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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 여OO, 처녀OO, 자궁'
위의 단어들은 우리가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쓰는 용어들이지요. 하지만 이 용어들이 성차별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성차별적 용어는 차별과 편견을 강화합니다. 이러한 용어는 특정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며, 이는 성별에 따른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편견을 고착화시킵니다. 또한, 성차별적 용어는 심리적 영향을 미칩니다.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이러한 언어로 인해 심리적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자존감 저하와 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성차별적 언어는 개인의 정신적 안녕을 해치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주 잊혀진 여성들 뉴스레터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성차별적 단어를 바로 잡고, 새로 추가된 여성의 언어에 대해 소개합니다.
국어사전 속 성차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습관적으로 성차별적인 언어가 쓰이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시민 제안을 받아 우선 공유해야 할 성평등 언어를 선정·발표했습니다.
제일 많이 제안된 것(608건 중 100건)은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 붙는 ‘여’자를 빼는 것입니다. 여직원, 여교수, 여의사, 여비서, 여군, 여경 등을 직원, 교수, 의사, 비서, 군인, 경찰 등으로 부르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이는 남성의 경우 ‘남’자를 붙이지 않는 것과 달리, 여성에게만 ‘여’자를 붙이는 것이 차별적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자고등학교에만 붙은 ‘여자’를 빼고 ‘00 고등학교’라고 학교명을 붙이자는 의견도 선정됐습니다.
두 번째로 많은 시민들이 제안한 것(608건 중 50건)은 일이나 행동 등을 처음 한다는 의미로 앞에 붙이는 ‘처녀’를 ‘첫’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처녀작, 처녀출판, 처녀출전, 처녀비행, 처녀등반, 처녀항해 등을 첫 작품, 첫 출판, 첫 출전, 첫 비행, 첫 등반, 첫 항해 등으로 바꾸자는 의견입니다.
'학생의 아버지나 형이라는 뜻으로, 학생의 보호자를 이르는 말’인 ‘학부형(學父兄)’은 학교나 사회에서 거의 쓰이지 않고 있지만 ‘경찰의식규칙’ ‘해양경찰의식규칙’ 등에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시민들은 “학생의 보호자는 아직도 아버지와 형만 되냐”며 ‘학부형’을 ‘학부모’로 개선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 국회, 미디어 등에서는 정책 등을 설명할 때 ‘저출산(低出産)’ 대신 ‘저출생(低出生)’이라는 단어 사용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출산율 감소와 인구 문제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등의 법령용어에서도 ‘저출생’을 사용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남성 중심 가족문화가 바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민법’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가사소송법’ 등에서는 아들인 남성만을 지칭하는 ‘자(子), 양자(養子), 친생자(親生子)’가 쓰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어들을 아들과 딸을 함께 포함하는 ‘자녀(子女), 양자녀(養子女), 친생자녀(親生子女)’로 바꾸자는 제안이 많았습니다.
일상에서 평등 육아 개념에 반하는 ‘유모차(乳母車)’라는 용어 대신 ‘유아차(乳兒車)’를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도로교통법’ 등에서는 ‘유모차’라는 단어가 여전히 쓰이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아직도 아빠는 유모차를 끌 수 없나?”며 이제 법령도 ‘유모차’ 대신 유아가 중심이 되는 ‘유아차’로 표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자궁(子宮)’이라는 표현도 살펴볼까요? 자궁의 대체 단어는 포궁입니다. 포궁(胞宮): '포궁'은 '포(胞)'와 '궁(宮)'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포(胞)'는 '세포'나 '집'을 의미하며, '궁(宮)'은 '궁전' 또는 '집'을 의미합니다. '포궁'은 '세포를 품은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는 특정 성별을 지칭하지 않고, 생리적 기능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 밖에도 3인칭 대명사인 ‘그녀(女)’를 ‘그’로, 인구 문제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는 ‘저출산(低出産)’을 ‘저출생(低出生)’으로, ‘미혼(未婚)’을 ‘비혼(非婚)’으로 바꾸자는 제안들이 있었습니다.
한자 속 여성 혐오
부정적인 한자에는 여성을 뜻하는 女가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한자에 여성이 많이 들어가 있는 이유는 여러 역사적, 문화적 요인에 기인합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이 사회 구조에서 남성은 주로 공적 생활과 권력을 차지하는 반면, 여성은 가정 내에서 제한된 역할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언어에도 반영되어, 여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자의 발달 과정에서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글자들이 그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인식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한자에 여성이 포함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姦(간)" 자는 '간통'이나 '나쁜 짓'을 의미하는데, 이는 세 명의 여자가 함께 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여성이 부정적인 상황이나 행동과 연관된다는 인식을 반영합니다.
또 다른 예시로 '싫어할 혐(嫌)'이 있습니다. ‘혐(嫌)’ 자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주로 부정적인 감정이나 태도를 나타냅니다.
왜 이러한 관념이 지속되어오는 걸까요? 여성 억압의 언어적 표현도 한 요인입니다. 언어는 사회적 권력 관계를 반영합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여성을 억압하는 표현들이 많이 사용되었고, 이는 언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다는 것을 언어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문자 교육과 전승 과정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한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었고, 교육과 문학을 통해 전승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의미와 연관된 여성 한자가 그대로 유지되어, 현대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죠.
성적 학대 사전에 새로 추가된 용어들
영어에서는 성적 학대를 설명하기 위해 '가스라이팅(gaslighting)', '업스커팅(upskirting)'—본인의 동의 없이 여성의 치마 아래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행위—, '러브 바밍(love bombing)'—집착과 같은 애정 공세—와 같은 새로운 용어가 점점 더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용어들은 성적 학대를 보다 명확히 설명하고,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최첨단 전투기를 ‘스텔스(stealth)’라고 부릅니다. 몰래 움직이거나 훔친다는 의미의 동사 ‘스틸(steal)’의 명사형이죠. 여기에서 나온 ‘스텔싱(stealthing)’이라는 말이 나와습니다. 아직은 한국에서 낯선 용어지만 성관계 중 상대방의 동의 없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을 중단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인 '스텔싱(stealthing)'이 영국, 독일, 캐나다, 미 캘리포니아주에선 강간으로 분류되어 처벌되고 있습니다. 과거 여성은 고위직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지식이나 단어의 의미를 만드는 작업은 모두 남성의 특권이었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받는 피해를 지칭하는 단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어학자들은 강조합니다.
특히 '부부 강간'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후, 이것이 폭력임을 깨달은 여성들이 늘어났습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기혼이거나 파트너가 있는 15~49세 사이의 이집트 여성의 30%가 남편 등의 파트너로부터 육체적, 성적 폭력을 당해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집트에서 부부 강간을 구체적으로 명명하는 법안의 초안 작성을 돕고 있는 로프티는 "강간은 사회에서 거부되고 처벌되는 행위이기에 부부관계에 '강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길 꺼리는 이들도 있다. '부부 강간'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남성에게 즉각적인 비난이 가해지기에 이 용어와 남성 간의 거리를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인지과학자 레라 보로디츠키 교수는 인간이 "이렇게까지 똑똑해지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보로디츠키 교수는 "언어는 우리의 필요에 맞게 바꿀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라며, "언어가 어떻게 우리의 생각 방식을 형성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사람들의 생각 방식을 바꾸기 위해 말하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현실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관성을 극복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작은 습관으로, 오늘부터 성차별적 표현 대신 제안된 다른 표현을 사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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