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쇄로 그친 책이었지만 그 자체로 소중해"
십 년 전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이판 한 달 살이’ 여행을 떠났고, 운 좋게도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 『사이판 한달살기』 (2018,씽크스마트)라는 책을 썼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 도시 한 달 살기 하는 여행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출판의 기회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실 1쇄밖에 팔리지 않은 책이고, 이후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여행객이 줄면서 한동안 여행 도서 시장도 축소되었다. 출판사도 어쩔 수밖에 절판을 결정하고, 더 이상 책은 찍어내지 않았다. 1쇄에 대한 인세만 받았던 다소 초라한 성적의 책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코로나 이후 슬금슬금 또다시 한 달 살기 여행의 트렌드가 돌아왔다. 십 년 전의 사이판을 느끼고 싶어서 올 해 초 또다시 사이판에 가게 되었는데, 의외로 장기 여행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같은 숙소에서 묵었던 게스트들은 유·초등학생을 둔 엄마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한결같이 2018년 출판했던 『사이판 한달살기』 책을 읽고 왔다면서 반가워했다. 책에서 소개했던 게스트하우스를 한 달 살기 숙소로 정하고, 책 내용을 정보 삼아 현지 학교 단기 스쿨링 등록을 하며, 아이와 함께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었다.
책 출간 6년만에 다시 사이판에 갔는데도 “혹시 사이판 책 쓴 작가님 아니세요?” 라고 묻는 분을 만나기도 했다. 사이판이라는 작은 섬에서 잠깐이나마 유명세(?)를 느껴본 순간이었다. 사이판에 온 이유가 바로 그 책 때문이었다고 하는 분을 현지에서 만나니 얼떨떨한 감정이었다. 어찌 됐든 누군가에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준 책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역시 책을 쓰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글은 당시에 평가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진가를 알아줄 때도 있고, 우연한 곳에서 독자를 만날 때도 있다.
『사이판 한달살기』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썼던 책이 아니며, 내 인생에 큰 보탬이 될 거라는 큰 희망과 포부를 품은 책도 아니었다. 그저 사이판이라는 여행지에서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면서 일기처럼 매일의 기록을 담았던 글이다. 간혹 ‘한 달 살기’라는 제목의 뉘앙스 때문인지 어떤 이들은 표지와 제목만 보고 멋대로 부정적 평가를 덧붙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다소 의기소침한 감정이 든다. 책이 꼭 나와 같은 인격체일리는 없으며, 자가 어떤 평가를 하든 그건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저자는 모든 독자들에게 응대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이들의 취향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이판 한달살기』를 읽고 실제로 사이판 여행을 오게 된 사람들을 여럿 만나보니, 약간 자부심이 생겼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서 머물고, 여행을 하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닐 수 있다. 자신의 상식 혹은 틀을 벗어나야 하며, 안전지대에서 물러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상황에 자신을 내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장기 여행을 하는 모든 엄마들은 위대하고 멋지다고 평가하고 싶다. 나에게는 판매 성적이 저조했던(?) 책으로 기억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해 준 ‘방아쇠’같은 책이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어떤 분은 이 책을 가족 모두가 읽고, 아이들까지 읽으면서 사이판 여행에 대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꼭 가 보고 싶은 인생 여행지가 되어서 진짜 사이판을 오게 되었고, 그 책의 작가를 사이판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일 자체가 신비롭다고 했다.
작가의 손을 떠난 한 권의 책은 독자의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책에서 무엇을 읽고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과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뻔해 보이거나 하찮은 일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뻔함’ 너머에 있는 세계를 찾아내는 건 각자의 몫이다. 어떤 경험을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분명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 거기다가 책을 출간하기 위해 글을 쓰고, 경험을 재구성했던 모든 과정은 의미 있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타로카드 중 "page of cups" 이라는 카드가 있다. 젊은 남자(시종)가 컵을 들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림이다. 마음은 여리고 감수성있는 예술적인 인물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며,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대단한 것을 이루지는 못해도 지금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고 기뻐하며 현실적인 완성보다는 낙관적 기대감을 갖고 있다. 절판된 책 『사이판 한달살기』가 내겐 "page of cups"(시종 컵)의 이미지 같다. 이후 EBS방송에서 '여행 육아' 의 방송에 나오기도 했고, 여러 교육 잡지에 기고한 경험도 나름 의미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독자들의 가혹한 평가가 겁이 나 글을 쓰지 않는다거나 팔리지 않을 것 같아 책 내는 일을 그만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저 내 생각을 솔직하게 끄집어 내고, 자유롭게 상상하고 표현하는 일을 이어나가면 된다. 모든 일에 불안감이나 두려움은 항상 존재한다. 그런 마음을 감추고 가리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밖으로 표출하면서 작은 기쁨을 이어나가면 된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책이 있는 명상 공간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카드로 마음공부하는 글을 씁니다.
『오후의 시선』『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등 다양한 책을 썼습니다.
타로카드가 주는 의외의 기쁨과 성찰의 순간으로 위로받으며 잠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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