헤르만 헤세나 헤비메탈 그룹 스콜피언스가 주는 파편화된 이미지가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에게 준 첫 번째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러나 그런 조각들로 한 나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독일을 생각하면 전혜린도 빼놓을 수 없다. 젊은 채로 죽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그의 글에는 독일의 풍경들이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가 아름답게만 묘사하는 독일 슈바빙과 다른 고도시들의 풍경들을 글로 접하면서 의문을 갖곤 했다. 외롭고 쓸쓸하고 아름다운 독일 지방도시의 풍경과 교양 있고 지적인 독일 사람들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는 흥미로웠지만, 어린 나이에도 나는, 이렇게 좋게만 묘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곳의 이방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1970년대에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에게 군사정권 하의 한국사회에 비해, 독일사회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을지 이해가  된다. 거기다가 그는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 감수성으로 오랜 역사와  예술이 건축과 무형의 문화로 누적된 나라를 방문했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전혜린이 묘사한 것처럼 독일이, 아니 한 사회가 일방적으로 좋거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는 게 당시 내 생각이었다. 관광지가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관광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광객일 때 우리가 방문하는 곳은 관광지가  된다. 우리가 이방인일 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방인이 되어 이방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People are strange, When you’re a stranger. 미국의 락밴드 도어스의 노래처럼. 서로가 이방인이 되어 서로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원래의 모습과 약간 다를 것이다. 

 나는 전혜린의 삶을 잘 알지 못하나 오랫동안  때문에 자주 방문했고, 지금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그가 묘사하는 것만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점은  잘 안다. 여기도 불평등은  문제고 사회 인프라는 한국보다 낫다고  수 없으며  적지만 인종 차별주의자들과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둘은 대개 서로사이가 좋다. 대부분 같은 집에서 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수많은 장점이 있는 좋은 나라다.  대한민국이 그렇듯이. 

 내가 독일 사회에 대해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점은 유럽에서도 가장 부자 국가라는 사실이나 멋진 건물들 같은,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인 자산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부러움을   경험한 일 있다.  

 4년 전 가족들과 독일을 여행할 때다. 프랑크푸르트를 떠난 직후에 그곳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누군가 끔찍하게도, 기차를 기다리던 엄마와 어린 아들으  기차가  들어서고 있는 철로로 떠민 것이다. 기차에 치인 아이는 즉사하고 엄마는 크게 다쳤다. 이때 이상했던 점은, 그 어떤 언론에도 범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범인에 대해 들은 후 나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범인은 아프리카계 난민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곳 언론 중 그 누구도 사람들의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이용해서 클릭수를 끌어올릴 이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극을 이용하여 이 사회내의 증오를 부추기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사회적인 합의. 누군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공기처럼 당연스럽게 이 사회를 움직이는 이런 약속이야 말로 독일 사회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히도 이건 아직 우리나라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 하나, 독일을 부러워하게  경험은  독일에서 내가 경험했던 잊지 못할 아름다운 순간과 관련 있다.

독일의 5월은 따뜻하고 즐거운 시기다. 햇볕을 보기 힘든 가을 겨울과 달리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진다.  삶아서 홀랜다이즈 소스를 얹어 감자, 햄과 함께 먹는 맛있는 슈파겔이나 내가 너무나 사랑하게  과일 미라벨처럼 이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도 많다. 독일의 5월, 들판을 걷다 보면 괴테나 하이네 같은 독일의 문호들이 왜 5월을 그토록  찬양했는지 저절로 이해가 된다.

바이에른의 마인강,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찍은 사진.
바이에른의 마인강,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찍은 사진.

 2022년 5월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바이에른주의 인근 도시들을 자전거와 기차로 샅샅이 훑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살 집을 찾고 있었다. 이동이 적은 보수적인 사회라 매물로 나오는 부동산도 굉장히 드물었고, 그 물건마저 독일어에 서툰 외국인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벨을 눌러야 기차가 서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는 완행열차를 탔을 때였다. 날씨는 따뜻했고 강변을  따라  달리는 기찻길 주위에는 꽃들이 만개했다. 한 마을에서 휠체어를 밀고 나이 먹은 엄마가  탑승했다. 휠체어에는 스물 중반쯤 되었을까?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들이  타고  있었다. 독일 지역 기차의 가운데 칸은 자전거나 휠체어를 대기 넉넉한 공간이 있다. 내가  자리 잡은 반대쪽에 어머니와 아들이 자리를 잡았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미소를 교환했다.

 마인강은 잔잔했고 기차는 그 강변을 따라 달렸다. 기찻길과 평행한 자전거길에는 햇볕을 받으며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강변에는 봄꽃들이 한창이었는데, 무엇보다 강둑을 가득 채우는 하얀 수선화들이 장관이었다.

 휠체어를 밀던 어머니는 뜨개질 거리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고, 아들은 창밖을 보며 가끔 의미 없는 소리를 질렀다. 창 밖에는 햇살이 부서지는 강 위를 헤엄치는 오리와 거위들이 보였다. 기차는 그 옆을 덜컹거리며 천천히 달렸다. 그 젊은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가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젊은이의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냈다. 휠체어 위의 젊은이가 가끔 시끄러운 소리를  지를 때도  있지만 기차 안의 누구도 불평을 하거나 그들을 주목하지는 않았다.

 달리는 기차의 창가를 보던 아들이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여 흥분한 듯 굽어진 손을 휘저으며 몇 마디 말을 하자 어머니는 아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더니 아들의 이마에 키스했다. 따뜻한 기차 안은 5월의 햇볕으로 가득 차 있었고, 평온한 무관심과  타인에 대한 배려, 봄날의 공기가 승객들과 함께 열차 안을 포근히 채우고 있었다.

 인생의 어떤 순간은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또는 짧은 동영상 클립처럼 머릿속에 저장이 되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그 순간이 그러했다.  따뜻한 햇볕, 기분 좋게 덜컹거리는 기차의 소음, 책을 읽거나 창밖을 보는 사람들, 그리고 병든 아들과 웃으며 평온하게 그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이 모든 것들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이 평온하고 차분한 삶을 가능하게 하고 지탱하는 것에 대해 아마도 나는 많은 가설을 세우고 추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 풍경을 즐기고, 가능하면 그 풍경 중의 하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당시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어머니가 저토록 평안한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해준, 아무 도불평하거나  얼굴을 찡그리지도, 동정하지도 않으면서도 배려가 깔린 무관심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독일이라는 사회에  대해 부럽거나, 애정을 느끼거나 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내 친구 만화가 왕지성이 그려준 그림. 
내 친구 만화가 왕지성이 그려준 그림. 

*글쓴이 - 정희권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보드게임을 만들며 글을 씁니다.

세아들과 강아지 한마리를 키웁니다. 

스파이시, 렉시오, 리니지2 보드게임, 등 20여종의 게임을 직접 개발하거나 프로듀싱 하는 일을 했고, 단행본 <세상의 모든 청년>과 <내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의 공저자로 참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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