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샾에서 영어튜터링 의뢰를 받다
“영어 과외가 간절하신 분이 있어요. 샾에 오실 때마다 영어 때문에 힘든 이야기를 하시거든요. 임원 승진을 앞두고 걸림 돌이 되는 것이 하나가 있는데 영어라고 하세요. 대화를 나누면서 엘리님이 떠올라 말씀드렸더니 꼬옥!!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가능하면 영어수업을 받고 싶다고 하시는데 동네 분이시니 한 번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정성과 전문성이 느껴지는 피부샵 원장님의 손길에 어깨를 맞겨놓은 채 고민이 시작되었다.“아…네…그러시구나. 제가 지금은 영어수업은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조금 생각해볼께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 영어 과외를 하며 용돈을 벌었고, 학생들의 영어능력과 성취감을 고양시키는 것에는 관심을 가지고 대치동과 목동에서 영어회화, 해외대학 입시수업도 했었다.
하지만 성인 영어 수업은 거의 해본 경험이 없고 나보다 나이가 더 많고 사회 경험도 더 많은 분을 가르치는 일이 어떨까. (시간당 페이 측면에서도 통역이나 번역에 비해 다소 적다는 점도 큰 고려요소였다)
글로벌 전체 주식 시가총액 10위권에 들 정도로 큰 규모의 관리자급이라는 써니 님이 현재 어떤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고 있는지 안개처럼 막연한 가운데, 임원 승진에 영어의 어떤 영역이 걸림돌이 생각되는지, 그 걸림돌을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 등의 생각들이 머리 속에 만화속 말 풍선 처럼 이어져 떠다니기 시작한다.
3년 가까이 나의 긴장된 근육을 저항없이 맡겨온 원장님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할 수 없었다. 게다가 1인샵이고 10년이 넘는 고객으로 원장님과 가정, 회사 일등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두터운 사이의 관계를 거쳐 나에게 전해졌지만, 타인에게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드러내며 수업을 부탁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그 분과 통화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영어 레벨을 향상 시키고 싶은 외국계 임직원에게 던진 질문들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목적이 무엇인가요? [목표 구체화]
영어를 잘 하고 싶은데 어떻게 공부해야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영어를 왜 잘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되묻곤 한다.
여행을 편하게 다닐 수 있을 정도라던가, 영자 신문을 편히 읽을 수 있을 정도라던가, 회사에서 담당하는 업무 관련해서 능통해지고 싶다던가. 거기서 더 좁게 목표를 좁혀서 회사 업무 관련 문서를 이해하기, 이메일 소통하기 거기에서 더 나아가 프리젠 테이션을 발표 할 정도, 같은 회사 해외 동료와 소통, 더 나아가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 등등.
그 동안 영어 공부를 어떻게, 얼마나 공부하셨나요? [셀프 점검]
매년 새해 결심 목표 리시트에 가장 빈번하게 올라오는중 하나가 영어공부다. 올해에는 영어를 정복하겠다는 마음으로 유튜브 구독, 영어학습 앱 다운로드 등으로 가볍게 시작을 하거나 돈을 투자하여 전화영어나, 학원에 등록하기도 한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여러가지 영어공부를 이어나갈 수 없는 이유들이 생겨난다. 일이 바빠지고 그러다 보니 피곤하고 더 중요한 우선순위들에 밀려나간다.
막상 얼마나 오랜 시간 어떤 방법으 로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영역에 공부했는지,일주일에 얼마나 시간을 썼는 지, 하루에 몇 분, 몇 시간 공부를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등에 대해 생각하고 점검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시간, 비용, 지속력, 성취 등을 체크하는 이 과정을 통해서 마음만 앞선 것인지, 공부를 했으나 생각만큼 성취가 더딘 것인지, 한 영역에만 취우쳤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학창시절을 포함해서 영어에 대한 마음은 어떤가요? 영어를 좋아하시나요? 못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심리적 장벽]
학창시절을 포함해서 영어에 대한 마음은 어떤가요? 영어를 좋아하시나요? 못 한다고 생각하시나요[심리적 장벽]응? 영어에 대한 마음이라니. 좀 생뚱맞은 질문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인 대부분이 영어에 대한 커다란 벽을 스스로 세워두고 있다. 반드시, 완벽하게 정확한 문장을 사용하여 “잘” 해야 한다는 심리적 장벽.
특히나,해외파 직원들이 많은 요즘에는유창한 영어스킬에 주눅이 들거나 자신감을 잃어버려 영어를 넘어선 경험과 업무 능력을 숨겨 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내년 임원 승진을 앞두고 영어가 발목이라는 써니님도 그런 케이스였다. 40대 후반의 여성으로 오랜 시간 많은 업무를 추진하고 성과를 달성하여 지금의 위치에 오르셨다. 최근에 입사하는 신입 사원들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대학을 마치거나, 초 고학력에 유창한 영어능력은 디폴트랄까. 상사로서 그들보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모든 자신감을 잃곤 한다고. 그녀는 10년이상 꾸준히 영어 공부를 놓지 않았고 원어민 튜터도 따로 있었으나 한계를 느끼고는 마지막시도라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신 것이다.
