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리에 동그랗게 생긴 원형탈모. 뾰루지나 상처가 아니어서 아프지도 않았고, 꼭꼭 숨겨진 곳이라서 보이지도 않았나 봅니다.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뽑힌 것처럼 두피가 허옇게 드러난 빈 구멍을 보니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내 몸을 얼만큼이나 혹사시킨 걸까 싶어서 말이죠. 뿌리염색을 하러 들렀던 미용실 원장님이 원형탈모를 발견했어요.
“원형탈모 생기셨네요. 모르셨어요? 지난 번 염색하러 오셨을 때는 멀쩡했는데, 그 동안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으셨나봐요”
탈모는 스트레스와 직결된다는 통념이 있습니다. 얼만큼 스트레스를 받았길래 탈모까지 생길 지경일까 하면서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었습니다. 스스로를 혹사하는 정도로 스트레스를 겪을 때 면역계가 이상 반응을 일으키면서 몸을 공격한다는 거에요. 면역계 이상이나 질환이 대부분 그렇듯이 말이죠.
그런데 ‘나 요즘 스트레스 받는 거 별로 없는데?’ 라는 생각이 튀어나왔습니다. 정신적으로 피로하거나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힘든 일이 뭘까를 오히려 고민해봤어요. 평소 스트레스를 마음에 꽁꽁 쌓아두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지 ‘힘들어죽겠다’고 느낀 적은 많지 않아요. 오히려 ‘내가 뭘 힘들어한거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아. 혹시 그 때 그 일?’ 하고 떠오른 한 가지.
사실 돈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한동안 커졌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일이 끊기고 줄어든 상황과 함께 40대 중반이 되면서 미래의 생계와 건강에 대한 고민까지. ‘나는 앞으로 뭐해 먹고 살아야 하나’ 라는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갑작스레 혼란스러웠죠. 그 무렵 만났던 지인은 나에게 공모주 주식을 권했고, 주식 계좌 만드는 법까지 알려주었다. 새로운 세계로 의도치 않게 갑자기 발을 들여 놓으면서 피곤함이 몰려왔습니다.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들면서 말이죠. 소액으로 빌라 구입하기, 예술품투자하기 등의 정보를 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일이나 결정하지 않은 일을 할 때면 불편함이 생깁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느껴지는 것 같아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도 돈에 대한 영역은 강렬한 끌림이 없어요. 결국 주식 계좌만 깔고 간 보듯이 살펴만 보다가 포기했습니다.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죠. 그럼에도 한동안은 ‘이거라도 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사로잡히면서 관련 정보를 찾아다니긴 했어요. 시작도 하지 않았으면서 부푼 꿈을 꾸게 만들고, 기업의 가능성에 관한 투자 정보를 읽다 보면 진짜 그 일이 될 것만 같았죠. 짧은 시간이나마 기대와 희망도 가져보았던 것 같아요.
원형탈모의 시작은 그 때부터가 아니었을까요.
탈모로 인한 또 다른 사건이 있었어요. 바로 생리가 멈춰진 일이에요. 마흔 다섯 살 나이에 폐경을 고민해야 할 시점은 아니지만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일주일쯤 생리 날짜가 늦어지면서 ‘혹시 이렇게 폐경이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40대에도 폐경이 된다고 하는데 내가 그런 것은 아닐까. 지난 달 생리일을 달력에서 찾아보고, 내 몸의 이상증후가 있는지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초조한 마음이 들었고, 갱년기 증상도 느껴지는 듯했어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들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답답함과 숨막힘까지 생겼습니다. 한참 후 다시 생리를 하긴 했지만, 삼십년 가까이 규칙적인 반응을 보인 내 몸이 뭔가 다른 이상신호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받아들이기 힘든 기분이었습니다.
원형탈모는 이런 저런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섥혀 만들어낸 결과인 것 같습니다. 나의 원형탈모를 생각하면서 타로카드 한 장을 뽑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몸의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말이죠. 막대기를 든 여왕 카드를 뽑았습니다.
막대기(wands)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능력 또는 에너지와 추진력을 상징합니다. 성장에 대한 열망이랄까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에너지가 큰 상태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한 막대기는 행동과 경험을 통해 의미를 찾아가는 적극성을 담고 있어요. 불의 에너지로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싶은 바램을 담은 카드죠. 미래에 대한 돈 걱정, 폐경이 될 것에 대한 몸 걱정을 하면서 불안해 하는 나에게 퀸 완즈 카드가 말해주는 듯해요.
‘아직까지 당신에게는 에너지가 충분합니다’ 라고. 그리고 스스로 조언의 말을 건넵니다.
‘당신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즐기십시오’
‘여전히 뜨거운 에너지와 활력이 크시군요.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돈에 대한 걱정은 내려 놓으세요. 미래는 여전히 불안할 수 있지만 당신의 추진력과 일에 대한 목표의식 등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노동을 통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만한 힘과 능력이 있어요’
타로카드를 들여다보고, 글을 쓰고, 원형탈모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원형탈모가 진행된 나의 정수리 역시 소중한 몸의 일부 아닌가요. 그래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단백질이나 미네랄이 풍부한 자연식을 잘 먹어주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 등 다양한 책을 썼습니다.
수원에서 작은 책방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카드로 마음공부하는 글을 씁니다.
<타로카드 럭키박스>는 타로카드가 주는 의외의 기쁨과 성찰의 순간으로 위로받으며 잠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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