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삶이 녹아들어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아마도 그 말의 저의는, 단지 시장의 성공 공식을 따라가는 쫓아가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취미나, 취향, 삶의 경험을 게임에 담아 일종의 자기표현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던 듯하다. 그런 면에서 작년 한 해 동안 맡았던 한 가상현실 낚시 게임을 업데이트하는 일은, 오랫동안 스킨 해루질을 해왔고, 낚시도 잘은 못하지만 어느 정도 경험은 해봤으며, 평소에 수산물이나 낚시 유튜브를 챙겨보는 아재 취향인 나에게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나름 꽤 인기 있는 게임이었지만 현실적인 그래픽에 비해 낚시 경험은 너무 단순했기에, 나는 이 게임을 보기만 리얼한 게임에서 플레이도 리얼한 게임으로 만드는 일을 맡았다. 나는 내가 경험해본 낚시의 디테일과 나름의 로망을 게임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먼저 낚싯대의 움직임으로 마치 가짜 미끼를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능동적인 낚시 장르인 루어낚시를 디테일하게 구현했다. 낚싯대를 스냅을 주듯 살짝 쳐 올려서 루어가 살아있는 듯하게 움직임을 주는 트위칭 액션을 추가했다. 트위칭을 하는 방향으로 루어가 물리적으로 리얼하게 움직이게 해서 루어의 움직임을 보는 재미를 더하고, 움직임의 강도에 따라 실제로 물고기가 끌리도록 했다. 하지만 그러면 플레이어가 계속 트위칭만 할 수 있어 플레이가 단순하고 비현실적인 될 수 있기에, 트위칭을 할 때마다 낚싯줄이 조금씩 풀려서, 다시 릴을 감아서 줄을 팽팽하게 해 줘야 트위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부분을 리얼하게 구현하기 위해 기존의 구조를 다 뜯어고쳐야 했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구 끝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루어의 움직임과 자연스러운 줄 풀림 효과를 구현할 수 있었다.
또한 기존의 평면적인 낚시 경험에 “깊이”를 더했다. 말 그대로 2차원 평면의 게임 영역에 새로운 세로축을 더하고, 어종마다 실제 데이터에 기반하여 다양한 수심에 서식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특정 수심에 서식하는 특정 사이즈의 어종을 공략하기 위해, 다양한 부력을 가진 루어를 사용하거나, 찌낚시로 특정 수심에 특정 미끼를 달아 공략하는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더 넓어진 영역과 다양해진 전략성은 물고기를 잡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음을 뜻하기도 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힌트가 필요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근교의 강을 산책하다가 영감을 얻어, 수면 근처에 있는 어종의 위치는 잔잔한 파동으로, 바닥에 있는 어종의 위치는 과 가끔씩 올라오는 공기방울로 시각적 피드백을 주기로 했다. 또한, 미끼가 땅바닥에 닿을 때 살짝 느껴지는 진동으로, 미끼가 바닥에 닿았음을 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했다.
미끼를 특정 수심에 놓고, 흘러가는 찌의 움직임을 느긋하게 보며 하는 찌낚시의 경험도 디테일하게 구현했다. 다양한 종류의 찌를 준비하고, 찌의 종류와 환경에 따라 흘러가는 흘러가는 속도가 달라지도록 하여 원하는 속도로 낚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물고기의 입질을 받을 때마다 찌가 조금씩 까딱거리는 움직임을 주고, 이는 실제로 그런 것처럼, 입질을 하는 어종의 크기에 따라 움직임과 진동의 크기가 달라지도록 하여, 숙련자는 입질만 보고도 어떤 어종이 물었는지 대략 예상할 수 있도록 했다. 밤에 하는 찌낚시 경험도 더욱 리얼하게 구현하고 싶었다. 실제로는 물고기는 거의 잡지 못했어도, 캄캄한 밤에 찌의 불빛을 지켜보며 맥주 한잔 하는 것이 나에겐 밤낚시의 큰 로망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불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빛이 물속으로 쏙 사라졌을 사라지고, 이때 재빨리 챔질을 해야 한다. 그런 경험을 게임에서도 주고 싶었고, 개발자 분이 몇 주간 머리를 쥐어짜 내서 빛 위에 산란되는 찌의 반사광 효과를 멋지게 구현해 주었다.
가상현실에서 현장감을 느끼는 데는 소리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소리의 디테일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낚시채비가 실제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 녹음 스튜디오에 작은 욕조를 만들었고, 미끼와 채비의 종류별로 다양한 세기로 물에 던져가며 사운드를 녹음했다. 루어를 들고 있을 때 짤랑거리는 소리를 종류별로 녹음하여 루어의 물성이 더욱 느껴지도록 하고, 각종 릴의 종류에 따라 감는 소리를 다양한 세기로 녹음하여 릴을 감는 속도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도록 했다. 낚싯대를 빠르게 움직일 때 초릿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소리를 녹음하고,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낚싯대를 움직이는 속도에 비례해서 낚싯대 끝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의 볼륨이 커지고 작아지게 했다. 또한, 시스템의 복잡도가 증가한 만큼 게임의 접근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고, 전문 성우와 함께 녹음하여 튜토리얼과 세세한 가이드를 전면적으로 개선했다.
