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은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 그의 영화를 보면 꼭 그렇게 홀리고야 말기 때문이다. <추격자>에서 그는 기존의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문법을 완전히 뒤집어, 마치 순수한 아이 같은 악의 얼굴을 구현해서사람들을 홀려버렸다. 4885는 덤이었고. <황해>에서는 분명 우리가 사는 세상이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인듯, 선이란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은 다크 월드의 모습으로 사람을 홀려버리더니, 마침내 <곡성>에서는대놓고 관객들에게 미끼를 던져버리고, 뭣이 중한지도 모르게 그것을 물어버린 사람들을 멀미가 나도록 흔들어 넋을 빼놨다.
이 정도면 ‘악마의 재능’이라는 수식어가 부족하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촬영장에서의 그의 모습을 매치해보자면, 그냥 ‘악마’라고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도대체 그는 왜 이런 영화들을 만들어 사람을 홀리는 것일까? 혹시 ‘관종’아닐까?
그를 관종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악’을 표현하는 방식 때문이다. 그는 악을 말할때 구구절절이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서사가 없으니, 설명이 불가하다. 근원도 모르고, 설명도 불가한 카오스(Chaos) 자체인 악은, 우리의 삶이라는 코스모스(cosmos)를 습격한다.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범인 지영민이, <황해>에서는 면가를 비롯한 각종 인간군상들이, <곡성>에서는 외지인이 그러했다. 그의 세계 안에서 악은 이유도 없고, 원인도 알 수 없다. 악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인과관계 따위는 철저히 외면당하기에, 처절한 절규만이 울려 퍼질 뿐이다.
이런 인간의 실존적인 딜레마를,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러한 이야기로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관종 아닐까 하고 묻고 싶은 것이다. 특별히 이번에 개봉한 <랑종>을 보면 정말 이게 랑종인가 관종인가 라는 말이절로 나온다.
<랑종>은 나홍진 제작, 영화 <셔터>의 반종 피산다나쿤이 감독을 맡은 공포 영화다. 제목인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 ‘영매’등을 뜻하는 말이다. 페이크 다큐의 외피, 태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낯섦, 샤머니즘, 심층에깔려있는 여전한 악에 대한 질문들, 이것들을 녹아져 있는 영화다.
영화는 보는 내내 음산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수전증에 걸린 듯 흔들려대는 카메라 워크는 불안을 더한다. 전작을 통해 미끼에 걸리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있어서 그런지 더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보게 하지만, 역시는 역시, 끝까지 보고 나면 ‘아, 내가 또 낚였구나’를 알게 된다. <곡성>때 던졌던 질문이 부족했던 걸까. 이걸 태국까지 날아가서, 이렇게까지 해야 속이 후련했는지 의문이 든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끔찍하다’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다.
랑종이 아니라 관종이구나 라는 말을 하면서, 바로 유튜브를 켜서 랑종 해석을 찾아보고 있는 내가 있었다. 너무 난해해서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 했던 것들이 절대자 이동진 님의 해석을 보니 모든 의문이 풀려버렸다. 심지어 이 풀려버린 의문을 가지고 재관람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고 있다. 아 … <곡성>때도 그러했건만, 영화관에서 일어나는 순간에 영화가 시작되게 만드는, 이 사람을 홀리는 재주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영화의 언어를 통해서 그가 던진 묵직한 질문들에 잠식 되어가는 것 같다. 왜 우리의 세상에서 악은 그토록늘 선명한 존재감을 발휘하는데, 선은 그토록 흐릿하고 존재감이 없는가. 악은 필연처럼 존재하나, 왜 그 악에게 습격당하는 사람들은 우연처럼 아무런 이유를 찾기 힘든가. 침묵의 언어로 말씀하시는 ‘신’앞에, 인간은 영화 <사바하>에 나온 박 목사처럼 부르짖을 뿐이다.
“어디 계시나이까. 우리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당신의 얼굴을 가리시고, 그렇게 울고만 계시나이까. 깨어나소서. 저희의 울음과 탄식을 들어주소서. 일어나소서. 당신의 인자함으로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하시고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나홍진이라는 관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랑종>역시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관에서만이 아닌, 끝나고 찾아보는 재미까지 합쳐서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볼 때말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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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B급들을 위한 작은 시’ 글쓴이 - 김싸부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글이 나를 쓰길 바라며, 오늘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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