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예술레터

방치의 서클

그런 때는 없다. 결핍은 결핍을 부른다.

2024.02.06 | 조회 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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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예술

가부장제에서 막 빠져나온 여성이 자신만의 여성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지금까지와 다른 구성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시도

"태어나는 일은 언제나 어렵죠. 당신도 알죠. 새는 알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애쓴다는 걸.
돌이켜 물어보세요. 길이 그토록 어려웠던가? 오직 어렵기만 했던가? 
아름답기도 하지 않았던가? 당신은 그보다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 수 있었을까요?"

데미안/ 헤르만 헤세

 

어느날, 일상의 창에 예기치 못한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쨍그랑, 혹은 와장창! 깨진 조각들이 당신의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당신의 온몸은 바짝 긴장한다. 몸의 중심부가 수축하고 숨은 짧아진다. 당신의 발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얼어붙었는가? 빠르게 다가가 창 밖을 살피고 있는가? 어떤 움직임을 하고 있든 당신의 몸은 반응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모든 감각의 날을 세운다. 문제! 문제가 날아든 것이다. 일상의 창이 부서졌다. 삶이 하나의 문제로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혼한다면 어떨 것 같아? 아이들을 다 키워줄 수 있어? 두 아이를 키우면서 당신에 대한 감정이 사라졌어. 우리 사랑을 지키지 못한 내가 미안해. 그런데 나는 사랑없이 결혼이란 제도를 유지할 이유를 못느끼겠어." 그 말을 처음 들었던 날, 사랑으로 맺어진 아빠(남편)+엄마(아내), 사랑으로 태어난 아들+딸, 사랑스런 4인 가족이라는 그림이 찢어졌다. 돌멩이가 날아든 것이다. 그 돌멩이는 아빠(남편)를 X로 일그러뜨리며 구멍을 냈다. 그런데 그 당시에 구멍난 X는 남편이었나, 아이들의 아빠였던가.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돌멩이는 누가 던졌을까?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 였던 그가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삶의 흐름이 나에게 그런 방식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가부장제라는 사회가 연출한 안전한 토대 위에 세운 가족이란 이야기 밖으로 나가보라고, 더 자유로운 삶의 방식이 있다고, 실은 너에게도 그 구조가 가진 그림자가 커지고 있지 않냐고. 그러나 나는 기꺼이 귀기울일 수 없었다. 나는 얼어붙었다. 움켜잡았다. 매달렸다. 웅크렸다. 발악했다. 그리고 나는 분열했다. ‘사랑없는 가정에서 살 수 없어.’ -당신한테 받은 사랑이 준 깊은 충족감, 그 수용과 지지가 내 삶의 전부였는데, 당신에게 내 전부를 열어 사랑을 주는 기쁨, 그 무한한 친밀감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어. 그 느낌이 주는 충만감을 아는데, 그 결핍 속에서 어떻게 살아. ‘ 혼자서 아이 둘을 다 키울 수도 없어.’ -우린 부모잖아. 공동 책임이 있잖아. 불공평해! 네가 책임을 안 지겠다면 나도 안해! 그럴거면 니가 다 떠안아! 자유와 사랑을 원한다고 이 가정을 깰 거라면 그 자유와 사랑 둘 다 못 갖게 해주지! 최선을 다해 가정을 가꾸는데 헌신해 왔는데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해. 억울해, 복수하고 싶어! ‘아이들을 잠깐씩 보며 혼자 살 수도 없어.' - 생명은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야, 이 두 생명을 키우는 일보다 나의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누리는 일을 과연 내가 선택 할 수 있을까. 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유를 느끼는게 가당키나 할까. 아이들의 곁에 충분히 있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랑과 돌봄에 대한 책임 회피, 난 도저히 못해. 그것은 완전한 혼돈,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돌아보니 날아든 돌멩이는 어느새 절벽이 되어 있었다. 절벽 위에 선 작은 나는 되뇌었다. ‘내 삶에 문제가 생겼어! 극심한 문제…….’ 그 때, 방치의 서클이 시작됐다. 방치의 대상은 명확했다. 자기돌봄. 방치의 영역은 휴식과 이완, 연민과 보살핌, 연결과 지지, 놀이와 축하까지 점점 확장 되어가는 한편, 아이들의 정서적 안전을 지키려는 노력은 하루의 목표이며 전부가 되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그 때는 울어도 돼.’ 자녀돌봄이 끝난 바로 그 자리에서만 울리라고 마음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자기 돌봄을 방치하는 방식은 자녀 돌봄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내 감정의 문제들을 자녀돌봄이 끝난 자리로 미루어두던 시절, 낮의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나는 가끔씩 멍해졌다. 잠시, 여기 아닌 어딘가로 사라지는 찰나. 그러면 어김없이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아이들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엄마, 내 얘기 들었어?” “엄마, 나 좀 봐바.” 보드랍고 촉촉한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고 지금, 여기, 이 순간으로 나를 초대하는 것이었다. 엄마, 우리는 엄마를 고생 시키러 온 존재가 아니에요. 엄마가 고생 하기를 원하지 않아요. 나는 이 삶에서 엄마랑 함께 자유롭고 싶어요. 엄마와 함께 놀고 싶어요. 함께 행복하고 싶어요. 함께 여기에 있고 싶어요. 존재하고 싶어요. 그래, 애초에 나를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돌볼 수 있단 말인가. 자기돌봄을 미루고 누락 하며 자녀돌봄에 헌신하는 일은 건강한 방식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주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불만족을 표현한다. '깨어나요, 엄마! 알아차려요! 엄마.' 결핍은 결국 결핍을 부른다. 그렇다. 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서 아이들을 충족시키는 사랑과 돌봄은 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를 방치하지 않는다. 나는 ( )을 방치하지 않는다. 지금 당신에게 이 문장을 비추어보라. 어떤 단어들이 보이는가. 당신은 무엇을 방치하고 있는가? 왜 방치하고 있는가. 내 삶에 이혼이라는 돌멩이가 날아 들었을 때, 나는 자기돌봄을 방치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내 어머니에게서 목격한 방식이었다. “엄마가, 아빠랑 이혼 했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빠랑 왜 결혼한 거에요?” 내가 사춘기 즈음 일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어머니는 하지 못한 이혼을 결국 나는 하게 되었구나. 결혼졸업이라는 다른 선택으로. 내 어머니의 방식이었고 이전 세대 어머니들이 강요받았던 방식이며 내가 제일 먼저 선택했던 방치의 서클 안을 들여다 본다. 그 안으로 돌멩이가 날아 들어 높은 절벽으로 자라나 그 위에 작은 나를 세웠다. 작은 나의 시선은 좁아진다. 내 삶에서 잃어버린 것, 없는 것만을 보고 있다. 그 결핍의 시선이 방치의 서클, 중심에 있다. ‘일단 이 문제를 이해하고, 일단 이 문제를 해결하고, 일단 이 문제가 사라지면’이란 생존 사고, 결핍의식이 자기돌봄을 누락하고 미루며 방치하게 한다. 그러나 문제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일도 문제가 사라지는 일도 문제가 해결되는 일도 쉬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때는 없다. 그렇게 일상을 문제 해결의 순간이라는 막연한 미래로 언제까지고 미뤄둘 수는 없었다. 현재라는 일상을 다시 찾아야 했다. 그러려면 방치의 서클, 이전 세대부터 이어진 결핍의 알을 깨고 나와야 했다. 알을 깨기로 결심한 날, 나는 찬공기를 맞으며 새벽을 달렸다. 그리고 나에게 외쳤다. "깨어 있어! 잃은 것에 슬퍼 하느라, 있는 것을 잃을 순 없잖아." 나에겐 아이들과 삶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소중하고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다. 지금 여기의 삶과 아이들의 미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의 플랜 B(Being)가 시작됐다.

