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바람에 베일 것 같은 찬 공기 대신 훈훈한 기운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벌써 2월이 지나가고 있으니 어느새 봄이 코 앞이네요.
이번 달의 마지막 주를 장식할 뉴스레터는 세계 여성의 역사는 어디에 보관되어 있을까? 입니다. 지난달, 에디터 J(조지)는 런던의 한 미술관을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세계 최초의 초상화 전문 미술관이라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 수많은 여성이 지나온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여러 미술관을 다녔지만 그 어떤 공간도, 어떤 그림도 마음의 울림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돌아와서도 기억에 남는 건 이 공간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대중적인 미술관에서 여성의 역사를 관람할 수 있는 영국처럼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간이 존재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에 여성의 역사가 보관되어 있는 장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영국편
국립 초상화 미술관
- 장소 | St Martin's Place, London, WC2H 0HE
- 홈페이지 | https://www.npg.org.uk/
- 이용시간 | 10:30 - 18:00
- 이용요금 | 무료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은 영국 저명인사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입니다. 16세기 영국의 왕가부터 현시대의 유명 인사까지 영국을 빛낸 사람들의 초상화가 있으며, 미술관은 총 3층이며 위층에서부터 시대순으로 관람이 가능합니다. 3층에는 17~19세기 초의 인물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19~21세기 인물이 전시되고 있으며, 1층에는 현시대의 인물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초상화, 사진, 캐리커처 등 215,000여 점의 다양한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제작자의 명성이나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초상에 등장하는 인물의 유명세를 더 중요시 한다고 합니다. 설립 초기에는 튜더 왕조, 빅토리아 여왕, 셰익스피어 등 역사적인 과거 인물의 초상화만 전시되었으나 1969년부터는 생존 인물의 초상도 전시되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의 초상화만 가득한데 과연 재미있을까?’ 싶었지만 미술관 곳곳을 거닐다 보면 친숙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엘리자베스, 버지니아 울프, 에이다 러브레이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등의 초상화를 마주할 수 있거든요. <잊혀진 여성들> 뉴스레터를 꾸준히 읽어오셨다면 익숙한 인물이 보이실거에요. 저 또한 뉴스레터를 적으며 사용했던 사진을 원본으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 영국의 여성들에 대해 궁금하다면? 지난 뉴스레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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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도서관
여성 도서관(Women's Library)은 영국 여성사 80년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이자 박물관입니다. 이곳에는 여성 문학, 저널, 잡지 등의 문헌자료와 근대 여성의 삶에 관한 시각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도서관은 1866년 투표권 운동을 위해 설립된 여성 참정권 협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밀리센트 포셋(Millicent Fawcett)라는 여성에 의해 세워진 런던 여성 참정권 조직의 전신인 여성 업무를 위한 협회가 그 시작이었죠. 1926년에 공식적으로 개관한 이 도서관은 현재 런던 정치 경제 대학의 도서관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는 60,000권 이상의 도서와 팸플릿, 3,500권 이상의 정기 간행물 등이 있습니다. 도서관의 박물관 컬렉션에는 참정권 및 캠페인 배너, 사진, 포스터, 배지 등을 포함하여 5,000개 이상의 물건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2011년에는 여성 참정권 기록 보관소는 유네스코의 영국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박물관은 여성학 및 여성사 연구에 있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여성 연구의 장을 제공하고 있는 전문적이면서 특화된 박물관입니다.
페미니스트 도서관
- 장소 | The Sojourner Truth Community Centre,
- 홈페이지 | https://feministlibrary.co.uk/
- 이용시간 | 화,수,금 11:00 - 17:00 토 13:00 - 16:00
- 이용요금 | 무료
원래 여성 연구 자원센터(WRRC)로 알려진 페미니스트 도서관(Feminist Library)은 여성 해방운동(WLM)이 한창이던 1975년 여성 학자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논픽션 서적과 소설, 시, 시나리오 등의 작품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저널, 잡지, 뉴스레터 등의 정기 간행물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의 주요 목적은 페미니즘 지식을 알리는 역할도 있지만, 연구원, 활동가 및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대중이 페미니즘 역사를 배우고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페미니스트 도서관은 독서 클럽 모임, 예술 및 웰빙 활동, 정기적인 워크숍과 같은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2019년, 재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페미니스트 도서관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800명 이상의 사람의 기부를 받아 도서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며, 도서나 상품을 판매하고 모든 수익금은 도서관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고 하는데요. 시민들의 자금을 모아 이 도서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 미국편
벨몬트-폴 전국 여성 평등기념관
- 장소 | 144 Constitution Avenue NE, 워싱턴 DC
- 홈페이지 | https://www.nps.gov/bepa/index.htm
- 이용시간 | 금,토,일 10:00 - 17:00
- 이용요금 | 무료
워싱턴 DC 인근 국회의사당에 위치한 벨몬트-폴 전국 여성 평등기념관은 90년 넘게 전국 여성 당(National Woman's Party)의 본거지인 이곳의 여성 권리를 위한 투쟁의 진원지였습니다. '벨몬트-폴'은 참정권 운동가이자 전국 여성 당의 지도자인 알바 벨몬트(Alva Belmont)와 앨리스 폴(Alice Paul)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여성 평등을 위해 전국 여성 당을 창설한 앨리스와 전국 여성 당의 회장이자 주요 후원자인 알바는 여성 평등 운동에 수천 달러를 기부했으며, 전국 여성 당이 새 본부를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1929년부터 여성 참정권을 위한 투쟁의 주요 정치 조직인 전국 여성 당의 본부로 사용된 벨몬트-폴 전국 여성 평등기념관은 1972년에 국가 사적지로 등재되었고, 1974년에는 국립 역사 랜드마크로 지정되었으며, 2016년에 전국여성당은 이 건물과 부동산을 국립공원관리청에 기부했습니다. 평등을 위한 미국의 지속적인 투쟁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여성 권리를 위해 투쟁에 일생을 바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물입니다.
