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새겨진 여성의 시선을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난 4인의 한국 여성 미술가

2025.02.25 | 조회 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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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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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

겨울 같지 않게 따뜻한 날씨와 어마어마하게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이상기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런 계절이면 구독자님은 어디로 외출하시나요? 에디터 J는 요즘처럼 날씨가 변덕스러울 때, 가까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시장을 걸으며, 작품이 전하는 감정과 메시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 큰 위안이 되죠.

최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이 전시는 그동안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여성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며, 그들의 삶과 투쟁, 그리고 예술이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이들은 단순히 예술적 표현을 넘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반영하며, 미술이 시대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전시에서 만난 4명의 한국의 여성 미술가와 한국 현대미술사에 대한 그들의 기여도와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① 박영숙

사진작가 박영숙 © 한미사진미술관
사진작가 박영숙 © 한미사진미술관

📍 작가 소개

박영숙은 한국 현대 사진사와 페미니스트 운동에 주요한 역할을 해온 한국의 1세대 여성 사진작가입니다. 역사적, 사회적으로 불온한 배제의 대상으로 여겨진 여성성을 강하게 부각하는 도발적인 인물 초상사진을 주로 작업해 왔습니다.

1941년 천안에서 태어난 박영숙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사학과를 전공했으며 ‘현대사진 연구회’ 부터 학교 내 사진 동아리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습니다. 1966년에 중앙공보관에서 여성 사진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고, 1982년에 개최한 4회의 개인전까지 그의 초기 작업은 대부분 여성 혹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찍은 모더니즘 경향의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86년 숙명여대 산업대학원 사진디자인과 졸업 이후 그는 여성주의 단체인 ‘또 하나의 문화(이하 또문)’에 참여해 본격적으로 여성주의 사진작가라는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40대에 여성주의를 처음 접한 그는 몸과 마음을 뒤흔드는 전율을 경험했고, 낯선 길이지만 여성주의 사진을 찍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때부터 박영숙은 여성 문인들과 교류하며 여성주의 글쓰기를 훈련했고, 여성주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작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아라리오 갤러리
© 아라리오 갤러리
© 아라리오 갤러리
© 아라리오 갤러리

🖼️ 대표 작품

박영숙의 작업은 사진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대표적입니다. 남성 작가의 사진에서 여성은 욕망의 대상이거나 타자이지만, 박영숙은 남성 언어로 길들여진 사진계에서 여성적 사진 찍기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여성을 발견하는 과정이자 공감의 영역이며, 서로 연대하며 함께하는 삶을 고민하는 여성주의적 실천으로 얘기합니다.

박영숙의 대표작으로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한 <미친년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박영숙은 약 7년간 한국의 ‘미친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는데요. 사회적 통념에 벗어난 여성, 가부장적인 사회구조가 속박해 온 “여성”에 대한 관념들을 전복시키는 작업으로 친구·친척 등 가까운 이들을 분장시켜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빼앗긴 아이를 잊지 못해 정신을 놓아버린 젊은 여성, 멍한 표정으로 담장 안 꽃나무를 들여다보는 중년 여성, 생선을 손질하다 넋이 나간 여성 등을 연출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려는 열정을 담은 이 작업은 ‘여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세상에 대한 풍자였습니다. ‘갇힌 몸 정처 없는 마음’, ‘오사카와 도쿄의 페미니스트들’, ‘꽃이 그녀를 흔들다’ 등 9개 연작으로 이뤄진 <미친년 프로젝트>는 “동료 페미니스트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얻으며 자매애에 기반한 자가 발전적 페미니즘 프로젝트로 확장돼 나갔다”(미술평론가 김홍희)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성들은 스스로를 억압해왔다. 자신들의 삶을 그 누구에게 빼앗긴 줄도 모르면서. 윤리, 제도, 문화, 사회가 그녀들의 삶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자아가 없었다. 그녀들은 꼭두각시였다. 어머니, 누이, 착한 딸, 예쁜 손녀, 그리고 마음 너그러운 부인으로 불리면서…” 

-박영숙 작가노트, <미친년 프로젝트>에 대하여.