 

 

 

To. 모두 다 돌봄예술가!

2월의 레터는 *결혼졸업과 *방치의 서클이 되었네요. 가능한 격주!라는 간격은 매우 변동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삶의 흐름이 허락한 시간 내에 이야기가 풀어지는 리듬에 맞춰 의도와 즉흥의 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함께 지켜봐주세요. 

저는 설에 원가족과 결혼졸업 후의 가정 모두와 함께 할 예정입니다. 지금, 여기 제가 있는 곳에서 존재하며 축하와 축복의 시간들을 보낼 예정입니다. 

최근 아이들과 함께 휴식하며 싱어게인3를 즐겁게 봤습니다.  개성이 빛나는 가수분들 덕분에 울고 감탄했습니다. 그 중 매 무대, 찬란한 위로와 감동을 선물해주신 소수빈 가수님은 인생의 고비가 된 순간으로 어린시절 사고로 오른손 검지가 짧아진 사건을 꼽았습니다.

"아직 4개의 손가락이 남았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주 할 때는 검지를 접고 연주를 한다" 그의 이러한 관점이 삶을 통과한 연주와 노래는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사연이 담긴 영상 링크와 음악만 들을 수 있는 유튜브 링크를 함께 보내드립니다. 

3월에 다시 만나요. 🙏

🎧 소수빈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소수빈/가잖아

From.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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