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게임을 모른다

게임 제작자의 욕망_우리는 게임을 모른다_지민웅

가장 큰 힘에의 의지

2023.10.09 | 조회 1.07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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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창고지기 게임 소코반. 제가 처음 접한 비디오 게임입니다.
창고지기 게임 소코반. 제가 처음 접한 비디오 게임입니다.

 

아버지가 286 컴퓨터에 설치해 주신 소코반(창고지기 퍼즐 게임)을 플레이하며 자란 저는, 어려서부터 컴퓨터게임의 세계에 매료되었고, 막연하게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입학한 컴퓨터공학과 공부가 적성에 잘 맞지 않았고, 한국에서 인기 있는 게임이 제가 개발하고 싶었던 게임과는 괴리가 있어 다른 분야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돌아돌아 오다 보니 어느새 미국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더군요.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의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센터Entertainment Technology Center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게임회사에 취직하여 지금까지 일하는 동안, 게임을 만들기 위해 저처럼 자신만의 여정을 밟아온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왜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요? 지난 뉴스레터에서 살펴본 것처럼 게임개발이 본질적으로 어렵고 일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고하고 게임을 개발하려는 데는 강한 동기가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비디오게임이 다른 매체와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이 있는 만큼,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 하는 욕망 또한 고유한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동경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는 마음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설명은 '동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 그중에서도 콘텐츠가 한번에 보이지 않고 내가 행동하는 순서에 따라 감춰져 있는 비디오게임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세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릴 때는 대체 어떻게 이 마법 같은 경험이 가능한 것일까 궁금해하며 게임을 동경하게 됩니다. 동경이라는 감정에는 아직 정확히 인지되지 않은 많은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 동경은 막연합니다. 어릴 적 철완소년 아톰을 보고 로봇 과학자가 되었다는 사람처럼, 막연한 동경의 감정은 우리 게임개발자들을 게임이라는 신비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불멸의 욕구

뜬금없이 웬 불멸? 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을 아시죠? 이 속담이 내포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은 죽음을 넘어서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대문호 제임스 조이스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그의 소설 율리시스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율리시스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에,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대학 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며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제임스 조이스 같은 대문호조차도 작품을 통해 세기를 넘어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불멸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불멸의 욕구는 창작의 중요한 동기 중 하나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비주얼, 사운드, 상호작용 등, 현대의 비디오게임은 소설보다 훨씬 더 다양한 방법으로 플레이어에게 그 안에 완전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설득합니다. 게임을 종료해도 <젤다의 전설>의 세계 안에서는 사슴과 토끼가 뛰놀고 있을 것 같고, 온라인 게임에서는 실제로 사람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게임에 접속해 게임세계에 발자취를 남깁니다. 게임을 만드는 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처럼 영원히 지속될 세계를 만드는 것 같은 기분을 줍니다. 저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겨 영원히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다른 창작자와 게임개발자도 비슷한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전지전능의 욕구

 

만화 <데스노트> 중
만화 <데스노트> 중

불멸의 욕구에 이어 전지전능의 욕구라니, 점입가경이죠? 하지만 은밀히 숨겨진 전지전능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항상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거나, 주변 사람이나 일이 자신의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그렇죠.

발달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캇은, 모든 유아가 발달 과정에서 전능감을 가진다고 보았습니다. 아기는 배가 고파도 울고, 졸려도 울고, 무서워도 웁니다. 울기만 하면, 적절한 보살핌이 있는 경우에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죠. 자신의 필요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기대 속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기 시작하는 세 살 무렵에는 이러한 전능감이 최고로 위협받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미운 세 살'이 됩니다.

세 살 무렵이 지나면 아이는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점차 세상과 타협하지만, 전능감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서 아동기에는 슈퍼맨과 아이언맨을 흉내 내며 날 수 있다는 기분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왕족이나 귀족이 되는 환상을 즐기게 되죠. 청소년기에는 이러한 전능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러한 전능함에 대한 욕구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번 뉴스레터에서 말했듯 게임 제작은 고립된 세계를 만드는 일입니다. 세상을 만드는 일에 특히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만드는 세계에서만큼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욕구는 흔히 불안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안전한, 불안요소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죠. 위 그림에 나온 <데스노트>의 라이토처럼 더 나은 세상, 신세계의 신이 되기를 꿈꾸는 게임개발자의 무의식에는 현실은 불안이 가득한 곳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게임제작자가 이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 같은 문화 창작 분야에서는 만들고 있는 세상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에고(ego)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게임제작자들의 전능에 대한 욕망과, 최근 몇 년간 폭로가 이어진 대형 게임 개발사들의 해로운 사내 문화(toxic culture)가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욕구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영어로는 피플 플리징people-pleasing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즐겁기 위해 게임을 하기 때문에, 게임을 만드는 사람의 표면적인 목표는 언제나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되죠.

게임이 제공해야 하는 진정한 즐거움 혹은 행복이 무엇이냐고 하면 책 하나를 쓸 수 있을 정도겠지만, 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게임 제작자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게임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플레이어의 얼굴을 보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게임을 만들기 위해 플레이어가 겪을 복잡한 상호작용을 계획하고, 거기에 플레이어가 어떻게 느끼고 반응할지를 예측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디오게임의 역사가 수십 년이 되었음에도 이렇다 할 하나의 게임 설계 방법론이 등장하지 않은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물리학에는 삼체문제라는 난제가 존재합니다. 삼체문제는 세 물체 간의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이 결과로 세 물체가 어떠한 궤도 움직임을 보이는지에 대하여 다루는 문제인데요, 워낙 복잡하여 수많은 수학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고 합니다. 결국 1887년 수학자 앙리 푸엥카레가 삼체문제의 일반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하죠.

