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 아래 냉동탑차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문틈 사이로 피가 뚝뚝 흘러나온다. 일반인이 본다면, 요즘같이 흉흉한 세상에, 여기 살인사건 난 줄 알고 신고하게 생겼다. 하지만 여기는 도축장, 그 피는 소피다. 도축이 완료된 고기를 싣고 내리는 냉동탑차에 남은 핏덩이가 녹아 밖으로 흘러내리는 것이다. 소위 핏물이라고나 할까.
도축된 소는 등급평가를 해야 반출이 가능하다. 법적으로 몇몇 예외사항이 있지만, 보통의 경우는 꼭 등급판정을 받아야만 한다. 등급판정은 등심 단면에 마블링이 보여야만 판정이 가능한데, 근육 사이에 낀 마블링 즉, 지방이라는 것은 차갑게 굳혀야만 하얗게 보인다. 그 말인즉슨 도축하자마자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소고기에서는 마블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겉에 붙어 있는 지방도 있지만, 그걸로 1++(투플러스)와 같은 육질등급을 매길 순 없다.
시베리아를 연상케하는 찬 바람이 가득한 냉장고에서 하루는 꼬박 보관해야 소고기는 비로소 등급을 매길 준비가 된다. 심부온도, 즉 고기 내부의 온도가 5도 이하로 내려가야만 법적으로 등급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날 도축을 한 소고기를 받아 가공장으로 고기를 수송할 냉동탑차가 새벽부터 줄줄이 서서 기다린다. 평가사는 1년 내내 차가운 냉장고에 들어가 새벽 6, 7시부터 판정을 시작한다.
이론적으로는, 도축할 때 경동맥을 정확하게 찌르고 8초 내외로 몸에 있는 피를 다 빼야 된다고 정해져 있다. 그러나 핏줄 하나하나 물로 씻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양손으로 비틀어 짜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완벽하게 뺄 수 있겠는가. 남은 피는 뚝뚝 흐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킬레스건이 고리에 걸려 거꾸로 걸려있는 소고기가 냉장고에서 밤새 차갑게 식는 동안, 남은 피는 고기를 타고 바닥으로 흐르게 된다.
대게 작업장에서는 바닥을 깨끗하게 정리하지만, 밤새 흐른 소량의 피는 바닥에서 꽁꽁 얼어붙기도 한다. 우리가 종이에 베였을 때 나는 피와는 꽤나 다른, 검붉은 색의 끈적한 피다. 소를 판정하기 위해 소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다 보면, 꽁꽁 얼어붙은 핏물에 간혹 미끄러지기도 한다. 어쩔 땐 얼음 위에서 근사하게 웨이브를 추기도 하지만, 간혹 그대로 스케이트 타듯 미끄러져 바닥에 그대로 드러눕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깨끗하게 입은 흰색 위생 가운이 피범벅이 된다. 그렇게 묻은 피는 빨래를 해도 잘 안 지워진다. 락스로 박박 빨면 되지,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냉장 고기라는 건 없어! 어차피 냉동실에서 한 번씩 다 어는데 뭐!”
언제 한 번 도축장 관계자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얼음처럼 아예 꽁꽁 얼리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차갑게 만들긴 한다. 대략 15~20시간 안에 소 심부 온도를 5도 이하까지 낮춰야 하니 냉장고 온도는 더 낮게 설정이 되고, 그러다 보면 지방이 적거나 작은 소는 살짝 얼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어쩌면 냉동탑차 밖으로 흐르던 붉은 피는 꽁꽁 얼었던 소가 냉동탑차로 이동하는 중에 조금 녹아흐른 피겠다. 아니, 소가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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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room25
잠에서 깨어나면 살아있음을 제안에 모든 세포들이 인지합니다. 오늘도 살았군......... 도축장의 이야기, 새롭습니다. 너무도 모르는 세상...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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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키하게
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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