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타로카드에서 교황은 바로 '루틴의 최고봉'

의식적이고 지루할 수 있는 일상 수행의 즐거움

2022.10.22 | 조회 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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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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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의 힘에 대해서 쓴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거야>는 반복적으로 하는 일을 단정하게 해내는 일러스트레이터 봉현 작가의 책이다. 매일 일상의 루틴을 잃지 않고 규칙적으로 살아내는 작가의 삶은 제목에 쓴 단어처럼 단정해보였다.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프리랜서의 일상을 뭉뚱그려서 써냈지만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일상의 규칙이 느껴졌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 나는 어떤 속도와 리듬으로 살았을까되돌아보게 된다. 오전에는 강의 하나를 들었고, 강의를 마친 후 근처 산에 올랐다. 가을의 산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선택한 충동적인 일이었다. 갑작스레 산에 가자고 의기투합한 세 명의 등산 메이트는 왕복 2시간 대략 1만 보의 산행을 했다.

 

손에는 아무 것도 들지 않은 채 주머니에 귤 세 개, 초콜릿 세 개를 넣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형제봉 정상에 올라선 내 모습을 보았다. 여느 때처럼 비석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높은 바위에 앉아서 수원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귤을 까 먹었다. 달고 시원하고 상큼했다. 초콜릿을 하나 까서 먹은 순간 지금껏 노곤노곤했던 피로감이 풀리는 듯했다. 생각보다 금방 올라왔고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어떤 일이든 정상에 오르고 나면 그 다음은 쉬워진다. 한 번 어려운 고비를 넘어보았기 때문에 그 이후의 일은 물 흐르듯이 더욱 자연스럽다. 오르막을 올라갈 때 약간 숨이 차고, 400개 넘는 계단을 오를 때 허벅지가 당길 정도의 고됨이었다.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발걸음을 하나 둘 옮기다 보니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금방 닿게 된 듯하다.

즐거운 등산을 마친 후 쭈꾸미 볶음을 먹으러 갔다. 작은 것을 작은 것을 해냈다는 기쁨과 시간을 알차게 잘 썼다는 뿌듯함이 교차했다. 뭔가를 하기로 했을 때 하는 것, 그것은 자신을 긍정하는 일이 된다. 즉흥적이었지만 하기로 했던 모든 일을 수행한 날이었다.

 

상대방의 스케줄이 어떠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같이 산에 갈래요?’ 라고 말을 꺼내어 본 것은 매우 잘 한 일이었다. 사람에 대해 편견을 잘 갖지 않고 뭐든지 함께 해 볼래요?’ 라고 권하는 취미(?)가 있어서인지 어떤 권유를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좋다. 나 역시 왠만한 일에서는 거절보다는 수락이 많은 편이다. 놀이를 권했을 때 잘 수락해주는 사람들이 좋다. 같이 놀 사람이 하나 둘 늘어갈 때 잘 살고 있나는 느낌을 받는다.

 

오후 늦게 책방(랄랄라하우스)에 와서 책을 읽고, 청소를 하고, 걸레질을 하고, 청소마친 후 걸레를 빨아 널었다.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불면서 부쩍 공기가 차가워졌다. 갑작스레 이렇게 살아가면 앞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지키고, 걷기로 했으면 걷는 것. 사랑이 느껴지니 사랑을 하고, 배가 고프니 밥을 먹는 것. 마음이 시키는대로 행동하고 삶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레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은 단순한 행복이다.

하루를 정리하면서 타로카드 한 장을 뽑았다. 오늘 나는 어떠한 하루를 보냈는가. 내가 오늘의 하루를 통해 배운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뽑힌 카드는 5번 교황카드. 타로카드의 교황은 인간과 신의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인물이다.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람이며, 나름 인내와 절제의 삶을 살아간다. 교황이야말로 루틴의 최고봉 아닐까. 새벽기도, 성경읽기, 수행노동, 설교와 예배 등. 종교의식으로 이뤄진 삶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정결해진 마음과 생각으로 사람들을 성찰하게끔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사람이다.

 

하루를 돌아보며 글로 정리하는 이 시간. 고요하게 아로마 향초가 흔들린다. 약간은 무겁게 느껴지는 공기, 붉은 색 스프레드 천 위에 깔린 타로카드. 오늘 하루 이렇게 단정하게 잘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건조대에 널어놓았던 빨래를 개켜서 서랍장에 다시 정리해놓듯이 오늘의 일들을 차곡차곡 내 인생 서랍에 넣어 둘 일만 남았다.

 


글쓴이 : 글쓰는 생활여행자로 살고 있습니다. 수원에서 작은 책방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상담과 글쓰기 수업을 합니다. 경쟁하지 않는 교육을 지향하며 모든 삶의 순간 속에서 배움을 찾아나가는 중입니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삼척에 있는 '삼무곡청소년마을'이라는 비인가대안학교에서 자기답게 살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바람의 끝에서 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엄마의 그림책> <그림책은 재밌다> <도란도란토론레시피> 등 다수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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