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 일곱,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 집안의 둘째딸로 태어난 지은이라는 사람이 적어도 7가지가넘는 ‘업(業)’이라는 것을 넘어가는 과정 속 시간, 비용 두려움이라는 존재와 싸우며 부캐(부캐릭터)를 얻어간 순간의 이야기들.
대학교 4학년, 평소와 달리 청바지와 운동화 대신 빳빳하게 다려진 새 정장에 까만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학교로 가는 길의 반대 방향, 버스를 타러 가는 발걸음에는 설렘 한 스푼 두려움 두 스푼이 더해졌다. 약 삼십분 뒤 다다른 곳은 주택가 골목 사이에 위치한 초등학교였다. 모래 운동장 옆을 돌아 들어간 건물 안에서 머리 위로 보이는 팻말들을 유심히 살폈다. 저 멀리 ‘교무실’이 보이고, 어느 새 심장은 쿵쾅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사서 교사 실습생입니다.” 그랬다. 대학생이란 타이틀의 마지막 봄날은 사서교사라는 명찰을 바꿔 달고 학교에 첫 출근도장을 찍었다. ‘교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나는 당시 여러 개의 꿈을 갖고 있었다. 남들보다 돌아 돌아 스물두살에 출발한 대학생활의 시작은 조급함의 연속이었다. ‘무엇이든 빨리 해내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여러 곳에 발을 걸쳤다. 교직이수도, 유학준비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갑자기 기울어진 집안환경,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유학은 무산되었다. 다음은 취업이 일순위로 올라왔다. 급격히 추워진 취업 시장에서 바늘구멍 보다 더 좁아진 공무원의 길 보다 조금 더 열린 문인 취업의 길로 마음이 옮겨지고 있는 때였다.
하지만 취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긴 했지만 교생 실습은 궁금했다. ‘이번 한 달 시간을 경험하고 괜찮다면 임용 도전도 해볼까?’ 사실 당시 현실에 맞춰 교사라는 어려운 길을 이순위로 미루긴 했지만, 초등학교 시절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대답은 항상 ‘선생님’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자라날 수 있는 직업을 꿈꾸던 어린 지은이의 소망을 실습 동안 채워주고 싶었다. “오느라 고생했죠? 교장 선생께 인사를 드리고 도서실로 갑시다.” 사십대 초반의 여선생이 나를 맞이했고, 그렇게 첫날이 시작되었다.
실습생은 나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었다. 우연이었는지 계획이었는지 재수 혹은 삼수를 거쳤던 나와 동갑인 다른 학교 친구들이었다. 그들과 한두마디를 나누다 보니 둘은 같은 학교의 동기였고, 사서 교사 선생은 그들과 동문이었다. 그 동문이라는 말이 나중에 엄청난 돌덩이가 되어 다가올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지만, 설렘을 가득 안고 학교 복도를 또각또각 걸어갔다. 어느새 도서실의 문 앞에 도착했고, ‘학교 도서관은 알록달록 벽보가 붙어 있을까?’ 상상하며 드르륵 나무 문이 열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내가 상상한 정반대였다. 교실 두 개 정도 만한 공간에 먼지는 가득했고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어 뭐지?’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귓가에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러분 오느라 고생했죠? 오늘부터 한 달간 사서 실습도 하겠지만 우리가 이번에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도서관 이동입니다.” 에? 무슨 말이지? 나는 교생 실습을 하러 왔는데 이사를 해야 한다고? 아르바이트, 대타, 무료 일꾼….여러 단어들이 머리에 둥둥 떠다녔다. 애써 표정을 감추면서 끝까지 다음 말을 들었다. “내일부터는 편한 옷을 입고 오세요. 구두 말고 운동화와 신고 버려도 되는 청바지를 입고 오세요.”
그렇게 실습 둘째날은 오래된 운동화와 목이 늘어난 셔츠를 입고, 빨간 목장갑을 낀채 하루가 시작되었다. 마스크를 썼나? 안썼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뽀얀 먼지가 폴폴 날아다니는 우중충한 교실이었다. 그렇게 약 일주일, 매일 아침 칙칙한 야상이나 점퍼를 입고 학교에 출근을 했다.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옮기는 일을 했다. 참고로 사서 친구의 말을 빌려보면 교실 두 개 정도 공간의 도서실이면 약 만권 정도의 책이 있다고 한다. 이십 대 중반의 ‘교사’라는 꿈을 가졌던 세 사람은 교육 대신 만권의 무게를 나눠서 나르고 있었다.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깨와 다리는 밤마다 아파왔다.
실습이 아닌 노동을 시작한 지 둘째주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양손에 책을 가득 들고 땀을 흘리며 책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똑똑똑 도서관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지은이 학생 담당 교수입니다.”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실습생이 잘 배우고 있는지 시찰하기 위해 교수님이 학교를 방문하는 관례가 있었다. 교수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왕눈이가 된 것 마냥 눈망울이 똥그랗게 커졌다. 그때 나의 모습은 머리를 질끈 묶고 온몸에 먼지를 두른 일꾼 그 자체였다. 참고로 그날 방문한 교수님은 나와 같은 학교 동문 출신에 직장을 열심히 다니다 공부를 하고 교수가 된 분이다. 거기에 사서 교사와 비슷한 연령대였다.
