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일상에서 쓰이는 다양한 용례를 접하다보면, 이제 아카이브는 ‘우리’ 손을 떠나 전문 영역 밖으로 벗어나 버린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면 기록계에서 아카이브의 의미는 뭐였길래?
아카이브는 학술 연구의 일환으로 혹은 업무 활동의 연장선 상에서, 나아가 개인적인 의미 부여까지 가능한, 그야말로 다양한 경험과 관점이 반영되고 작용하는 영역이다. 우리나라 기록학의 역사는 공공기록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특징을 지니고, 여전히 그러한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많은 노력으로 대안적 기록화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고 있으며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보이는 사례도 활발하다. 그렇지만 항상 조금쯤은 목마른 이 느낌은 무엇일까?
다시 주제 질문으로 돌아가서, 질문을 읽고 아카이브와 철학이 무슨 상관인지 궁금해진다면 바로 그 지점이 문제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미 여러 철학 이론에서 아카이브에 관한 논의를 진행해 왔지만 국내에 제대로 번역된 글이나 책, 논의된 글도 부족한 실정이다. 당연히 교육 과정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접하기 어렵다. 철학자들은 아카이브를 통해 시대를 앞서 기억과 기록의 본질, 권력과 지식의 상호성,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탐구했다. 여기에서는 대표적인 몇 가지 철학자와 개념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0세기 초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세계대전과 함께 엄청난 변화와 상실을 겪는 와중인 유럽에서 활동했는데, 당시는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시각매체가 등장하면서 아카이브가 확장된 시기였다. 대중매체가 발전하면서 과거를 보존하고 재구성하는 아카이브 방식에 있어 혁신을 가져오게 되었고, 이는 개인뿐 아니라 집단의 기억에도 영향을 주었다. 벤야민은 아카이브가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는 것을 넘어서 현재와 소통하는 매개체라고 보았다.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 사람들은 기억을 보존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졌고, 상실에 대한 보상 심리로 아카이브를 통해 미래와 연결되고자 하는 시대적인 욕망이 대중매체의 발달과 맞물렸다는 것이다. 또한 벤야민은 과거의 잔재(아카이브)가 해석과 재구성을 통해서 끊임없는 의미 변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가 구조적 변화를 겪는 격변기에 정보(지식)가 권력의 주요한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정부와 공공기관이 지식을 통제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정황을 포착했다. 푸코는 아카이브와 같은 지식 체계가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넘어서서 권력의 도구로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아카이브는 지식과 권력이 결합된 ‘공간’이며 무엇이 기록되고 지워질지 결정하는 ‘힘’이 작동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할 포스터의 글 “An Archival Impulse(아카이브 충동)”(1995)은 이후 예술 아카이브 논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논의는, 19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면서 전 통적인 기억과 기록의 방식이 해체되고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와 기록이 이전과 다른 형태로 자리잡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아카이브를 예술과 창작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며, 예술가들이 아카이브를 통해서 과거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사례를 분석했다. ‘아카이브 충동’에는 예술가가 단순히 아카이브를 과거의 보존 장소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재구성하고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새로운 공간으로 인식한다는 관점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기억과 기록이 예술가의 주관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강조했으며, 예술로 인해서 과거와 현재가 통합되고 의미가 다양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Archive Fever(아카이브 열병)”(1996)을 쓴 시기는 정보와 기록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기였다. 이제 기록 보존은 단순히 종이문서나 물리적 매체에 제한되지 않았으며, 디지털 변환으로 인해 정보 저장의 형태가 급격히 달라졌다. 데리다는 디지털 아카이브가 사회의 기억과 기록을 강박적으로 저장하려는 집착을 강화한다고 보고, 인간이 시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자 하는 욕구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아카이브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장소가 아니라, 권력을 실행하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주장했다. 기록의 선별과 폐기는 승리한 권력의 선택에 의해 행사되며, 이러한 점 때문에 아카이브에는 진리를 왜곡하거나 재구성하는 가능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간단하게 정리했지만, 이들의 이론을 들여다보면 훨씬 치밀하게 자신이 처한 사회적, 시대적 배경 안에서 아카이브의 역할과 한계에 관해 파고들었다. 철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아카이브가 사회의 역학 관계를 비추어주는 거대한 거울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주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 지금 우리에게 아카이브가 의미하는게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처럼 막연해진다. 마치 어려운 말을 하는 철학자들의 머릿속이 안드로메다에 있는 것처럼. 그렇지만 그 일이야말로 지금 순간에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지난 시기에 공공기록 중심으로 기록의 생산부터 보존까지 절차적 투명성을 보장하는 일이 사명이었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계속 그러한 입장을 가장 큰 목표로 견지해야 하는걸까? 아니면, 이제는 방법과 형식을 새로이 교체해야 할 때가 된 것일까?
