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던 인사팀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하며 만난 첫 팀장님은, IMF 시절을 떠올리며 “인사팀에서 일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건 구조조정, 정리해고였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그 말은 내 귓가를 맴돌다가 뇌리에 새겨졌다. 인사팀원으로서 가장 힘든 일은 정리해고겠구나, 막연하지만 선명한 의식이었다.
다행히도, 인사 업무를 하며 정리해고를 해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적은 없었다. 첫 팀장님의 말대로라면 난 아직 가장 고난도의 인사 업무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평이한 인사업무만을 평탄하게 해왔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누군가의 삶에 어떤 형태로든 깊게 영향을 주는 일은 그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영화 <해야 할 일>을 보면서 현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처럼 느꼈던 건, 지난 이십 년 가까이 인사 관련 업무수행 경험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생산사업장에서 인사 업무를 했던 기억은 영화 속 주인공 강준희 대리의 자리에 나를 가져다두었다. 2016년 조선업 불황으로 구조조정이 한창이었던 한 회사의 인사팀 모습은 흡사 어디선가 경험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자신이 인사팀의 아내라서 함께 봐야 된다고 말하며, 영화를 함께 보고 GV(관객과의 만남) 자리까지 함께 한 아내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더 깊은 응원과 위로를 받았다. 거기에 더해, 영화 <해야 할 일>의 박홍준 감독님과 ‘월급사실주의’ 프로젝트 기획자 장강명 작가님의 대담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나를 둘러싼 사회 시스템, 조직의 논리, 그 안에서 고민하게 되는 개인으로서의 나를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어서였다. 그 자리 말미에, 감독님, 작가님, 함께 참여한 분들과 나의 간증 같은 감상을 나눴는데, 이 지면에 살짝 가져와본다.
영화 <해야 할 일> 주인공의 예비 신부는 자신의 예비신랑인 준희를 좋아하는 이유가, ‘잘못했을 때 부끄럽다고 말하는 사람이라서.’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준희는 “내가 하는 일이 부끄러워서 그 동안 말을 못했다.”고 전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야만 했다.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부끄러운 일을 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그런 의지를 품고 감각을 마주하고 삶을 성찰하는 일이야말로 초심을 잃지 않고 견지해야 하는 무엇임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듯 영화 <해야 할 일>을 관통하는 한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에서처럼 비단 인사팀 뿐만 아니라, 일터의 각자의 자리에서 ‘부끄러움을 감각하고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법과 논리을 앞세워 부조리와 부정의를 흩뿌리는 보이지 않는 손에 맞서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본다.
* 글쓴이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10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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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
인사업무 30년 이후 은퇴자입니다. 흘륭한 글이네요. 30년 내내 고민했고 은퇴 이후 지금도 고민중인 아젠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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