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님의 첫 번째 글입니다.
1. WISEArchive?
WISE가 내가 알고 있는 ‘현명한, 지혜로운, 슬기로운’이란 의미가 맞나? 대문자로 쓰여진 걸 보니 약어인가? 내가 알고 있는 뜻이 맞다면 현명함을, 지혜로움을, 슬기로움을 어떻게 아카이빙한다는 말이지 의아했다.
WISEArchive의 첫 화면에 나오는 첫 문장으로 대략 “WISEArchive는 은퇴한 사람이나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 모두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회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믿으며, 미래 세대를 위해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하는 지식과 경험의 귀중한 원천이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은퇴한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귀중하게 여기고 후대를 위해 기록되고 보존해야 한다는 지점에서 직장 내 나이 든 상급자나 은퇴한 사람들을 꼰대로 여기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직장을 다니며 일상을 살아가는 소소한 사람들의 삶, 그런 삶을 먼저 살아간 사람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귀중하게 여기고 “WISE”라는 가치를 부여하여 아카이브를 만든 영국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몇 년 전 프로젝트하면서 만났던 시민단체 활동가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선배 활동가들은 투쟁이나 활동의 경험이 풍부해서 관련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사건의 경과 등도 잘 알지만 신규 활동가들은 어떤 사건이나 사안의 경과를 문서로 파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선배들의 생생한 경험이나 노하우가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구전되어 전해졌으나 오늘날은 그런 경우가 드물단다. 신규 활동가들은 자료나 문서를 찾기만 할 뿐 선배들에게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이 조금은 불만이라고 했다. 때로는 문서가 알려주는 사실이나 정보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 같아 아쉽다.
문서가 미처 다 담지 못하는 생생한 현장의 모습과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이 경험과 노하우. 이런 면에서 WISEArchive는 나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2. WISEArchive를 소개합니다.
노퍽(Norfolk)은 영국 잉글랜드 동부의 카운티로 동부 지역은 토지가 비옥하고 삼림이 많으나, 서부 지역은 습지대로 자주 홍수의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노퍽은 18세기 유럽의 신농법이 도입된 곳으로 보리, 사탕무, 소, 양, 칠면조 등을 키우는 농목업이 주를 이루고, 공업은 전통적으로 목직, 견직 공업이 성한 곳이다.
2005년 온라인 아카이브로 시작된 WISEArchive는 주로 노퍽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술을 통해 아카이빙하고 있다. 농업, 비즈니스, 성직자, 병원, 엔지니어링, 금융, 지방정부, 의료, 인쇄, 사회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아카이브는 ‘열정적인’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된다.
또한 펀딩 등을 통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하고 그 결과물들을 책자 형태로 출판하기도 한다. 특히 <Water, Mills and Marshes project>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100개의 이야기가 기록되었고 동일한 제목으로 책자를 출판하였다. 내용은 주로 습지에서의 삶과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제분소 복원, 습지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일과 활동 등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서부 지역이 습지대라는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카이브는 키워드 검색, 카테고리 검색을 통해 노퍽의 사람들이 가진 연륜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서비스하고 있다. 검색을 하지 않더라도 홈페이지 화면 오른편에 아카이브가 카테고리별로 정리되어 있어 관심있는 분야를 클릭하여 해당 스토리를 바로 보고 들을 수 있다.
아카이브의 스토리들은 주로 텍스트로 이루어져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오디오클립을 포함하고 있어 구술자의 생생한 목소리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아카이브의 주요 기록이 구술기록인 만큼 노퍽공공기록관(https://www.archives.norfolk.gov.uk/)의 사운드 아카이브와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아카이브의 구성이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WISEArchive”로 가서 그들과 직접 만나보시기를....
3. 미래에는 직업박물관이 될지도...
예전에 미래에 사라질 직업에 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직업의 흥망성쇠 주기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을 대신하는 로봇과, AI와 일자리를 두고 경쟁을 하는 듯 하다. 기름을 넣으려고 들어간 주유소엔 셀프주유기가 자리잡고 있고, 대형마트에는 한 사람의 캐셔가 일할 자리에 대여섯대의 셀프계산대가 들어서 있다. 햄버거나 커피를 주문할 때도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곳이 점점 늘어간다.
몇 해 전 강원도 한 식당에서 사람대신 서빙하는 로봇을 보고 신기해하던 생각도 난다. 사람들 대신 일하는 로봇들, 그로 인해 사라지는 직업들을 보며 사람 사이의 정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로봇에게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WISEArchive는 사회에 중요한 공헌을 한 직장인들의 귀중한 원천인 지식과 경험을 아카이빙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라진 혹은 사라질 직업을 아카이빙하는 점에서도 가치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WISEArchive는 먼 훗날 직업박물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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