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회사에서 만든 《데미안》은 내 편집 이력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만든 책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서 드라마틱하다 함은……
《데미안》의 번역 원고는 세 번째 역자를 거치고서야 출간되었다. 첫 번째 역자 선생님은 타 출판사의 번역을 지나치게 참고했다. 나는 그것을 늦게(?) 알아챘다는 이유로 사장님께 매우 혼났다. 역자 선생님과 계약을 파기하게 되었다.
두 번째 역자 선생님의 번역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것이 헤세의 문장이었던가……? 아무래도 민음사나 열린책들에 이어 세계문학전집 후발주자인 문학동네는 원전에 충실한 꼼꼼한 번역으로 차별성을 꾀했다. 원전 대조는 물론이고 타 출판사와의 번역 비교도 편집자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번 번역 원고는 헤세가 쓰지 않은 부사와 형용사들로 문장이 오히려 미려해졌다. 이걸 어찌하지? 고민하다가 사장님한테까지 보고가 되었다. 나는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사장님께 또 매우 혼났다. 역자 선생님께 출간 방향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다시 계약을 파기하게 되었다.
세 번째 역자 선생님께는 매우 촉박한 일정으로 번역 의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두 달 만에 번역, 해설, 편집까지 마쳐야 하는 일정이었다(이것은 매우 무리한 일정이 아닐 수 없다). 역자 선생님은 마치 원더우먼처럼 달리셨고, 대략 3주 만에 번역을 끝내셨다. (꿈과 무의식에 관한 C.G. 융의 이론으로 《데미안》을 새롭게 해석한 역자 선생님의 해설에 대해서는 나도 매우 자부심을 느끼는 바이다.)
그 후로는 내가 달릴 차례다. 나는 《데미안》 원서와 타 출판사 번역본을 나란히 놓고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해가면서 교정을 봤다. 토마스 만이 《데미안》에 대해 쓴 영문판 서문을 찾아내서 부록으로 실었다. 그때의 집중력과 에너지로 일을 했으면 나는 아마 세계 3대 편집자가 되었을 것이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선배 편집자가 최종 교정(일명 OK교)을 봐주시기로 했다. 그만큼 《데미안》은 중요한 책이었다. 그 교정지를 역자 선생님께 보내드렸는데, 교정지를 받자마자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노발대발하셨다. 이것은 나의 문장이 아니라고 하셨다. 선배님과 나는 벌벌 떨며 댁으로 직접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은 번역이 훌륭한 만큼 일을 깐깐하게 하시기로 소문난 분이셨다. 우리는 역시 선생님께 혼쭐(?)이 나고 다음 날 회사로 출근했다. 미치는 줄 알았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역자 선생님이 화가 이만큼 나셨다는 소리를 듣고 이번엔 사장님이 개입하셨다. 역자 선생님과 식사 자리를 만들라고 하셨다. 나와 선생님, 사장님 그리고 아마 국장님이 동석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어른들(?)의 모임이라 그런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보였지만, 나는 그 분위기가 무서웠다. 당시 새끼 편집자였던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쭈그리고 앉아 빈 잔에 맥주만 따라드렸던 것 같다.
그 후로 사장님과 역자 선생님의 통화가 몇 차례 있었다고 들었고, 어찌어찌하여 교정은 일정 선에서 합의를 보게 되었다. 드디어 끝난 것이다! 드디어 끝난 것이다! 그렇게 나온 책이 《데미안》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혼난 기억밖에 없다. 이렇게 되뇌었던 기억밖에 없다. 당최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
그 후로 내 삶은 별 탈 없이 흘러갔는가? 《데미안》이 세계문학전집 101번으로 출간되고, 105번으로 출간하게 되는 《롤리타》에 나는 또 휘말리게 되는데……
* 글쓴이 고우리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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