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시작하고 벌써 1/4분기도 지나갔다. 올 초 세웠던 결심을 돌아보면 좋을만한 시기다. 올해는 책을 좀 읽어야지, 했던 사람도 있겠고, 조금 더 짜임새 있게 살아보겠다며 계획과 성과, 나를 돕기 위한 ‘확언’들을 기록하기 위해 플래너를 구입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운동을 시작해서 건강한 삶을 꿈꾸는 사람도, 잊고 있었던, 혹은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겠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읽은 책보다 사둔 책이 많고, 철저한 비교분석을 통해 구입한 독서 기록장과 연간 플래너는 앞쪽만 빼곡하고, 10마일 씩 달리던 나를 기록하던 SNS엔 빵집에서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이 담기고 있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4월도 어느덧 중반에 들어선 지금, 나처럼 마음가짐과 실제 생활간의 불일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접싯물 같은 체력과 코딱지만한 의지를 가졌다는 걸 알기에 벌려놓은 일을 점검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려 노력한다. 자기계발서나 강연에서 성공 스토리를 듣는 것보다 그 안에 숨어있는 수많은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에 더 매력을 느낀다.
정보과잉의 시대, 찾으려 하면 나에게 맞는 콘텐츠를 전달하고 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문제는 방대하고 넓은 내용, 너무 많은 팁들을 나의 하루에 어떻게 끼워넣는가이다.
‘루틴’이라는 단어가 이전엔 성공한 사람들이 전수해주는 비법처럼 여겨졌다면 이제는 저마다의 하루를 채워가는 일들의 순서나 방법을 의미하는 쪽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루틴이 깨졌거나 잃어버린 루틴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라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루틴과 생산성에 대해 얘기하는 책과 강연에서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나약한 의지를 탓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번 생은, 올해는 망했어’라고 말하는 대신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원래 어려운 일이고, 할까말까 하는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기회는 내 안에 있는 변명거리를 불러일으키니 ‘자동화된 시스템’을 최대한 많이 구축하라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런데, 이 시스템에 몰두하다보면 고개를 드는 의문이 있다. ‘나는 왜 쳇바퀴를 스스로 만들고 그 안에서 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를 찾아오면 소위 ‘현타’가 온다.
자기계발서에 깔려있는 기본 전제 중에서 나의 반발심을 가장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것은 성장이 우상향곡선을 그린다는 말이다. 1퍼센트씩 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내 안의 삐딱한 자아가 깨어난다. 그러나 귀를 닫고 눈을 감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꾸준히 무언가를 시도해서, 나도 모르게 반복하고 있는 습관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말까지 무시한다면, 나는 평생 ‘요모양 요꼴’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고개를 내민다. 그래서 나는 루틴을 너무 빡빡하고 단단하게 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내려놓는 법을 거의 반강제로 습득하게 되었다. 맞벌이 부부이기만 했을 때는 가능했던 일들이 워킹맘이 되면 불가능해지는 걸 너무 자주 경험했다. 예상치 못하게 야근이나 회식을 해야 할 경우 남편만 있을 땐 “야근/회식이니 저녁은 알아서 먹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젖먹이 아이에게 “엄마 오늘 늦으니 어린이집에서 혼자 하원해서 분유 타먹고 기저귀 갈고 있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누군가는 그걸 타협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는 법을 시작으로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별하고,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해야 하는 일’을 놓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시도해 보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눈이 오나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해야 하는 일은 ‘먹고사니즘’의 영역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이 버거운 의무로 여겨지지 않게, 눈이 오면 장갑을 끼고, 비가오면 우산을 들고, 바람이 불면 바람막이를 장착하고 나설 수 있는, 적당히 유연한 루틴을 만들어주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루틴에 대한 논의중 빠질 수 없는 것은 기상, 취침 시간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기록하는 ‘해빗 트래커’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하기로 한 일을 실제로 얼마나 하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의지가 옅어질 때쯤 ‘소멸하는 루틴’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거나,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 한 번만 더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기도 한다. 어떤 모임에서 루틴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취침, 기상 시간을 기록한 본인의 해빗 트래커를 보여준 분이 있었다. 원래 일어나려고 한 시간, 원래 자려고 한 시간에서 벗어난, 널뛰는 그래프를 보며 반성을 한다는 말을 듣고 문득 생각난 말이 있다. 책에서 읽었는지, 강연에서 들었는지, 누가 한 말인지조차 희미한데 메시지는 또렷하게 기억이 남는다.
의학 드라마를 보면 호흡, 심전도 등의 바이탈 사인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살아 있는 한 호흡도, 맥박도, 체온도, 심이어는 키와 몸무게도 계속해서 변한다. 내 삶의 기록이 직선으로 유지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이었다. 어느정도의 범위를 유지하고 있다면,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내려가는 것도, 올라가는 것도, 모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던 것 같다.
운동도, 글쓰기도, 명상도, 책 읽기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너무 바쁘거나 아파서 할 수 없는 날도 있다. 루틴을 빼먹는 날은 10년 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겪는 일이다. 달라진 건 빼먹은 다음날, 그리고 다다음 날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운동을 꾸준히 하다가 그렇지 못한 하루를 보내게 되면 며칠은 괜찮다가 일정 일수가 넘어가면 몸이 운동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다. 이걸 다시 원래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체력을 계산하는 것은 중요하다. 마치 호흡이 가빠지면 호흡기를 대주듯, 체온이 너무 올라가면 해열제를 주사하듯, 그래프가 너무 심하게 요동치면 해줘야 할 일들이 있다. 조금 버거워도 책장을 넘기고, 땀흘려 운동하고, 머리를 짜내어 글을 쓰는 건,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가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조금씩 줄이고자 함이다.
루틴은 깨지거나 잃어버리는 딱딱한 물건이 아니다. 루틴을 나를 돕는 친구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솔직하게, 자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지금, 여기의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에 한발짝 다가가는 오늘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 매달 17일, 27일 ‘일상의 마음챙김’
글쓴이 - 진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스와 시사 인터뷰를 맛깔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참여자들의 의미있는 경험을 비추기 위해 행사 진행을 돕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
<____>을 출간했습니다 라는 소식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 속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읽고, 쓰는 하루를 보냅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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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a
크, 정말 루틴도 반복되다보면 가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습관도잘 굴러가게 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뉴스레터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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