② 김인순

작가 김인순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출처:여성신문)
작가 김인순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출처:여성신문)

📍 작가 소개

김인순은 뒤늦게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독특한 작가입니다.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인순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생활미술과 졸업했습니다. 그는 1970년대까지 정물화나 누드를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였으나, 1984년 첫 개인전을 계기로 비판적 사회의식을 기반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1985년 김인순은 김진숙, 윤석남과 함께 ‘시월 모임’을 결성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미술 운동을 시작한 여성 작가입니다. 김인순이 주로 다루는 주제는 ‘여성의 현실’이었습니다. 사회 현실을 지극히 소박한 기법으로,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점으로 인하여 그의 그림은 예술성이 결여되었다거나 선동적인 포스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성해방운동을 실천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여성의 시대적 가치를 탐색했던 김인순은 여성이 가진 긍정의 힘과 생명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한국의 자생적 여성미술을 민족적 조형 언어로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김인순 <현모양처> © 국립현대미술관
김인순 <현모양처> © 국립현대미술관
김인순 <여대생취업구걸> © 서울시립미술관
김인순 <여대생취업구걸> © 서울시립미술관

🖼️ 대표 작품

김인순의 작품은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여성 작가들은 1980년대 한국 여성운동의 영향을 받아 여성의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작품 활동을 펼쳤는데요. 김인순 작가는 최초의 페미니즘 전시로 기록되는 제2회 <시월 모임 – 반에서 하나로>(1986)를 기획했습니다.

그는 여성미술 연구회와 그림패 둥지를 조직하고 한국여성단체연합과 교류하며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현실을 작품으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성의 고유한 경험 가치를 고민했죠. 김인순은 화실에 틀어박혀 있기보다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현장에 참여하고 자칭 ‘그림 노동자’라 칭하면서 여성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림에 담아왔습니다. 그의 1980~90년대의 작품들은 21세기의 현시점에서 20세기를 드러내 주는 역사화로서 기능하며, 세기의 공공미술과 여성미술의 뿌리로서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학사모를 쓴 여성이 스포츠신문을 보며 거만하게 앉아 있는 남편의 발을 씻겨주는 그림 ‘현모양처’는 그의 대표적인 여성주의적 작품입니다. ‘여대생 취업 구걸’은 과장급 이상 간부 사원 중 여성의 비율이 1%였던 그 시절 여성 차별적인 기업의 행태를 직관적으로 까발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③ 이불

작가 이불 © 아이즈매거진
작가 이불 © 아이즈매거진

📍 작가 소개

‘새벽’이란 뜻의 ‘불’로 지어진 이름을 가진 이불은 1964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설치작품을 중심으로 퍼포먼스, 회화, 드로잉 그리고 영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매체를 활용하는 설치 미술가입니다. 한국의 정치·사회적 변혁의 시기에 성장한 이불은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진학한 이후 일찍이 학제와 장르를 넘나드는 도발적인 작품으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이불은 80년대 후반부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 상품화를 공론화했고, 그의 작품은 기존 관념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나의 원동력은 분노"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하며 그의 작품관을 알리기도 했죠.

동시대 최고의 한국 현대미술가로 널리 알려진 이불은 뉴뮤지엄(뉴욕, 2002), 호주 현대 미술관(시드니, 2004),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파리, 2007), 팔레 드 도쿄(파리, 2015), 헤이워드 갤러리(런던, 2018),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베를린, 2018) 등 세계적인 주요 미술관에서 연이은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하며 국제 미술계의 꾸준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2012년 아시아 여성작가 최초로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가진 대규모 회고전은 동시대 최고 작가로서 작가의 위용을 증명한 전시입니다.

이불 〈수난유감 —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 작가 제공 (제공출처:불광미디어)
이불 〈수난유감 —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 작가 제공 (제공출처:불광미디어)
1990년 ‘제2회 한일 행위예술제’의 일환으로 서울과 도쿄에서 12일간 벌인 퍼포먼스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에서 이불 작가가 소프트 조각을 입고 도쿄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 © 서울시립미술관
1990년 ‘제2회 한일 행위예술제’의 일환으로 서울과 도쿄에서 12일간 벌인 퍼포먼스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에서 이불 작가가 소프트 조각을 입고 도쿄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 © 서울시립미술관
이불 <낙태> © 광주비엔날레
이불 <낙태> © 광주비엔날레

이불은 여성 신체를 향한 남성의 제도화된 시선, 남성 중심적 상징체계와 신화, 그리고 여성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맞서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여성이 처한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상황을 직시하며 저항해 온 작가입니다.

