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정도 근무한 도축장은 점심시간이 네 시간이나 됐다. 도축할 소가 많은 명절 성수기가 주로 그랬다. 이유는 이랬다. 소를 잡는 라인과 돼지를 잡는 라인이 다른데, 도축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어서 소와 돼지를 동시에 도축할 수 없었다. 돼지를 다 잡고 나서야 소를 잡고, 소를 다 잡아야 돼지를 잡을 수 있었다. 도축 작업을 하는 직원들은 쉬지도 못하고 일했지만, 등급 판정하는 우리는 달랐다.
돼지는 온도체, 돼지를 잡자마자 따뜻한 상태에서 등급판정을 해야 해서 우리는 돼지를 잡는 내내 도축라인에 함께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소는 냉도체 판정을 한다. 소고기가 5℃ 이하로 내려가야 지방이 하얗게 굳어 마블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도축된 소를 하루종일 냉장고에서 차갑게 만들고 다음날 아침에 판정했다. 소 도축라인엔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 잡는 시간은 우리의 네 시간이나 되는 점심시간이 되었다. 소는 덩치도 커서 도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시간이라는 길고 긴 점심시간엔 사무업무를 보기도 하고, 잠시 근처 업체들을 모니터링하거나 점검하는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점심시간에 일을 하고 싶을까. 느긋하게 점심을 먹은 동료들과 근처 메타세콰이어 길을 산책하거나 대형카페에 가서 예쁜 디저트를 먹었다. 우리의 만담은 지칠 줄 몰랐다. 함께 보내는 휴식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배려도 커졌다. 긴 점심시간 때문에 덩달아 퇴근 시간이 늦어졌고,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한다며 마감을 자처했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 퇴근하는데, 배려하지 않으면 누군가 쓰러져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돌아가며 한 명이 총대를 메고 나머지 직원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퇴근을 시켰다.
모든 도축장이 그런 건 아니다. 6년 전에 근무한 도축장은 돼지만 잡는 도축장이었는데, 점심시간이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밥만 먹고 다시 판정하러 들어갔다. 라인에 시간을 맞춰 들어가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지 못하고 혼자 빠르게 흡입해야 하는 날도 종종 생길 정도였다. 외식은 꿈도 못 꿨다.
식사시간도 보장하지 않는 이상한 회사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온전한 식사시간이 있었다. 돼지가 쉬고 있는 계류장에서부터 도축라인을 타고 등급 판정하는 위치까지 오는데 20분은 족히 걸린다. ‘돼지를 끊었다.’라고 하면 계류장에서 더이상 도축라인으로 돼지를 들여보내지 않았고 도축 작업이 곧 중단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등급판정은 도축라인의 가장 마지막 단계였다. 내가 마지막 돼지를 판정하면 현장엔 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는 컴퓨터로 줄곧 입력했던 등급판정 자료를 정리하고 내려받는 등 잠깐의 업무를 더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내 점심시간만 줄어든 것뿐이었다.
등급판정하는 사람은 도축장 직원이 아니다. 농림축산심품부 산하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준공무원이며, 도축장마다 두세 명 많게는 열 명이 넘는 직원들이 파견 가 있는 것이다. 법적으로 도축장에서는 도축된 소돼지가 등급판정을 받아야 반출이 가능해서 우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도축장에서 판정한 만큼 수수료를 받고 다양한 축산 관련 업무를 함께 진행하기 위해 도축장의 협조가 필요하다. 상생관계인 것이다.
우리 말고도 도축장에는 수의공무원인 검사관과 가축방역위생본부에서 파견된 검사원도 함께 상주한다. 같은 소속은 아니지만,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업무가 멈춘다. 몇 년간 이런 생태에 몸을 담그면서 오히려 인류애가 느껴졌다. 내가 조금 더 힘들면 되지, 하는 마음과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 내가 이만큼 하면 상대는 미안해하면서 더 무언가를 해주려는 그런 마음. 그래서 4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점심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유독 지치고 힘이 드는 날에도 서로의 손을 꼭 마주 잡으며, ‘많이 힘들죠, 고생 많으십니다. 우리 조금만 더 힘냅시다.’ 하는 따듯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스르르 녹아버렸다. 그렇게 버틸 수 있었다.
*글쓴이 - 오이
수능 성적에 맞춰 축산학과를 갔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다 보니 도축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죽음과 직업 사이의 경계를 방황하면서, 알고보면 유용한 축산업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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