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농업 분야의 여성과 여성 농업인의 이야기

2023.03.21 | 조회 8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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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봄비가 내리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는 계절입니다. 이 시기에는 많은 생물이 깨어나고, 봉오리가 맺히거나 싹을 틔워 매우 활기찬 계절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농부들에게 봄은 농한기를 거쳐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분주하게 보내고 있죠. 농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도 최근 몇 년 동안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데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이러한 봄의 기운과 함께 여성 농업인들의 역사와 역할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잊혀진 여성들 59번째 뉴스레터, 농업 분야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코츠월드의 엘크스톤에 있는 프라이스의 농장에서 프리다 프라이스 부인과 1950년 뮤리엘과 함께 건초를 만드는 장면 (원래 캡션은 프리다 프라이스 부인을 농부의 아내로 지칭) ⓒ Science Museum Group Collection
코츠월드의 엘크스톤에 있는 프라이스의 농장에서 프리다 프라이스 부인과 1950년 뮤리엘과 함께 건초를 만드는 장면 (원래 캡션은 프리다 프라이스 부인을 농부의 아내로 지칭) ⓒ Science Museum Group Collection

농업에서도 여성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기원전 10,000년부터 여성들은 농업과 관련된 많은 일들을 수행해왔습니다. 노동 분담이 성별로 구분되던 석기 시대와 청동 시대에는 여성들이 농사를 맡아 씨앗을 뿌리고 농작물을 수확하였고, 중세와 근대에는 가축 관리 등을 맡아왔습니다. 

여성 농업인의 흔적은 농부의 아내나 농부의 딸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의 기록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여성은 농업에 대한 시각을 변화시켰습니다. 먼 곳에서 온 유제품이나 계란을 먹을 수 있도록 낮은 온도를 유지하면서 음식을 운송하는 방법을 개발한 메리 엥글 페닝턴, 나무에 물을 주는 방법을 찾다가 관개와 물 보존 방법을 특허로 취득한 해리엇 윌리엄스 러셀 스트롱 등의 여성들이 농업 분야의 혁신을 만들어내 왔습니다.

바느질 ⓒ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소장
바느질 ⓒ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소장

우리나라의 여성 농업인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곰곰이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당연한 일이랍니다.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농사에 참여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실제로 어떤 농사일을 했고, 어느 정도로 참여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인 사료는 남아있지 않아서 조선시대의 농업경영 형태와 초기 농서, 그리고 관련 논문을 참고하였습니다.

여성들은 농번기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농사일에도 상당 부분 참여했다는 점은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논농사는 주로 남자가 하고 밭농사는 여남이 같이, 직조는 여성이 전담했다고 추론한 연구 결과가 있으나 여성 노동을 구체적으로 짐작하게 해 주는 기록이 매우 희소하여 정확하지 않을 수 있죠. 

태종 10년 9월 29일의 실록 기사를 살펴보면 남자들이 부역에 징발되어 여자들이 대신 농사에 종사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나 실제 부역 징발은 비일비재한 일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농사일을 전담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수원의 우서에서 언급되는 "농가의 부녀는 농사일하고 식사를 마련하느라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쁜데, 반드시 또 스스로 옷을 짜서 입어야 하니 그 옷 짜는 것이 막히고 잘 나가지 못한다"라는 문장을 통해 직물생산의 낙후성에 대해 알 수 있는데요. 직물생산이 낙후되는 이유는 여성들이 농사나 가사일 이후 남는 시간에 직조 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하여 직조만 여성이 전담한 것이 아니라 농사와 가사일, 직조까지 도맡아 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황해 신천군에서 길쌈하는 여성들. 당시 ‘길쌈하는 부녀 한 명이 농부 세 명보다 낫다’고 할 정도로 길쌈은 고부가가치 산업이었고 가정 경제에서도 큰 몫을 차지했다. ⓒ 서울신문
일제강점기에 황해 신천군에서 길쌈하는 여성들. 당시 ‘길쌈하는 부녀 한 명이 농부 세 명보다 낫다’고 할 정도로 길쌈은 고부가가치 산업이었고 가정 경제에서도 큰 몫을 차지했다. ⓒ 서울신문

