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꾸준함’이라는 강점이 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대체로 꾸준히 해내는 편이다. 덕분에 안정적인 결과를 얻게 되거나 원하고 그리던 지점에 가까워지는 기쁨을 종종 누린다.
어릴 적 나는 쉽게 포기하고 쉽게 질리는 아이였다. 호기심이 많아 언니들이 좋다고 하는 것,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것을 곧잘 따라 해 보곤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관심이 시들해지거나 노력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질리는 걸까? 얼마 노력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거 보니 잘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라며 스스로를 탓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취향과 진짜 관심사,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다른 이들이 좋아하는 걸 그저 따라 하고, 내 능력치는 생각도 않은 채 무작정 덤볐으니 실망스러운 결과는 당연한 수순이었지 싶다. 그렇게 흔들렸다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뜨겁게 불사르다 슬그머니 포기하기를 반복하면서 나의 한계가 어디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조금씩 폭을 좁혀갈 수 있었다.
나의 꾸준함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 다닌 미술 학원에서였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입시를 위한 몇 년 간의 강도 높은 훈련을 견뎌낼 만큼 그림 그리기를 사랑하고 잘 해낼 줄은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나도 정말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크고 작은 포기를 거치면서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믿을만하다’ 고 느꼈던 것 같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을 밀도 있게 쌓아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쌓은 시간은 결국 나를 ‘믿을만한 사람’으로 빚어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배웠다.
30대까지 여러 분야에 나를 던져보며 나의 한계와 다양한 능력을 실험하는 시간을 이어갔다. 재능이 전혀 없는 분야, 재능은 있지만 삶으로 지속하기엔 어려운 분야, 내 삶의 일부로 열어두고 가끔씩 활용해도 될 분야, 잘할 수 있고 하는 내내 즐거운 분야 등을 확인하면서, 앞으로 어디에 ‘꾸준함’을 두고 스스로를 ‘믿을만한 사람’으로 만들어갈지 그림을 그려가곤 했다.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새로운 선택을 앞두었을 때 특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 일을 얼마큼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있고, 혹여 예상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좌절하기보단 무엇이 도움이 될지를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대개는 오랜 시간 꾸준히 하는 것이 ‘이 모든 어려움의 답’임을 깨닫게 된 경우가 많았다. ‘꾸준함’ 은 결국 스스로를 신뢰하게 만들고, 그 신뢰는 탁월함에 이르게 하는 힘이란걸, 그 이후에는 지금 느끼는 대부분의 어려움이 의미 없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인생 후반전은 어디에 이 ‘꾸준함’ 을 쏟아볼까 생각해 보곤 한다. 입양 관련 상담, 글쓰기와 그림그리기, 가드닝 등 이제껏 해왔던 일들의 연장선이 대부분일 수도 있지만, 달리기나 혼자 하는 여행, 요리 등 이제껏 주요 관심사에 들어오지 못한 영역을 꺼내 ‘꾸준함’을 더하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몸에 익숙해 지기까지 일정 시간을 쏟고, 낯선 세계를 탐색하는 가운데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며, 천천히 그 안에 나를 펼쳐가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생각지 못한 지점에 이르지 않을까 혼자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나이가 드니 시간이 제일 아깝다. 남의 이목과 막연한 두려움, 스스로에 대한 무심함에 중요한 것을 떠나보낸 시절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여러 감각을 깨워둔 채 나 자신과 속닥거려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앞으로도 ‘꾸준히’ 여러 번 신날 것 같다.
* 매달 13일 ‘마음 가드닝’
글쓴이 - 이설아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을 썼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입양가족의 성장과 치유를 돕는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로 있으며, 가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손에 잡히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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