저는 게임, 특히 여러 명이 상호작용하며 플레이하는 게임을 설계하는 일이 삼체문제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삼체문제처럼 여러 명이 서로 간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주고, 그 결과로 어떤 양상이 나타나는지를 예측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게임 설계(디자인)는 최적의 일반해가 없는, 직관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시간과 인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재미있을 만한 상호작용을 상상하여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죠. 

이러한 능력이 어떻게 얻어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책으로 배울 수 있는 능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유학할 당시 그때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수준의 천재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들이 게임플레이를 설계할 때는 놀라울 정도로 미흡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매우 복잡하고 직관에 의존하는 만큼, 타고난 성향과 더불어 어릴 때부터 유사한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이러한 능력의 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가정이나 학급처럼, 여러 명이 상호작용하는 고립계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고민을 많이 해온 사람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직관을 기르게 되는 것이죠. 당장 입증할 수는 없지만, 흥미로운 주제임에는 분명합니다.

 

신념의 표현

'시리어스 게임'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진지한 게임'이라는 뜻으로,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것을 넘어서 어떤 가치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죠. 이러한 시리어스 게임은 목적이 명확한 만큼 제작자의 신념을 반영합니다. 

창작활동에도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표현 및 해소하기 위해 하는 창작활동이 있는 반면, 르네상스 시대 이전의 종교화처럼 자신보다 더 큰 신념이나 존재를 전달하기 위해 하는 창작활동도 있죠. 얼핏 보기에는 심각한 가치와는 상관없어보이는 게임도, 종교화처럼 자신이 믿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이스Vice지의 한 기사는,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를 배경으로 여러 세력의 갈등을 다룬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스토리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을 이스라엘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게임의 총감독 닐 드럭만이 이스라엘계 미국인임을 생각할 때 흥미로운 주장입니다. 기사가 주장하는 바의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작가주의가 강하게 반영된 게임은 작가의 어떤 신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입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를 플레이하고 복수에 대한 서늘한 감정을 느껴본 사람은 제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게임제작은 개인적인 욕망뿐 아니라, 그를 넘어서는 신념을 표출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좋아서

물론 위에서 이야기한 다소 심각한 동기들로는 설명되지 않는 동기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엔 '그냥 게임 제작이 좋다'는 설명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흔히들 "사람이 무얼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나?"고들 하죠. 물론 파고들면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에서 이유를 속속들이 찾으려 하는 것은 피곤합니다. 게임은 사람을 매료시킵니다! 게임제작이라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게임제작도 그냥 좋아서 하는 걸 수 있습니다
게임제작도 그냥 좋아서 하는 걸 수 있습니다

 

게임제작, 가장 큰 '힘에의 의지'

이외에도 단순히 생계를 위해 게임을 제작할 수도 있고, 대박을 내서 크게 한 탕 하기 위해 게임을 제작할 수도 있고, 그냥 게임 제작 과정이 재미있어서 게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만 분명해 보이는 것은, 게임은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며, 게임 제작은 큰 힘을 향한 의지라는 것입니다. 게임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게임을 하는 순간에 인간은 그 세계를 믿게 되고, 그 세계를 위해 크고 작은 고통을 감내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큰 힘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게임제작이 큰 힘에 대한 의지라고 천명하고 나니, 왜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게임제작이 어렵다고 불평하면서도 계속해서 추구하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고 싶어 합니다. 일의 양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말입니다.

몇 명의 팀으로 밤을 지새워가면서 게임을 만들었던 초창기 비디오게임계의 영웅들이 떠오릅니다. <둠> 시리즈로 컴퓨터 그래픽스를 몇 단계 진일보시킨 존 카멕이나, 당시 컴퓨터 성능을 감안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복잡한 게임을 만들어낸 <롤러코스터 타이쿤>의 크리스 소이어, 인류의 발전과 분쟁사를 게임으로 녹여낸 <문명>의 시드 마이어 등...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욕망으로 게임을 만들었을까요? 지금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때와는 얼마나 다른 생각으로 게임을 만들고 있을까요?

이제 비디오게임 제작은 예전처럼 신세계를 탐험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기 있는 장르가 굳어지고, 제작 프로세스는 정형화되고, 기술은 포화되어 예전처럼 매년 큰 변화를 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자본의 관리 하에서 게임은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하는 쪽으로 변형되고 있습니다. 이제 비디오게임은, 예측 가능한 분야가 되었습니다.

만일 사람을 움직이는 예측 가능한 힘을 가지게 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하겠다'는 답을 하지 않을까요?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을 가진 게임은 아주 좋은 돈벌이 수단입니다. 기업들이 앞다투어 서비스를 게임화하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을 연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버와 쿠팡은 게임화를 통해 드라이버와 라이더들이 끊임없이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했죠.

저는 수익 창출의 욕망 외에도 위에서 나열한 여러 욕망이 조화롭게 만나 게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의 꼭대기에는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합니다. 게임개발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고,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게임이 개발되기 어려운 지금은 이미 늦어버린 걸까요? 그렇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 글쓴이 - 지민웅

미국 게임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미국에 온 뒤, 게임을 만들며 게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게임 개발자입니다.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취미로 음악과 서핑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발매된 <레고 2K 드라이브>에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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