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다시 찾아 온 《오토포이에틱 시티》 입니다.
《오토포이에틱 시티》는 지속 가능한 성장과 순환의 도시 포항의 내재된 힘을 확인하고, ‘영일만 아트앤테크 문화 클러스터’에서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융합으로 발현될 포항의 창발적 재생 역량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 2023년 12월 18일
📝 9호. 포항이 길러낸 기술자들의 ‘아끼기’ 프로젝트
자기 발현, 자기 생산하는 창발자들
전시 오픈을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노곤한 몸을 가누기 힘들어, 영화를 다운받아 보며 쉬었습니다. ‘오펜하이머’를 이제야 봤죠. 마치 파국적 인류세의 프리퀄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 숨 가쁜 편집과 긴장을 결코 늦추게 두질 않는 음악, 토할 것 같은 윤리의 모습. 힘들더군요.
비슷합니다. 오늘날의 인구 소멸과 공업 도시 혹은 근대 도시의 전환에 있어 ‘재생’을 논하는 것은 사실상 전쟁에 준하는 생명 투쟁이 아니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은 ‘무기’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술적 감각을 나누며 그로부터 촉발되는 공통감각을 모아내어 무엇인가를 하고, 그것이 문화가 되어, 지역과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에 과학자와 예술가와 기술자들이 모이고, 뭔가를 계속하게 하는 플랫폼이 ‘클러스터’라는 것이며, 여기에 ‘정치’는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노골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지원’하고 ‘환경을 조성’하는 보호의 역할에 충실하려한다는 점은 매우 다른 점이죠.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일은 이미 벌어진 사태인 인류세의 파국성을 조절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사람 자체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것도 있습니다. 변화와 전환과 함께함에 있어서요. 사람 몸의 노동 역할을 되살려낸다는 점입니다. ‘노동’이란 말은 몸의 노동을 말합니다. 그것은 ‘일 work’, ‘직업 job’, 그런 것과 달리 생명을 가진 존재가 그 존재성을 키워내는 자기 발현과 자기 생산 과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식물이 온 힘을 다하여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것도 그 식물의 자기 발현이자 자기 생산 노동인 것이죠. 열정, 최선, 노력, 그런 말로는 부족한 어떤 지점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노동’이라는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차원의, 생명의 자기 발현과 자기 생산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어떤 노동의 양태를 볼까요? 아낌입니다. 아끼다는 '절약하다'라는 뜻과 '산뜻하게 사랑하고 예뻐하며 고이 간직하다'라는 뜻도 있겠죠. 그 둘을 모두 말합니다. 그리고 그 아끼기가 발현되는 초롱초롱한 눈들의, 해내고야 마는 끈기라는 기술을 지켜봅니다.
포항에서 자기 발현과 자기 생산의 노동을 해내고 있는 기술자, 예술가들은 말 그대로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내는 창발자들입니다.
공업도시 포항과 포스코, 그리고 명장 🏭
대중에 보이는 공업도시 포항에는 결과물이 강조되지만, 그들이 고유의 기술을 습득하고 체득하고 발현시켜 온 과정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큐레토리얼 팀은 이 과정 자체에 주목했습니다. 포항의 기술자들 중, 포스코의 김공영(스틸제강부)과 이영진(제강부)을 만났습니다. 이분들 기술의 핵심은 ‘취련'으로, 제품의 품질은 높이고 원가를 낮추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품질이라는 용어가 다소 산업용어처럼 들리실 터인데요, ‘물질의 순도’라고 바꿔 말해볼까요. 아마 철강 제품의 순도를 높여서 강도, 지속력, 미관 등 여러 방면에서 물질의 산업적 가치를 드높임과 동시에, 신생 물질의 페티시적 미감과 질감을 정련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경험치에서 데이터로
제강부 이영진 명장과 스틸제강부 김공영 명장은 1987년 입사한 포항제철고 동기로, 37년이라는 긴 시간을 포스코에서 보냈습니다. 공정 과정에서 온도, 공기 양 등을 사람이 계산하고 가늠하던 시절부터, AI와 컴퓨터 기술을 통해 극도로 단순화되고 기계화된 현재까지의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본 당사자입니다. 사람(경험치)에서 기계(데이터, 카메라)로의 변천사의 산 증인인 셈입니다.
