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나면 음악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려 할 때에도 중간에 항상 눈물이 나 끝까지 부르지 못한 채 멈추곤 했다. 허연의 시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에서 화자는 사랑한 채로 이별하기로 마음먹는다. 언제 노래가 될 수 있냐는 화자의 물음은, 사랑이 지속되는 한 노래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음악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친구와 사랑을 위해서라면 역설적으로 사랑할 때 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헤어지는 이유엔 온갖 것들이 다 있다지만 그 원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사실상 핑계다. 가장 보통의 이별 사유는 딱 하나,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헤어짐과 동시에 사랑이 끝난다고 말하지만, 연인과 헤어짐을 결심할 때부터 적어도 한 쪽의 사랑은 어딘가로 사라진 상태다. 나머지 한 쪽의 사랑은 강제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사랑’이란 것을 연애관계에 치중하여 해석하기보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의미처럼 ‘누군가를 간절히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 조금만 추상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 두 번 다시 상대를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그의 사랑은 끝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은 미결로 남아야한다고, 그래야지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미결로 남은 사랑이란 앞서 말한 대로 사랑할 때 헤어진 것을 뜻한다. 완결된 사랑 안에는 더 이상 사랑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어진 연인의 마지막 순간엔 사랑이란 없으니까.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사랑을 다루는 방식은 이런 나의 오랜 생각과 상당히 유사하다. 서래와 해준은 총 두 번 헤어진다. 두 번 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강력계 형사인 해준은 경찰이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삶의 전부였던 사람이다. 죽은 자의 마지막을 똑바로 쳐다보기 위해 안약까지 들고 다니던 사람이다. 피해자의 두 눈이 마지막으로 보았을 가해자를 꼭 잡겠다는 일종의 다짐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서래가 남편을 죽인 진짜 범인인걸 알게 되자, 증거가 담긴 휴대폰을 바다에 버리라고 한다.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라는 말을 남긴 채 서래의 품을 떠나간다. 서래는 해준의 이 말을 사랑의 증표라 믿는다.
두 번째 이별에 서래는 스스로 ‘미결사건’이 되어버린다. 해준과의 사랑의 증거인 자기 자신을 바다에 버린다.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한다. 영화는 해준이 바닷가에서 서래의 이름을 하염없이 부르며 다시는 보지 못할 그녀를 애타게 찾아 돌아다니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들의 사랑은 마침표를 찍지 못함으로써 비로소 계속될 수 있었다.
해준과 서래의 사랑의 순간에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음악인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중 4악장, <Adagietto>가 흘러나온다. 나는 이 음악을 듣다보면 항상 눈물이 났기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끝까지 듣지 못했다. 음악을 들을 때 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그 얼굴이 떠오르면 마음이 아파서 가슴을 주먹으로 치게 된다. 시간이 지나, 학교 오케스트라 수업 때 이 음악을 연습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딱 한 마디를 던졌던 것이 기억난다.
“이건 사랑에 관한 노래입니다.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 해 본적이 있다면, 그 마음으로 연주하시면 됩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매번 떠오르던 그 얼굴은 내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서래와 해준이 용의자와 경찰의 관계로 다시 한 번 만났던 경찰차 안에서, 둘의 손은 하나의 수갑으로 채워져 있다. 둘은 몰래 손을 잡는다. 말러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대화한다.
“잠은 좀 잡니까?”
“병원서 검사했는데 내가 한 시간에 마흔일곱 번 깬대요, 믿어져요?”
“건전지처럼 내 잠을 빼 주고 싶네요.”
대화가 끝나도 음악은 끝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없이 생각에 잠긴 둘의 모습에 계속해서 말러의 음악이 재생된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음악 또한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내 사랑을 미결로 두기로 했다. 가끔 그를 만나면 그와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잠은 좀 자냐고 물을 것이다. 가끔 말러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너무나 그리워 가슴을 치며 울기도 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울다가 잠들 테다. 그것이 사랑이 계속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는다.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는 이렇게 끝이 난다.
나는 언제쯤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말러 5번 4악장을 들어도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우리들이 사랑하는 이는 언제쯤 노래가 될까. 사랑하는 이가 노래가 되는 날에 비로소 내 눈물은 멈출 것이다. 그렇지만 평생 그를 노래할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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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26일 -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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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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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hgkr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영화 결말에 대한 스포가 있다는 걸 제목이나 눈에 띄는 곳에 표시해줬으면 합니다. 좀 읽다가 아차 싶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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