약 삼분 후, 교수님, 사서교사, 나 셋은 먼지 가득한 공간 어느 귀퉁이에 앉았다. 그리고 미묘한 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음… 교생 실습 기간인데, 이렇게 책을 옮기는 작업을 해도 괜찮은 것인가요?” 교수님은 적지 않게 아니 매우 화난 감정을 애써 누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하고싶었던 말을 대신해준 교수님이 고마웠고 아주 잠시나마 통쾌했다. 그 다음 사서교사의 말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뭐 별거 아닌 일이고 실습은 꼭 시켜주겠다. 그리고 나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교사이다. 등의 말이 흘러나왔다. 어찌되었든 비슷한 연령대의 교수와 교사의 아슬아슬한 신경전이 끝나고 곧 퇴근의 시간이 다가왔다.
다음날도 어제와 다름없이 똑 같은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책만 옮기다 가면 되겠지?’ 하지만 그날부로 나의 지옥행은 시작되었다. 교수님의 ‘마음의 소리’를 들은 사서교사는 작정이라도 한 듯 나를 대놓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꿈’이었다. 교생 실습을 한 첫째 주 교사는 나와 친구들에 하고 싶은 일을 물어보았다. 나는 당시 사서교사 말고도 까만 수트를 입은 컨설턴트라는 직업에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그 꿈에 대해 말을 한 지 딱 일주일이 지났는데 그 교사는 교수님이 떠나간 다음 날부터 나에게 “내 남편이 컨설턴트인데 너는 절대로 그 학교 나와서 컨설턴트가 될 수 없어!”라는 말을 랩처럼 읊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그 교사는 허기져 한 숟갈 뜨려는 순간에도 “니네 교수는 사회 생활을 한 번도 안해 봐서 세상을 하나도 몰라. 그러니 그런 생각 없는 말을 하지”라며 콧김을 뿜어 댔다. ‘사실 우리 교수님은 직장 경력도 있고 당신보다 더 열심히 살았을 분이예요’라고 목끝까지 올라오는 마음을 꾹꾹 눌러담았다. 눈으로 나에게 레이저를 쏘는 교사 앞에서 나는 밥을 제대로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자들도 생겼다. 바로 본인 후배들인 다른 실습생들이었다. 교사가 나온 대학은 학생들을 잘 가르쳐 실습에 보냈다는 등. 동기 당사자들도 납득하기 어려웠던 맥락이 하나도 맞지 않는 말들을 스피커를 틀어 놓은 것처럼 하루에 수십 번 들었다. ‘교수님 너무 괴로워요. 어떡하죠?’ 학교에 연락하고 싶어도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교사의 꿈은 이미 접었지만, 언제라도 쓰일 지 모르는 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증’을 받기 위해서는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주일이 흘러가자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검은 기운이 가득 담긴 말을 하루 종일 그것도 매일 듣다 보니 온 몸에 “넌 안돼”라는 말이 온몸에 스며 버렸다. 몸이 힘든 것은 버틸 수 있었지만, 마음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너무나도 가기 싫은 출근길이었지만 그래도 발길을 끌고 초등학교로 갔다. 그래도 지옥 가운데 아주 조금씩 따뜻한 햇살은 스며 들었다. 나와 함께 이유 없는 욕을 함께 들어주는 동료들이 가끔씩 “힘들겠다, 저런 말 듣지마.” 라며 나를 토닥여 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반짝거려야 할 교생 실습 한달의 시간은 잿빛으로 가득 채워져 허무하게 흘러갔다. 그나마 실습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한 조각의 기억상자를 열어보면, 마지막 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습수업을 딱 두시간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만 기억날 뿐 내가 무엇을 준비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 속에 흔적조차 없다. 교생 실습 마지막날, 교생 삼총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절대로 학교에서는 만나지 말자”라는 말을 하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고통을 함께 겪은 그 친구들과는 종종 연락을 했고 우리는 모두 교사와는 멀어지기를 착실히 지키며 살아갔다.
누군가에게 한없이 미움보다 더 큰 무시와 멸시를 당한 이후 '일터'라는 공간, 그리고 관계라는 것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대학생이라는 타이틀로 내가 있던 공간들은 적어도 불편하면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장’은 달랐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결심을 하나 마음에 품었다. 직장인이 되는 최종 결정은 회사가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 나 자신이라는 존재와, 가치를 사라지게 만드는 사람 혹은 환경이 있다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다시 고려해 보기로 말이다. 그리고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넌 안돼”라는 검은 목소리가 내 몸에서 빠져나갈 즈음부터, ‘오기’라는 감정이 올라왔다. ‘당신은 나를 함부로 판단했지?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야’라 증명 하듯 에너지를 쏟아 부어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인지 독기인지 모를 이유로 졸업 전 취업을 해버렸다. 취직한 회사는 그녀가 안된다고 하던 컨설팅과 약간 맥락이 겹치는 외국계 마케팅 리서치 회사였고 말이다. 당시 들어가기 어려웠던 회사는 사실이었고, 그녀에게 전화 한 통을 해서 이 사실을 말해줄까? 라는 마음이 약 일초 스쳐 지나갔지만 그런 사람과는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나의 길을 그냥 가고 싶었다.
나를 제대로 겪어 보지도 않은 사람이 함부로 나를 재단하고 꿈을 싹둑싹둑 잘라내는 오싹한 경험은 아직도 가끔 떠오른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독설이 나에게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지만, 또 다시 겪으라고 한다면 거부하고 싶다. 또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면 “어차피 다른 사람의 말에는 힘이 없어” 라고 전해주고 싶다. 그렇게 나의 사회인으로서 나날들은 졸업식이 되기 전 스르륵 다가왔다.
* 지은이
호기심쟁이라 여러 일을 넘나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임원, 심리상담사, 학생, 작가' 네 가지 '직업(業)'을 병행하며 순간의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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