물론 기계와 기술이 공정 과정에서 오류를 줄이고, 설비 이상 여부까지를 체크해낸다고 하지만, 기술 발전에는 사람이 이론, 통계 수치를 아는 과정이 필요조건입니다. 예컨대, 쇳물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취련사들은 옛날에는 취련 장표를 썼다고 합니다. 이는 원료, 산소, 냉각제, 탄소 등 성분을 기록하고 계산하는 표인데요. 생산이 적은 공장도 하루에 최소 20여장이 나오기 때문에, 이를 모으면 1년에 몇 만장은 가볍게 넘겼다고 합니다. 명장님들은 이를 매일 복기하며 공부하셨다고 합니다.
산업도시의 쇠락과 재생
도시 재생이 왜 포항에서 중요할까요. 사실상 포스코와 포항의 관계가 여기서 핵심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근대라는 시기, 즉 인류세의 파국성(지구 환경의 지속 가능성의 파괴)이 가속화된 시기 생겨나고 흥했던 ‘공업 도시’들은 1980년대 경부터 빠르게 쇠락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소 냉전에서부터 신자유주의로의 세계 질서가 재편되었고,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 2000년대 미국 중심의 세계 금융위기, 지속되는 에너지 전쟁이 이어졌고 급기야 인류세의 종언적 선언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산업혁명과 세계대전과 금융자본주의와 (어쩌면) 디지털 휴머니티의 세계는 어쩌면 말 그대로 ‘체인리엑션’인 셈이죠.
공업도시였다가 쇠락한 북반구(글로벌 북반구, 소위 선진국)의 도시만 해도 상당합니다. 1911년 미국 전체 소비량의 절반에 달할 만큼의 철강 제품을 생산한 피츠버그(Pittsburgh), 인구 약 56만의 포항과 비슷한 규모의 셰필드(Sheffield), 독일 루르 지방 최초의 제철소가 자리 잡았던 오버하우젠(Oberhausen) 등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들은 대부분의 산업도시들처럼 1970년대 후반쯤 경쟁력을 잃었고, 일자리 감소, 도시 인구 유출, 폐시설 등 고질적인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도, 이러한 구. 산업도시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그에 대응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꾸준히 환경, 문화, 역사 등 다양한 키워드를 기반으로 도시 재생을 꾀했고, 마침내 성공적인 예시가 되었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해양 그랜드마리오네트 거점 구축을 위해 도시재생의 주요 사례로 참고한 라 머신(La Machine)의 거점 중 하나인 낭트(Nantes)도 있습니다. 이번 해양 그랜드 마리오네트 프로젝트에서는 철공업 도시였다가 쇠퇴한 프랑스 낭트의 창조 지구 사례를 참조했습니다. ‘라 머신 창조지구’는 대규모 시민 행렬을 모아내는 거대 움직이는 예술 작품을 제작하고 관리하는 문화 지구로서, 낭트의 문화 산업을 주도하는 예술가와 기술자들이 비영리 단체를 말합니다. 포항이 낭트 사례를 참고한 이유는, 문화 산업 생태계 형성이라는 과정이 수십 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려 서서히 이뤄지는 것이며, 그러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 자체가 도시를 진정으로 살리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후 포항은 한-불 공동 제작팀으로 구성된 ‘아트앤테크 랩’과 낭트의 ‘라 머신 창조지구’와의 기술적, 예술적 교류를 추진하고 지원했습니다.