이외에도 한 글에 담기는 너무 많은 디테일과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터무니없이 많은 이 요구사항들을 짧은 시간 안에 구현하기 위해 야근은 일상이 되었다. 정상적으로 게임을 서비스하는 와중에 별도로 업데이트를 진행해야 했기에, 안 그래도 적은 인원은 더욱 모자라게 됐고, 각종 돌발 상황에 대응하느라 개발이 늦어지기도 했다. 사실, 잘 나가고 있는 게임에 이 정도의 대대적인 변화는, 차라리 속편을 만들면 만들었지, 일반적으로는 너무 위험하여 거의 시도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잘 나가는 게임만 망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원작자의 전폭적인 지원과 거의 일상을 반납하듯 하며 각자 자기 몫 이상을 하는 동료들과 함께, 이 무모한 업데이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진행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수많은 팬들의 자발적인 참여였다. 이 많은 변화들을 테스트 없이 바로 내놓을 수는 없었기에, 개발 중인 게임을 일부 팬들에게만 공개하는 비공개 베타 테스트(CBT)를 진행했다. 워낙 많은 변화가 있는 만큼 게임은 결함 투성이었지만, 그들은 미완성인 상태의 게임을 기꺼이 자신들의 시간을 내어 테스트해주었다. 미세한 변화에도 그들은 가감 없는 피드백과 제안을 끊임없이 해주었고, 그중 많은 것들은 실제로 게임에 들어가기도 했다. 예전에 글을 쓰는 일을 했다는 한 사람은 자기가 게임 내의 텍스트를 모두 검수해주겠다고 했고, 잘못된 문법, 어색한 표현은 그의 손을 거쳐 매끈하게 정리되었다. 따로 금전적인 보상을 주는 것이 아닌데도 이렇게 이 게임에 정성을 쏟는 사람들의 반응에 더욱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변화에 부정적이었던 사람들도 대부분 긍정적으로 바뀔 때까지 끊임없이 수정과 개선을 계속했다. 언젠가부터, 팬들도 함께 이 게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는 팬들 뿐만이 아니었다. 게임에 쓰일 맵의 이미지를 찍어주는 한 외국인 사진작가가 있었다. 그쪽이 먼저 이 게임에 참여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같이 일하게 된 케이스였는데, 촬영 장소와 계획을 한참 시간을 들여 정리해서 주면, 더 좋은 장소가 있다며 끊임없이 제안을 하는 바람에 일을 주는 쪽이 오히려 귀찮을 정도로 너무나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보내오는 작업물의 퀄리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몇 개월 간 작업을 하고 나서야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자기가 다리가 불편해서 잘 걷지를 못한다고 말이다. 자기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이야기를 했다면, 내가 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것 같아 일부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제야 종종 샘플로 보낸 사진들에 있던 휠체어가 이해가 됐다. 늘 촬영을 갈 때 부인과 함께였던 이유도 설명이 됐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때때로 펜스를 넘어 몰래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몸이 멀쩡한 사람도 진입하기 어려운 험한 갯바위를 가달라고 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럼에도 늘 최상의 결과물을 보내온 그의 노력에 감동했고, 그 일에 더욱 정성을 쏟을 에너지를 주었다.
분명 나는 그 일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늘 말하고 다녔던 것처럼, 게임에 내 삶의 경험과 취향을 듬뿍 담아낼 수 있었다. 업데이트 후, 루어의 움직임이 너무 리얼해서 소름 돋았다는 리뷰를 보고, 미끼가 바닥에 닿을 때 살짝 느껴지는 진동을 두고 좋은 디테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의도한 경험이 전달된 것 같아 속으로 매우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보다 감명 깊었던 것은, 자신의 삶을 기꺼이 쏟아붓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경험이었다. 함께 밤을 새우고, 종종 주말까지 반납하며 고생한 동료들, 자신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개발 과정을 도와준 사람들, 불편한 몸으로 오지까지 가며 사진 촬영을 해준 사진작가와 함께 한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나를 표현하고 싶은 계기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샌가 거기에는 함께 한 모든 이들의 삶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두 번의 업데이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여러 사정으로 그 회사와 게임을 떠났다. 물론 허무함과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이 아주 허비한 시간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단지 잘 만든 게임을 넘어 많은 이들의 삶에 울림을 주는 경험이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바치고 정성을 쏟았을 것이다.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녹여낸 삶과 정성이 하나하나 모여서 그 게임을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을 수 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게임을 만드는 여정에 참여했음을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이다. 비록 그 결실은 다 나눠 받지 못했어도, 받아 마땅한 존중을 받지 못했어도, 함께 그 게임을 만들며 고생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매달 11일 ‘게임과 삶의 연대기’. (글을 제때 마무리 못하여 하루 늦게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글쓴이 - 김종화
독립 게임 개발사 대표와 게임 회사 직원을 오가며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부유한 자연인으로 살며, 삶을 담아내는 게임을 만들어가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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