영어는 커뮤니케이션 수단(tool)이다.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영어를 잘 한다는 것도 결국은 소통을 잘 해서 소통의 목적을 달성하거나, 소통하는 상대와의 이해와 공감을 통해서 잘 살아가기 위함이다. 영어도 그런 소통 수단의 하나 일 뿐이다. 한국인이 영어를 반드시 원어민처럼 해야 할 필요가 없다. 못한 다고 주눅 들 필요도 없다.
'못알아 듣겠어', '아무리 해도 안되려나봐......'
라는 생각에 잡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실제로 이 벽에 갇혀서 입을 뗄가 말까 망설이다 타이밍을 놓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써니님 앞의 그 벽을 부수어 내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써니 님, 신규 직원들이 영어는 써니님 보다 잘 할 수는 있어도 현재 담당하시는 그 분야에 대한 경험, 지식, 노하우는 써니 님보다 절대 잘 알수는없어요.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분야를 모르면 담아낼 수 없거든요.(직원들이 자신의 원래 실력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다)”
통역 의뢰를 받을 때마다 통역사들이 자료를 최대한 빨리 받아 해당 분야를 엄청나게 공부하고 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통역사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배경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분야에 따라서 한 단어의 의미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도.
살짝 풀이 죽었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말하신다.
“그 말은 맞아요. 업무적으로는 제가 리드하고 지도하죠.”
“그렇죠. 영어능력이 업무 능력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직원들의 영어 능력도 이나 그들의 시선을 미리 신경 쓰지 마시고 지금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영역을 채워 나가시면 돼요.”
두달 간의 튜터링과 써니 님의 성취감
일주일 한번 1시간 30분 수업을 두 달 가량 진행하고 있다. 미국 본사와 감사(Audit)회의 걱정했던 써니님은 감사를 받고 와서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셨다.
이전보다 본사 직원들의 대화가 많이 들렸고, 해외파 신입들이 처음 받는 감사에 제대로 말을 못 하며 긴장하는 모습에 반해 자신감 있게 써니님이 감사 과정을 리드했다고.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이런 방식의 수업을 받아 본 적이 없었고 스스로 이만큼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나로서도 좀 의아하긴 했지만 나 또한 누군가가 간절한 바람에 도움이 되었다는 마음에 비용을 많이 받는 통역이나 번역할 때 와는 다른 뿌듯함을 느꼈다.
‘이런 수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원어민 튜터랑도 회사에서 프리젠 테이션이 있을 때마다 같이 준비를 하며 연습하고 하고 있었고, 문법이 이해가 안되어서 문법학원도 다녔고, 영어를 사용하는 동남아 국가에 가서 1년 가까이 연수를 하기도 했었는데요. 이렇게 학습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처음에 어느 정도 영어를 하고 싶은지, 어떻게 공부를 해왔는지, 영어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와 같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적도 없었구요.
그리고 ‘잘’ 해야만 한다는 그 마음을 버리고 영어 잘하는 직원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니까 업무와 영어를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그 가로막는 마음을 넘어서니 저도 더 잘해야 하고 잘할 수 있다는 마음도 들었고요.”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한 주동안 영어 공부를 어느 정도 했는지, 심리적 부담감이나 선호의 마음의 변화는 어땠는지, 과제는 벅차지 않았는지 물으며 시작했다. 그리고 속도와 마음에 맞추어 진행했다. 써니님 또한 열심히 잘 해오고 있다.
여번 읽고 연습해서 녹음 과제를 제출하는 것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죽을 만큼 괴로웠다는 써니 님은 그 과정을 견디며 매번 과제를 제출하고 있다. 나 또한 그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효과적인 지도.
그녀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파악해서 그 부분을 향상하는 것에 집중해서 수업 콘텐츠를 선정하게 하고, 나도 그 분야를 공부해서 수업을 진행하고, 일주일 동안 매일 하도록 하는 과제를 진행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 그와 함께 영어를 못하지 않는다는 마음, 완벽히 잘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촉매제가 된 것은 분명했다. 임원으로 승진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 만큼 하고 싶다는 그녀의 목표를 계속 도우려 한다.
써니 님이 부탁을 하신다. 정말 영어 실력 향상이 필요한 직원이 있다고. 하루 컨설팅 만이라도 진행할 수 있는지.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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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순수국내파 ‘통역사로 먹고살기’를 출간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세상과 세상, 언어와 언어사이의 소통을 도우며 살아갑니다. 전세계와 소통하며 그로인해 확장된 경험을, 영어교육과 학습에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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