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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테이프: 역사, 번문욕례, 그리고 문화 상품

2024.05.31 | 조회 1.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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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드리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금지, 위험, 투쟁, 열정, 더위… 빨강이라는 색의 상징을 잠깐만 떠올려 봐도 다양한 추상적 개념들이 등장한다. 무의식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 고명도/고채도로 시인성 또한 높아 생후 먼저 인식하는 색 중 하나가 빨강이기도 하다. 중세 이후부터 유럽에서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귀족의 색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자연(동·식물)으로부터 그 색을 얻기 위한 공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염료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빨강은 용기, 저항 등의 의미가 더해지며 다양한 이념 운동에 쓰이게 되기도 한다. (송미경, 2021)

   난데없는 이 레드 타령은 미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이하 NARA)의 NATIONAL ARCHIVES STORE에서 판매하는 red tape collection 상품에서 시작한다.

미국 남북 전쟁이 끝날 무렵, 중요한 문서를 빨간 리본으로 묶는 관행은 서구 전역에서 일반화되었습니다. 남북 전쟁 참전 용사들의 기록 또한 빨간 리본으로 묶여 있었으며, 이들이 연금 청구를 위해 기록을 획득하기 위한 어려움은 현대 미국 사회에서 "레드 테이프"라는 용어를 사용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NATIONAL ARCHIVES STORE
 red tape collection 상품(이미지 출처 : NARA NATIONAL ARCHIVES STORE)
 red tape collection 상품(이미지 출처 : NARA NATIONAL ARCHIVES STORE)

   레드 테이프가 묶인 남북 전쟁 시대의 실제 채권부터, 문진, 그리고 도대체 이건 누가 살까 싶은 장신구까지. 이 다양한 문화 상품에 적용된 레드 테이프는 실제 NARA의 기록물을 묶고 있던 그것이다. 

 

레드 테이프의 역사

   레드 테이프의 기원을 16세기 초 카를로스 5세의 스페인 기록 보존 관행에서 유래됐다고 보기도 하지만 (Roxanne Scott, 2016 / Del Dickson, 2015) 11세기 영국 서기들이 공식 문서 주위에 리본을 감고 끝을 녹인 밀랍으로 봉인했다는 주장도 있다. (Rachel Bartgis, 2023) 그 시작이 어떻든 식민지 통치를 통해 이러한 방법이 전파되어 17, 18세기에는 서부 유럽이, 19세기에는 미국 및 캐나다까지 확산된 것이라 추측된다.  사실 테이프라고 부르기엔 접착 면이 없고 실상은 끈이나 리본에 가깝다. 

(이미지 출처 : NARA)
(이미지 출처 : NARA)

   영국 The National Archives의 목록 기술에 "One bundle of documents, loosely tied with red tape and including a letter from Robert"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의 경우 전쟁 중에도 문서의 작성자 요약과 주요 통신 내용 등을 날짜 순서에 따라 잘 보이게 레드 테이프와 함께 정리하기도 했다. (US War Departments, 1876) 1864년 US War Departments는 154마일(247 km), 1943년 미국 재무부는 123마일(197 km)의 레드 테이프를 구매한 기록이 남아 있으니 전 세계적으로 사용된 양은 어마어마할 것이고 그 많은 양의 빨간 테이프가 수많은 아카이브와 함께 NARA에 잠자고 있다. 이는 비단 NARA뿐 아니라 영국, 캐나다 등의 영구기록물관리기관에서 소장품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More Red Tape, Please - Researchers Help - History Hub)
(이미지 출처 : More Red Tape, Please - Researchers Help - History Hub)

 

번문욕례(繁文縟禮)

   각종 언론과 학술 논문 등에서 레드 테이프를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관료적 형식주의, 관료 형식주의, 불필요한 형식 절차, 불필요한 요식, 번문욕례, 까다로운 절차, 불필요한 행정절차, 불필요한 형식절차, 과도한 행정절차 등. 정리하면 '까다롭고/불필요하고/과도한' '절차/요식 행위'가 되겠다. 행정학에서는 그냥 '레드 테이프'라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동석, 2010) 경제학이나 행정학에서는 이 용어를 다양하게 정의하고 분류하는데 여기서는 그걸 논외로 하고 우리는 이 용어가 과거 기록물을 묶고 있던 빨간 끈에서 왔다는 것에 더 주목해 보자. 