무엇보다 최근 해결책이 없는 감정적 토로와 소모적인 논쟁으로 인해 슬슬 염증을 느끼게 될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공동체에 대해서 이만큼 애정과 관심이 있는 분야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소통의 장이 없다는 이야기도,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이미 10년 전부터 변함 없는 문제제기라면, 문제 자체도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이제 순수하게 기록을 사랑하는 세대는 지나갔다. 새로운 세대는 냉정하리만치 필요에 의해서 기록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어떤 교육과 업무 환경을 내어줄 수 있을까? 이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왜 아카이브는 점점 더 각광받는가? 이 기회를 어떻게 하면 더 끌어올릴 수가 있을까? 등등. 그리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살아갈 시대의 아카이브는 어떤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걸까?
아카이브에 철학이 필요한 궁극적인 이유는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는 방향을 잃었을까?
참고문헌
Benjamin, Walter. Illuminations. Edited by Hannah Arendt, Schocken Books, 1968.
Benjamin, Walter. The Arcades Project.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
Derrida, Jacques. 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Foster, Hal. Art Since 1900: Modernism, Antimodernism, Postmodernism. Thames & Hudson, 2004.
Foster, Hal. The Return of the Real: The Avant-Garde at the End of the Century. MIT Press, 1996.
Foucault, Michel. 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the Prison. Pantheon Books, 1977.
Foucault, Michel. The Archaeology of Knowledge. Pantheon Books,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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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mania
아카이브에 철학이 필요한 궁극적인 이유는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는 방향을 잃었을까? 라고 질문하셨는데 이 문장에 대해 하고 싶은 질문이 있네요 방향을 잃었는가? 라는 의문문은 혹시 '지금까지 지향해 온 방향이 지켜 나가야 할 방향' 이라는 의미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다시말해, 지금까지 아카이브가 지향해 온 방향이 지켜 나가야 할 방향인데 최근 와서 그 방향성이 흐려져 계속 지켜 나가야 할 전통적 방향을 잃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당혹감의 표현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싶은 겁니다. 만약 그런 의미라면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는 철학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은 철학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철학은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지를 끊임없이 묻고 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본령이기 때문입니다. 훔볼트 대학 본관 현관에 붙어 있는 뮨구를 떠 올립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 시키는 것이다.' 해석이 변화와 대립 되는 것으로 이해해서 변화를 위한 실천만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다양한 새로운 해석의 결과로 세계를 변화 시켜 나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말이지요. 본문에서 언급 한 여러 철학자들의 모든 언급은 모두 새로운 실천으로 나아가 변화를 촉발 하는 발판인 셈이지요. 모든 새로운 해석은 새로운 방향 모색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철학은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 한 것이 아니라 지금 가고 있는 방향성을 틀지운 철학과 그 철학에 의해 틀 지워진 현실에서 발생하는 제 문제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해석을 통해 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있다고 해야 겠지요. 따라서 글에서 진단하고 있는 '최근 해결책이 없는 (아카이브에 대한) 감정적 토로와 소모적인 논쟁' 은 방향을 잃어서라기 보다는 기존 방향을 지탱해 오던 세계에 대한 해석과 이에서 비롯되는 세계관을 해체하고자 하는 새로운 방향과 세계관의 모색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 할 수 밖에 없는 창조적 카오스 단계에 진입하는 매우 건설적인 모습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미 기존의 해석 틀로서는 담을 수 없는 현실의 변화를 직시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도지슨
깊이 생각하고 남겨 주신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 지금 시점에 아카이브의 방향에 관해 가늠해야 한다는 관점에 대해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해결책이 없는 감정적 토로와 소모적인 논쟁'에 대해서는 좀더 부연을 하고 싶네요. shomania님께서 언급하셨듯이 변화에 앞서 우리는 엄청난 지각변동을 맞이합니다. 그러한 와중에도 세상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은 그것을 직시하고 건설적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와 행동 때문이겠지요. 혼돈 속에서만 머문다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기록계의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불만이나 갈등이 누적되고 있습니다. 불편을 토로하는 일은 그만큼 힘든 환경에 오래토록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갈등이 생기는 것 자체도 저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변화를 위한 문제 제기는 긍정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제를 제기한 이후에 어느 때에 이르러서는 실천적인 영역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물어야 할텐데, 저는 이 답 없는 질문에 대해 철학에 묻고자 합니다. 어쩌면 혼돈 속에서는 근본으로 돌아가는 철학이 답을 내려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질문에 조금은 무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글을 쓰다보니 철학은 참 현실과 동떨어진 것만 같이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카이브의 이론이 결국은 현실화의 발판이 되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글이 그러한 설명에는 미진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편으론,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대해 고찰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과 철학에 관한 논의는 아마 영영 명쾌해질 수는 없는터라, 내내 저는 마음 속을 헤매며 고심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논의를 좀 더 확장할 수 있게 될 때에는 좀더 정제된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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