포항의 도시 재생과 <포항 i>
그러나 현재 도시재생의 목표는 1990년대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적 맥락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포스코라는 기업 그 자체가 자기 회사의 기술자들을 격려하고 독려하며 실천하는 ‘아끼기’ 또한 이러한 점에서 마음에 큰 반향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포항의 시민들도 삶의 터전인 포항을 아끼고, 아끼며 다시 삶을 부활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포항 i>를 만든 예+기술 노동자들을 살펴볼까요. 포항 아트엔테크 랩은 포항 송도-동빈항 지역이라는 기존 철공소와 조선소가 있는 지역에 있는 한 가건물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랩'이라는 작업실(철공소와 마찬가지인 일터)은 국적을 막론하고, 기존 전문 업종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기술을 ‘배워 터득할 수 있는‘ 곳이었죠. 실제로 제작 감독 안효찬은 포항이 낳은, 조각을 중심으로 한 설치 미술 작가입니다. 항상 관객과의 직접적 소통과 감각적 만남을 강조해 왔죠. 항상 겸손한 듯 말수가 적은 작가이지만, 관객과 화끈한 만남을 위한 돌직구 적 작업에 매진하는 안효찬 작가의 작업 태도를 보면, 그 몰입감이 대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올해는 대학생도 참여했습니다. 포항이 고향이며 지금은 타지 대학에서 조소과에 재학중입니다. 김동석과 주민규는 프로젝트 내내 조용한 활기를 팀에 불어 넣어 줬습니다. 짬짬이 그들이 일하는 것을 봤는데요, 역시 작업할때의 몰입감은 학생이건 작가이건 구분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작업에의 몰입과 그것에 최적화되어가는 기술의 몸, 그게 바로 예+기술 노동의 창발의 계기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프랑스에서 온 협업 작가도 궁금하시죠. 작년과 올해 연속해서 참여하고 있는 앙리 갈로 라발레 Henri Gallot-Lavallèe는 1962년 프랑스 르망(Le Mans)에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 다원 예술가로 부를 수 있는 분인데요. 나무, 금속, 수지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작품 제작을 하고 현장에서 작업을 갖고 퍼포먼스를 하시기도 합니다. 특히 움직이는 기계 작품 제작이 전문이시라서요. 하시던 일을 보니, 1979년 프랑스 낭트에서 창단한 극단 로얄 드 뤽스(Royal de Luxe)의 창립멤버이셨다고 합니다. 이곳 로얄 드 뤽스의 그랜드 마리오네트의 기계장치들을 제작한 분이죠. 지금은 프랑스에서 탄호목을 이용한 작품과 거기에서 파생된 물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뱅상 조제프 샤를 Vincent Joseph-Charles은 올해 특수 분야 기술로 참여했습니다. 뱅상은 1978년 파리 근교의 쉬렌(Suresnes)에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청동 조각가 아버지를 도와 청동주물제작을 위한 도구를 만들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하는군요. 하시던 일을 보니, 연극계에서 무대장치를 설치하거나 소품을 제작하셨다고 하며, 영화에서 특수 효과 장치들을 개발하셨다고 합니다. 예술 무대나 영화에 쓰이는 기계와 엔지니어링, 전자에 전문가로 활동해 온 분이시고요, 현재도 예술 문화 산업 분야에서 쓰이는 전자 장치 디자인 프로토타입 제작을 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포항 i>와 i들
포스코의 취련술, 해양 그랜드 마리오네트의 창작술, 이들의 공통점은 사실상 아주 세심한 하나하나의 검증하는 자체 노력과 자기 노동의 과정을 거친다는 점입니다. 이 시간은 짧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멀리 내다보게 하는 잠재성을 키우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 발현적 노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누구라도 ’작가‘가 되어 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즉 포항의 융합 노동 기술의 창발은 이렇듯 단순히 멋진 '작품'만을 만들어 뽐내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작품'이라는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오래 지속함으로써, 그 만드는 주체들 모두가 예+기술적 창발자가 되어간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도시는 자연스럽게 그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그 어떤 자들을 구분치 않고 모두가 행복한 곳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본 제작(품)의 미학에서는 이러한 어떤/모든 시민, 어떤/모든 국적인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작업'이라는 과정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정책'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촉구를 또한 담게 되는 것입니다.
포항이 그간 '문화도시' 성과를 바탕으로 문화 산업 생태계 구축의 단계를 구체적으로 해나가기 위한 단위와 과정을 '문화 클러스터' 구축으로 재명명하고, 그를 위한 정책적 구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문화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실질적 인프라 구축과 시스템 정비를 위한 정책적 지원과 전환의 필요를 실천하기 위해서인데요. ‘영일만 아트앤테크 문화 클러스터’는 창작, 교육, 산업, 그리고 교류와 재생이라는 도시 환경적, 정책적, 시민 사회적 순환을 이뤄내는 포스트 휴먼 도시 플랫폼으로서, 지속 가능한 성장 도시로 시스템을 전환하기 위한 핵심 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항 i>와 그 제작팀, 즉 i들은 이러한 랩, 예술의 형태, 예술과 기술의 결합, 예술로 발현하는 도시 재생 정책이 앞으로 계속 나타나고,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물론 교육, 다른 분야와의 융합과 접목, 교류 등 새로운 형태로 뻗어갈 수 있습니다. 도시 재생에서 결국 사람은 중요한 핵심 인자입니다. 사람 자체도 생명 자체이며, 포스코에서 봤듯이, 그리고 숫자적으로 적지만 마리오네트 팀의 노고에서 봤듯이, 예+기술자들의 정신의, 마음의, 몸의 노동들은 덩어리가 됩니다. 이는 분명한 포항의 맨파워를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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