국립 여성 예술가 박물관(NMWA)
- 장소 | 1250 New York Ave NW, 워싱턴 D.C
- 홈페이지 | https://nmwa.org/
- 이용시간 | 10:00 - 17:00 (월 휴무)
- 이용요금 | $16
국립 여성 예술가 박물관(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NMWA)은 미국 워싱턴 DC의 미술관으로 세계 유일의 여성 예술 전문 박물관입니다. 비영리 사립박물관으로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활동을 장려하고 지원한다고 합니다. 이 박물관은 전통적인 미술사를 개혁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동안 간과되고, 지워지고, 인정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알리며, 현대 미술에서 여성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설립자인 빌헬미나 콜 홀라데이(Wilhelmina Cole Holladay)는 박물관 컬렉션과 주요 미술 전시회에서 여성이 과소 평가되는 것을 깨닫고 1960년대부터 미술품 수집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1987년 개관한 이래 전 세계 예술가들의 사진, 회화, 조각, 비디오 등 4천여 점의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르네상스부터 현재까지 중요한 여성 예술가를 조명하고, 홍보함으로써 예술 표현의 성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프리다 칼로(Frida Kahlo), 홍 리우(Hung Liu) 등 약 28개국 700여 명의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1987년, American Women Artists를 시작으로 약 200개 이상의 전시회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 한국편
국립 여성사 전시관
- 장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중로 104번길 50
- 홈페이지 | https://eherstory.mogef.go.kr/
- 이용시간 | 10:00 - 18:00 (월 휴무)
- 이용요금 | 무료
국립 여성사 전시관은 국내 최초 여성사전시관으로 2002년 12월 9일 서울시 대방동에 처음 설치되었습니다. 2012년 국립 박물관으로 등록되었고 2014년 9월 1일 고양시 정부 지방합동청사로 이전 개관하였는데요. 역사 속 여성의 역할과 역사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조명하고, 국민의 양성평등 의식 고양을 위한 복합교육문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1층은 기획전시실, 2층 상설전시실, 수장고와 학예연구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여성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실물 자료, 미디어 아트 등을 활용하여 선덕여왕을 비롯한 근현대까지의 한국 여성사의 흐름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2003년 개관 1주년 기념 여성의 힘과 창조성을 주제로 하는 특별기획전을 시작으로 매년 특별기획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양성평등 교육과 성인 대상 여성사 강좌 등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전시관에서 지역사회 주민들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으며, 자원봉사 포털을 통해 신청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VR을 이용해 온라인 전시로도 관람할 수 있으니 직접 방문이 어려운 분들은 참고해주세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 장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11길 20
- 홈페이지 | https://womenandwarmuseum.net/
- 이용시간 | 10:00 - 18:00 (일, 월 휴무)
- 이용요금 | 무료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공간입니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아이들이 자라길 바랐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오랜 염원은 국내외 시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모금 활동으로 이어져 2012년 5월 5일 어린이날,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 개관되었습니다.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의 역사와 기억을 알리고 '여성, 인권, 평화'를 향한 현재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부설 기관으로 건립한 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관점으로 전쟁과 여성 인권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데요. 1990년 11월에 설립된 정대협은 일본 정부에게 역사교육과 추모비 및 사료관 건립을 요구해 왔습니다. 1994년부터 사료관 건립을 계획했던 정대협은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을 치르고 난 후 박물관 건립을 위해 박차를 가하였습니다. 정부의 재정 지원과 지방자치단체의 부지 기부가 성사되지 않아 박물관 건립은 국내외 시민과 단체들의 광범위한 지원을 받았으며, 뜻있는 건축인들이 박물관 설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역사와 기록이 필요한 이유
우리가 어렸을 때 배운 역사는 역사의 전체를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여성의 공헌을 포함하지 않은 이야기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교실에서 성별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마이라 새드커(Myra Sadker)는 '여성은 여성이 없는 역사를 읽을 때마다 자신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역사에서 여성의 능력이나 업적에 대해 배우게 되면 어떨까요? 과학, 지역사회, 정치, 문학, 예술, 스포츠 등 삶의 모든 측면에서 여성의 업적을 인정한다면, 여성에게 더 많은 가능성 자존감을 심어주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이처럼 '존재하는 여성'을 전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박물관의 전시에는 여성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여성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아주 간단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을 시작으로, 문제 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여성의 역사가 담긴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공간은 여성의 삶, 그들이 직면한 도전과 어려움을 보여주었고, 과거의 여성과 현재의 여성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또한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죠. 이 공간들은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역사 속 여성의 이야기는 언제나 놀랍고, 힘과 영감을 주기 때문이죠.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더 늘어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에디터 J의 특별편,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소개해드린 공간이 마음에 드셨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구독자님이 알고 있는 또 다른 공간이 있다면 댓글로 추천해주세요! 댓글과 구독은 여성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큰 원동력이 됩니다. 그럼, 3월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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