   레드 테이프는 형식적인 면에 얽매여서 비합리적 모습을 보이는 걸 의미한다. (정선학, 2018) 보통 과도하거나 무의미한 서류 작업, 높은 수준의 형식 절차, 불필요한 규칙이나 규제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로 인한 좌절과 분노까지를 내포하는 개념이다. 관료제의 거의 모든 상상 가능한 폐해를 포괄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미국과 캐나다에는 Ministry of Red Tape Reduction과 같은 조직이 있다. 영국의 경우 'Red Tape Challenge'라는 규제 완화 정책을 통해 3,095개의 규제를 없애고 경제적 불황을 극복하고자 한다. 물론 레드 테이프의 순기능을 일정 부분 인정하기 위해 '화이트 테이프', '그린 테이프'라는 개념도 등장하지만 여기서 또 그건 논외로 한다. 상술한 NATIONAL ARCHIVES STORE에서 볼 수 있듯이 공문서를 관료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고 그러한 기록물을 묶고 있던 끈 자체가 이러한 개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이런 측면에서 1997년 NARA의 기념품 상점에서 이 레드 테이프 조각을 5달러에 판매하기 시작한 건 여러 의미를 가진다. 

 

문화 상품으로 소비하기

   2023년 1월 16일 자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는 제목이 곧 내용이다. (They're getting rid of 'red tape' in Washington. Literally.) NATIONAL ARCHIVES STORE를 통해 레드 테이프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정부의 복잡한 절차를 제거하는 작업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 문서를 묶고 있던 테이프 조각을 판매하는 데서 더 나아가 2015년부터는 현재의 가공된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종이 문진을 제외한 모든 아이템을 만든 예술가 케빈 클라크(Kevin Clarke)는 "누군가가 만지고 사용했던 오래된 역사의 조각을 다루는 것이 정말 좋았다"며, "그것이 지나온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 멋졌다"고 말했다. (Danny Freedman, 2023) 기사는 레드 테이프가 있다는 것은 문서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기록에 접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레드 테이프를 제거할 수밖에 없다.

 

   레드 테이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것이 단순히 불필요한 관료적 절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레드 테이프는 중요한 문서를 보호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변질되어 현재는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고 그 본래 목적과 기능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물론 레드 테이프 그 자체가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NARA의 NATIONAL ARCHIVES STORES에서 판매되는 레드 테이프 컬렉션은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현대 기록 관리의 중요성과 가치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현재 레드 테이프라는 용어의 부정적 사용은 대다수가 공공기록, 공문서에 가지는 이미지일 수 있다.  따라서 NARA가 레드 테이프를 독특한 방식으로 제거하고 이를 국민이 소비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은 이러한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는 시도 중 하나일 것이다. 

 

송미경 (2021). 왜 주인공은 항상 ‘빨간색’일까?. 나침반 36.5도.

Roxanne Scott (2016). Where Does The Phrase 'Red Tape' Come From?. LOUISVILLE PUBLIC MEDIA. (https://www.lpm.org/news/2016-07-07/where-does-the-phrase-red-tape-come-from)

Del Dickson (2015). The People's Government: An Introduction to Democrac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Rachel Bartgis (2023). Holding It Together: Binding and Presenting Official Documents since Early America. Brewminate. (Holding It Together: Binding and Presenting Official Documents since Early America - Brewminate: A Bold Blend of News and Ideas)

United States War Department (1876). Instructions for Keeping the Records and Transacting the Clerical Business of the War Department. Washington, Govt. Print. Off. 

Danny Freedman (2023). They're getting rid of 'red tape' in Washington. Literally. The Washington Post. (https://www.washingtonpost.com/magazine/2023/01/16/red-tape-in-washington/)

하동석 (2010). 이해하기 쉽게 쓴 행정학용어사전. 서울: 새정보미디어. 

정선학 (2018). 레드테이프Red Tape 현상. 유레카. 

Barry Bozeman (1993). A Theory of Government "Red Tape”. Journal of Public Administration Research and Theory, 3(3).

서일범, 곽윤아 (2022). 3095개 규제 깬 英 '레드테이프 챌린지'…100년 불황도 넘었다.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65TRWEH7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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