이불의 초기 활동에서 주요 소재이자 주제인 ‘몸’은 여성 혹은 여성의 신체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만큼 작품 세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고자 했던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확인해 가는 과정을 겪으며 세상을 바꾸어나갔습니다.

1989년 이불은 ‘낙태’를 주제로 한 전시회에서는 천장에 나체로 매달려 낙태의 고통을 표현했습니다. 나체로 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곡괭이로 끊어내는 자학적 퍼포먼스를 보이며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부계적 억압과 폭력을 고발한 작업이었습니다.

이듬해엔 괴물 같은 차림으로 공항에서부터 일본 도쿄까지 12일간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를 감행했습니다. 여성의 몸을 남성의 시각으로 재단하는 사회에 이의를 제기하는 반항이었죠. 이 작품들은 여성 신체의 사회적 구조와 육체 자체의 한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또한 가부장적인 사회가 여성의 신체와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줍니다.


④ 윤지영

작가 윤지영 © 인천아트플랫폼
작가 윤지영 © 인천아트플랫폼

📍 작가 소개

1984년에 태어난 윤지영은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시카고 예술대학 대학원의 조각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환경으로서 개인에게 주어질 때 더 ‘잘’ 살기 위해 혹은 더 ‘나아지기’ 위해 개인이 취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감춰져 있는 ‘희생의 구조’나 ‘믿음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에도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고 합니다. 입체와 영상으로 결과물을 내는 편이긴 하나, 하고 싶은 이야기에 맞춰 매체를 정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하기도 합니다.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 전시에서 윤지영은 조각 매체의 문법을 이용하여 사회 근저에 작동하는 ‘희생 또는 믿음의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사물이 가진 물리적이고 구조적인 속성과 그 의미론을 섬세하게 조율하여 만들어지는 조각적 상황에서 하나의 알레고리로서 우리 사회의 심리적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윤지영, ‘미, 노’, (구작) © 국립현대미술관
윤지영, ‘미, 노’, (구작) © 국립현대미술관
윤지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 (구작) © 국립현대미술관
윤지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 (구작) © 국립현대미술관

🖼️ 대표 작품

윤지영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는 탐구해온 내·외부의 역학을 공간적인 경험으로 제시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마음과 몸 사이의 역동, 마음과 행동 사이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드러내는 조각을 만들어왔는데요. 내장 그물은 몸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낸 것으로, 누군가의 내밀한 영역을 둘러보게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윤지영은 작품 ‘미, 노’의 조각을 50센티 지름의 구와 같은 부피로 만들었습니다. 조각은 몸을, 싸개는 움직이는 피부를 은유하는데요. 도형과 싸개 사이의 갈등은 몸과 피부의 관계를 넘어 욕망 또는 규범과 실제 사이의 불일치가 일으키는 갈등을 시사합니다. 되고 싶은 모습, 될 수 없는 모습, 되어야 하는 모습 사이에 겪는 괴리감을 다양한 조각적 형태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예술과 역사, 그 사이에서

여성 미술가들은 역사 속에서 독특한 시각과 강렬한 메시지로 예술의 지평을 넓혀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과 중요성은 오랫동안 미술사에서 과소 평가되거나 간과되어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예술 활동에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의 작품은 종종 남성 중심의 기준과 체계 속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어, 여성 미술가들은 끊임없는 노력과 창의성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예술로 표현하며 독자적인 자리를 만들어왔습니다.

여성 예술가의 역사는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변화의 역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들은 예술을 통해 기존의 규범에 도전하며, 우리가 기존에 가진 미적·사회적 가치를 재고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여성 예술가의 작업과 그들의 역사를 조명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예술과 사회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더 포용적이고 다층적인 예술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여성들의 세계를 예술로서, 혹은 그 어떤 것으로서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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