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_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_메이

독일에서 만난 채식주의자 이야기

2022.08.14 | 조회 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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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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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독일인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날이었다. 평소라면 어려울 것 없는 식사 준비였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초대하는 친구 중 한 명이 고기와 생선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할 줄 아는 요리가 꽤 많다고 생각했는데 떠오르는 게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불고기, 제육볶음, 잡채, 치킨, 삼겹살. 대충 나열해봐도 하나같이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었다. 고민 끝에 남편은 비빔국수를, 나는 김치전과 붕어빵을 준비했는데 아쉽게도 그 친구는 매운 음식도 잘 못 먹었기 때문에 비빔국수도 거의 먹지 못했다.

독일어 수업을 함께 듣는 사람들 중에는 무슬림이 많았다. 국적은 이란, 터키, 모로코 등 다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추천받는 레스토랑은 돼지고기를 팔지 않는 곳들이었고, 라마단 기간에는 금식이 빈번하게 대화의 주제로 등장했다. 수업 종강을 앞두고 다함께 피크닉을 간 적이 있는데, 각자 자신의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오는 게 과제였다. 나는 소불고기를 만들어갔고 나무젓가락도 함께 준비했는데 당황스러운 건 젓가락을 못 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한 무슬림 학생은 ‘돼지고기니? 소고기니?’를 묻고나서야 먹기 시작했다. 젓가락을 못 쓰는 사람, 매운 걸 못 먹는 사람,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음식을 낯설어하며 맛을 봤다. 심지어 태국 학생은 쌀밥을 해왔는데, 그 자리에서 손으로 주물러서 밥을 내 입에 넣어주는 바람에 나 역시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독일어 수업에서 다같이 떠난 피크닉. 각자 자신의 나라 음식을 하나씩 가져왔다.
독일어 수업에서 다같이 떠난 피크닉. 각자 자신의 나라 음식을 하나씩 가져왔다.

30년 넘게 한국에서 살면서 누군가와 밥 약속을 잡을 때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주제였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은 많지만, 안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는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물론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도 없다.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를 잘 먹고, 젓가락질도 잘 하고, 가학적으로 매운 음식이 아니고서야 대체로 매운 음식도 잘 먹는다. 나와는 완전히 상극인 사람조차도 대체로 제육볶음을 잘 먹고, 젓가락질도 잘하고, 후식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어느 것 하나 공통점 없을 것 같은 사람조차도 식습관은 거의 비슷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외국인과 함께 밥을 먹을 일이 없다보니 이렇게 다양한 식문화를 공유하는 일이 낯설게 느껴졌다.

큰 도시든 작은 마을이든 독일의 레스토랑을 가면 반드시 메뉴판에 채식 메뉴가 따로 있다. 아주 작은 식당일 경우에는 메뉴 이름 위에 채식이라는 표기만 작게 해두기도 한다. 비록 육식 메뉴에 비하면 채식 메뉴가 현저히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본인의 신념에 맞게 음식을 고르는 일이 어렵지 않다. 반면 독일인 친구가 1년간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머문 적이 있는데, 그녀는 외식하는 게 꽤나 힘든 경험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대부분의 식당에는 채식 메뉴가 구분되어 있지 않고, 들어가는 재료가 따로 표기되어 있지도 않다. 채식하는 독일인 친구가 처음 분식집에 가서 고기 안 들어가는 메뉴를 물어봤더니 야채 김밥에는 고기가 안 들어간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물론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야채 김밥에도 두꺼운 햄이 들어갔고, 음식을 받고 당황한 그녀는 햄을 하나씩 골라내고 먹어야 했다.

종종 한국인 중에서도 SNS를 통해 알게된 사람들 중에 채식주의자라고 밝히는 경우가 있다. 다만 눈에 띄는 건 상당수가 자신이 왜 채식을 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동물을 너무나 사랑한다거나, 환경을 생각한다거나, 알러지가 심하다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들을 설명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채식을 한다고 해서 꼭 자신의 모든 행동이 환경을 위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노력하는 중이라며 ‘자신이 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하는' 반성적인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채식주의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의 댓글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환경 생각하는 사람이면 자동차도 타지 말고 에어컨도 켜지 말아야지.” 채식주의는 말 그대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인데, 때때로 이런 극단적인 비아냥들이 따라붙기도 한다. 마치 채식주의라고 선포하는 것이 위선이라도 되는 양 도덕적인 흠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꼭 악의적으로 캐묻지 않더라도 왜 채식을 하냐는 집요한 질문도 따라붙는다. 건강상의 이유로 알러지가 있어 고기를 못 먹는다는 불가피한 사유가 아니고서야, 고기를 사랑하는 한국에서 신기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 곳에서는 서로 다른 식습관을 갖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그 이유를 묻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 채식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왜냐고 묻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안 먹는지 물어본다. 채식주의도 스펙트럼이 넓다보니 고기만 안 먹는 사람, 고기와 생선만 안 먹는 사람, 유제품도 안 먹는 사람, 고기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조미료까지 안 먹는 사람 등 다양하다.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건 오직 ‘어떻게' 준비하면 될 지다. 겨우 질문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왜'를 묻지 않는다는 건 취향이나 신념의 정당성을 따져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신념 혹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꽤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차이를 가져온다.

특별히 이 곳의 의식 수준이 높아서라기보다는 그만큼 다양성을 부딪혀 겪는 문화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모두가 같은 습관과 취향, 신념을 공유하는 곳에서는 낯선 선택에 대해 수용하는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애초에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면 자연스레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기를 쓰고 다양한 상황에 노출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어색하고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타인을 수용하는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꼭 먼 타지로 가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위 사람들의 사소한 차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연습이 중요하다. 회식에서 혼자 술을 안 마시는 사람, 남들과 다른 옷을 입고 독특한 음악을 듣는 사람, 그 나이라면 마땅히 할 법한 선택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 도대체 왜 그러냐는 질문보다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묻는 연습이 내가 있는 곳의 다양성을 확장시키는 시작점이라 생각한다.

 

* 글쓴이 - 메이

유학생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신혼 생활을 꾸리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 독일에서의 첫 사계절을 보내며 익숙해진 것들과 여전히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관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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