농사에 있어서 김매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농사의 성패는 김매기에 달려 있다고도 하죠. 김매기를 할 인력은 늘 부족하다고 쓰여있기에 여성들 또한 필수적으로 참여해왔을 것입니다. 조선 후기의 사료이기는 하지만 각종 시집살이 노래에 고부간의 갈등과 함께 농업노동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그 노동의 내용이 바로 김매기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김매기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또 그것이 얼마나 힘겨운 노동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벼농사도 밭농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여성들이 김매기에 종사하는 비율은 더욱 높았을 것입니다. 김매기는 전체 재배과정에서 단일 노동으로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기 때문에 전체 농업 노동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절대 작지 않다는 것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장담그기, 농가의 연중행사, 젓갈 담그기, 식품저장 방법 등의 부분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여성들이 담당했던 가사일로서 농서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으로 보아 농가의 가사일이 농사 일정에 포함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생활의 모든 부분이 농사와 귀결되는 것을 알 수 있죠. 농사일에 있어서 여성들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가사일은 여성의 몫이고, 농사일이 남성의 몫이다'라는 역할 구분은 아무래도 잘못된 사실인 것 같지 않나요?

당근을 수확하고 있는 여성 농업인들. ⓒ 농수축산신문
당근을 수확하고 있는 여성 농업인들. ⓒ 농수축산신문

과거 여성들의 농사 참여는 일상적이며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농사에 참여하는 여성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농업에 대한 역사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과소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요?

오늘날 여성농업인은 농업생산의 주역이라고 말합니다. 농사일 중 여성 농업인이 담당하는 비중이 2018년 기준 평균 53.9%에 달하는 등 여성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역할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노동의 가치나 농업인으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농가(農家) 중심의 농업과 농촌 문화가 남성 중심의 가부장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10년 간 남여 농업인구 변화 ⓒ 농수축산신문
최근 10년 간 남여 농업인구 변화 ⓒ 농수축산신문

“밭일, 풀뽑기, 모심기 등 농사일은 거의 다 여자들이 하는데, 힘든 일이 다 끝나고 수확할 때면 남자들이 기계를 가져와 수확하고선 자기들이 다했다고 한다.”

마을에서 행사가 열릴 때면 여성 농업인은 음식 장만이나 뒤치다꺼리만 하고 의결권은 행사하지 못하는 16년 차 농업인이 있고, 농산물을 공판장에 남편 이름으로 출하해 돈이 필요할 때마다 남편에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는 32년 차 여성 농업인이 있고, 농산물을 출하할 때 상(上)품은 남성 이름, 하(下)품은 여성 이름으로 출하해 일부 공판장에서 이름만 보고 낮은 가격을 매기기도 한다는 20년 차 여성 농업인이 있습니다. 많은 여성 농업인들이 농촌에서의 삶에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아직까지도 농촌의 중심인 여성들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니 놀랍지 않나요? 사실상 일은 여자가 다 하는데 생색은 남자가 내고 있으니 말이에요. 

세계 여성 농업인의 날 ⓒ Trade
세계 여성 농업인의 날 ⓒ Trade

농경연 보고서에서는 농업생산 규모와 농업 취업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여성 농업인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여성 농업인의 농사일 담당 비중은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여성 농업인의 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여성 농업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또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년 10월 15일을 기억해둬야 하는데요. 바로 FAO가 정한 '쌀의 날'이자 '세계여성 농업인의 날'입니다. FAO는 특히 쌀로 대표되는 식량의 생산에서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여성의 역할을 기억하도록 해왔습니다. 이러한 인식과 여성농업인 단체들의 노력으로 1995년 북경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는 이날을 '세계여성 농업인의 날'로 선포하였습니다.

2021년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농업인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농업과 농촌 분야에서 여성 농업인의 중요성을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서요. 바뀐 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 농촌 양성평등 실현과 여성농 안정 보장을 위한 사항과 여성의 농촌 정착과 전문 인력화를 지원할 수 있도록 추가했습니다. 

ⓒ Unsplash
ⓒ Unsplash

기후 변화와 이상 기후로 인한 식량 부족과 자원 고갈 등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농업과 농촌 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비건과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더욱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여성 농업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나만의 작은 텃밭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작은 모종이나 귀여운 화분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직접 물을 주고, 흙을 만지며 자연의 순환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 순환 속에서 농업은 필수적이며,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실 거에요. 그리고 이러한 중심에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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