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사이판 한달살기 여행을 계획했다. 내 인생의 추억의 여행지이면서 7년 전 <사이판 한달살기>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를 갖게 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절판된 책이지만 여전히 ‘사이판 한달살기’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매뉴얼같은 지침을 주기도 한다. 사이판 현지를 돌아다니면서 “혹시 작가님 아니세요?” 하는 말을 몇 번 들었다. 한국에서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책을 ‘사이판’ 현지에서 읽었다는 독자를 여럿 만나게 된다.
이번에 사이판 여행을 하며, 오래 전 인연이 닿았던 오케이 농장의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최근 과일식을 하는 청년이 농장에 들어와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떻게 나무에서 열린 과일만 먹고 살까. 궁금증에 한걸음에 달려가 프룻테리언 ‘유진’을 만나보았다.
현대 문명 사회에서 과연 인간은 과일만 먹고 살 수 있을까?
베지테리언을 넘어선 ‘프룻테리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그동안 실제로 만나본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사이판 한달살기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만난 ‘유진’이라는 20대 청년은 ‘과일식’이라는 섭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한국말과 영어를 잘 하면서 사이판의 ‘오케이 농장’이라는 곳에서 직접 딴 과일만 먹고 살아간다. 코코넛, 바나나, 깔라만시, 잭프룻, 타마린, 스타프룻츠 등 인공적인 손을 거치지 않은 가꾸지 않은 자연 그대로에서 열린 과일들이다. 몇 년 전부터 과일만 먹는 ‘프룻테리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한국, 멕시코, 동남아, 스페인 등을 거쳐서 미국령 남도의 섬 사이판에 정착했다.
한국에서 평범한 교육과정을 거친 그는 온갖 인스턴트, 가공식, 유해물질 범벅의 자극적인 음식들을 어릴 때 많이 먹고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자연을 헤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되면서 먹는 것 역시 바뀌게 되었다. 바로 재배하지 않고,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에서 얻은 과일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손으로 농사짓고 정제를 거친 탄수화물이나 지방 및 사육한 고기로 얻은 단백질은 자연의 에너지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그 이유를 굳이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현대 문명을 살아가2면서 재배되거나 사육된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일상을 영위하기란 어렵다.
과일식을 철저히 지키면서 사는 곳까지 옮기게 된 유진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현재의 삶에 이른 게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며 순간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로부터 오는 끌림과 파동에 따른 결과물이 현재 모습이다. 삶의 모양새는 각기 다르지만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하며 자아가 생기면서 자신의 인생을 각기 다르게 만들어 나간다.
인간이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은 상대와 나와의 상호작용으로 빚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꿈꾸는 모든 것이 서로간의 작용이라는 의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미래이지만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방향에 이르게 되는 것 아닐까.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할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을 통해 타로카드를 보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가늠하는 정도는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좋은 방향으로 가게끔 노력을 하고, 그것이 내 운명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 순간 다른 우주를 선택하는 것이다.
사이판에서 프룻테리언으로 살아가는 유진을 보면 타로카드의 12번 핵맨 (hanged man)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핵맨은 한쪽 다리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물구나무 서기 한 모습을 한 사람의 형상이다. 등 뒤로 손을 묶은 채 머리를 땅 쪽으로 거꾸로 매다는 형태는 과거의 형벌같은 일이었다. 머리를 땅으로, 다리를 하늘로 향한 모습을 보면 힘들어 보일만한데 그렇지 않다. 반짝반짝거리는 광채가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미지는 남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같다. 고통스럽다기보다는 차분한 얼굴로 명상에 잠겨 있다. 불필요한 노력을 피하고 상황을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오히려 고통을 자처하는 듯한.
물질적인 실현이나 성공에 대한 갈망도 없는 상태, 침착하게 세상을 관망하면서 정신적으로 충만해진 모습으로 여겨진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 역시 강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나무의 초록색 잎은 생명 에너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원망하지 않으며 있는 자리에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어떻게 과일만 먹으면서 살 수 있나요? ‘자연 식물식’이라는 것이 정말 현대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가요?”
유진에게 수많은 궁금증과 질문을 갖고 물어보았다. 수년간 자신의 삶으로 끝임없는 실험을 했고, 주변 친구들의 변화로 인해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기에 그는 확신한다고 말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현대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자연 식물식인 ‘과일식’이라고.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타로카드 12번 ‘핵맨’의 이미지처럼 그는 나무를 잘 탄다. 나무에 올라가 태양의 에너지가 듬뿍 담긴 코코넛 열매를 따서 코코넛 물을 마시고, 과육을 잘라 코코넛 젤리를 먹고, 말려서 코코넛 칩을 먹는다. 유기견과 유기묘를 함께 키우고 있는데 사료를 먹이지 않고 코코넛을 먹이면서 동물 역시 식물식을 하게끔 한다. 가끔씩 새나 쥐를 잡아 아기고양이에게 바치기는 하지만...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삶이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길을 찾아 남들과 다르게 ‘거꾸로’ 살아간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다. 시선을 뒤집어서 세상을 바라보면 그가 옳고, 세상이 틀릴 수도 있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 등 다양한 책을 썼습니다.
수원에서 작은 책방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카드로 마음공부하는 글을 씁니다.
<타로카드 럭키박스>는 타로카드가 주는 의외의 기쁨과 성찰의 순간으로 위로받으며 잠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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