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주말 드라마 <빈센조>를 처음 봤을 때의 울림이 아직도 얼얼하게 남아있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마피아의 변호사 콘실리에르 빈센조의 등장, 킹 갓 제넬레이션 그레이트 어썸한 이 역할을 배우 송중기가 한다니 웅장이 가슴해졌다. 첫회 10분을 보고 ‘나의 봄을 책임져 줄 제대로 된 누아르 드라마 하나가 등장했구나!’ 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11분이 지났다. 이건 뭐지? 분명 누아르 장르인 줄 알았는데 깜빡이도 없이 괴상한 장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거 분명 어디서 본 반가운 맛인데 뭐였더라? 어, 이거 병맛이잖아? 문득 의문이 들었다. 분명 병맛인데 왜 존맛이 나는 거지?
병맛의 본래 뜻은 ‘병신 같은 맛’이다. 병신이라는 단어 자체가 비하의 뜻이 있다 보니 쓰기에 조심스럽지만, 청년 세대는 이 단어를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하지만 지금 병맛은 고유명사화되어서, 그야말로 하나의 맛으로 자리 잡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병맛은 무슨 맛인가? 광범위한 논의가 될 수 있으니, 드라마 <빈센조>안에서 제한시켜서 보자면, 개연성은 개나 주고 몰빵한 창의성 그리고 초현실적 사이다 맛이라 말하고 싶다.
우선 병맛의 레시피에는 개연성 따위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1+1 = 2’이런 식의 도식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깨부수고 재해석하느냐가 병맛을 우려내는 데 핵심이다. 빈센조는 매회마다 이런 장면들의 연속이다. 분명히 대목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오고야 말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과감하게 부숴버린다. 하지만 몹시 유쾌하다. 이렇게 하면 병맛은 필히 존맛이 되어버린다.
병맛 레시피 둘은 현실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사이다를 쏟아 붓는 것이다. 현실적인 전개에서의 사이다란 지극히 한계가 있다. 권선징악이 이루어져도 고기 먹다 냉수 정도 먹은 기분이다. 하지만 병맛은, 특별히 빈센조는 분명 현실이라는 틀을 사용하지만, 초현실적인 표현들을 마구 쏟아부어서, 입안의 머물러 있는 짠맛, 매운맛, 기름기 이 모든 텁텁함을 다 멱살 잡고 목구멍으로 던져서 내려버리는 화끈한 사이다를 선사한다. 앞서 말했듯이 매회 이런 장면들이 나온다. 이렇게 하니 병맛이 존맛이 안날 수가 있나?
이런 병맛이 존맛이 되어버린 데에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몫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우리 사회는, 세계는, 더이상 ‘1+1=2’라는 일반 도식이 통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카오스(Chaos)를 맞이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마지막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문장인 ‘존버는 반드시 승리한다’도 장렬히 전사 중이다. 현실이 개연성은 개나 줘라 라는 식으로 가고 있고 창의성에 몰빵하는 중이다. 그러니 이런 클리셰를 과감하게 부숴버려 주는 병맛은, 뻣뻣한 뇌에 짜릿한 자극을 선사하니, 존맛 그 자체 일 수밖에 없다.
정지우 작가는 ‘고구마 시대와 사이다 콘텐츠의 대유행’이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 세대의 문화 콘텐츠는 늘 그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보면 이 시대가 점점 더 '사이다'같은 속 시원함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그런 속 시원함이 그만큼 일상에서 간절하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들이닥친 거리 두기 사회, 마스크로 서로 얼굴도 볼 수 없는 일상, 청년 세대에게는 미래 문제하고 할 수 있는 주거와 취업 문제 등에서 오는 답답함이 누적되며 점점 더 사이다 같은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세대가 그토록 '사이다'를 원하는 것은 그들 삶이 너무나도 '고구마'같기 때문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 앞에 닥친 코로나19는, 이제껏 우리가 경험했던 어떤 고구마보다 더 크고 강하다. 이 고구마를 삼켜내기 위해서는 슈퍼사이다가 필요하다. 현실적인 것은 그냥 사이다다. 슈퍼사이다, 이것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초현실주의 병맛 뿐이다. 이 맛을 통해서 우리는 답답한 현실을 잠시지만 충분히 망각하며, 짜릿한 해갈을 얻는다. 이러니 병맛이 존맛이지.
코로나로 코구마 같은 현실, 존맛인 병맛이, 당신의 삶에 조금의 위로와 웃음이 되어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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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B급들을 위한 작은 시’ 글쓴이 - 김싸부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글이 나를 쓰길 바라며, 오늘도 쓰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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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애
이 글을 읽고나니 왜 드라마 빈센조가 그렇게 재밌게 다가왔는지가 명확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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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케이
드라마 빈센조를 안 본 1인으로써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근데 송중기 연기는 왠지 안 보게 되네요. 태양의 후예도 안 봤.. 드라마는 안 보았지만 글은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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