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라예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실 지난 두 달 간은 캐나다 라이프를 한껏 즐기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어린이가 집 근처 자전거 파크 멤버십을 등록했거든요. 왜 이렇게 내 일상이 메말라가나, 한참 고민하다가 아직은 나 홀로 실컷 돌아다닐 수 없는 환경 때문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 겨울이 이상하게 포근해요.
지구가 정말 많이 아픈가봐요. 이 말을 몇 달째 입에 달고 삽니다.
수십 년, 아니 수백년간 밴쿠버의 겨울은 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으면서 으슬 으슬 추운 기온을 유지해 왔어요. 덕분에 도심에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산꼭대기 위에는 보기에도 좋고 타기에도 좋은(설질이 좋다, 라고 하죠?) 스키장이 3개나 자리잡고 있습니다.
도심에 비가 오면 산 위엔 눈이 내리기 때문에 집에서부터 스키 혹은 스노보드 장비를 풀 장착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흔했답니다. 몇 정거장 안 되는 거리의 스키장 앞 정류장에 내려 곧바로 곤돌라 타고 리프트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는 거여요.
그런데, 이번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비도 덜 오고 날씨도 따뜻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어요. 처음에는 '이러다 다음 주 부터는 비가 좍좍 내리겠지' 하며 곧 떠날 것 같은 아름다운 날씨를 즐기기 바빴는데, 화창한 겨울날이 이어질수록 마음 한 쪽에서 다른 걱정이 스물스물 올라오네요.
우기에 속하는 겨울 내내 비가 덜 내리고, 눈이 덜 쌓이면, 여름까지 이 드넓은 대륙의 산과 숲과 호수들에 필요한 수분 공급이 전체적으로 부족해질 테고, 한여름 되기 전부터 여기 저기 산불이 타오를 테고, 여름은 더 건조하고 뜨거워질 테고, 겨울은 점점 따뜻해질 테고... 작년엔 느닷없이 폭설이 연달아 쏟아져 놀래키더니.
도시 한복판에 살 때보다 대자연 가까이에서 훨씬 절실하게 기후 변화를 느낍니다. 캐나다의 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술' 자체보다는 지속 가능한 기술, 대체 가능한 재료에 몰두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만 같아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의 일상과 주변이 눈에 띄게 변하는 걸 체감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고작 1년 남짓이지만 어린이의 눈에도 편차가 뚜렷한가 봅니다. 학교에서 배운 환경 이야기를 열심히 저에게 설파하는 걸 듣다 보면, 다양성 만큼이나 자연과 생태계가 중요한 이슈인 사회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물론 기승전, 인간이 나빠! 하는 원망으로 끝나는 것에 대해서 아직 좋은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요 😅
🚲 반쪽짜리 자유에 대하여
편지의 시작에 적은 것처럼, 지난 해 마지막 선샤인 코스트 여행을 끝으로 제대로 공원 한번 들판 한번 산책하지 못하고 2월을 맞이했습니다. 1월이 끝나갈 무렵에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임계치에 다다른 게 느껴져 뉴욕의 동료에게 SOS 하기도 했어요. (자정이 다 된 시간에 하세월 통화해 준 내 동료 사랑해)
사실 당시의 저는 일이 차고 넘쳐서,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품을 덜어줄 일손이 모자라서, 제 자신을 120%까지 가동시키느라 회로가 나가기 직전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동료와 통화하면서도 업무 우선순위를 다시 논의했고 큼직한 일들을 재분배 하면서 함께 틈새를 만들었어요.
한결 가볍게 새로운 주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뭘까, 이게 도대체 뭘까 - 그 주말 어린이는 이틀 연속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어요. 남의 집 문 앞에 어린이를 내려주던 둘째 날 오전, 비구름이 물러나는 멀고 넓은 하늘을 보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오래간만에 99번 도로 드라이브나 다녀올까...?
99번 도로는 밴쿠버에 살기 시작한 이래 아직까지 저의 최애 도로입니다. 운전을 하느라 고개를 좌우로 돌릴 수 없어 늘 아쉬움에 비명을 질러요 🏞🏞 (누군가 차에서 촬영한 유튜브 영상) 잠깐 정차해 있던 자리에서 30분 정도만 달리면 바로 99번 도로 입구까지는 보고 돌아올 수 있을 터였죠.
그렇게 휘슬러로, 스쿼미시로, 아름다운 브리티시 콜럼비아 북쪽으로 향하는 99번 도로 경치를 '잠깐만' 보고 오겠다며 서쪽 고속도로에 올라탔는데, 10분도 지나지 않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내가 요즘 대자연을 너무 못 보고 살았구나, 내가 그나마 심호흡하고 지내온 게 전부 대자연 덕분이었는데.
캐나다 대륙의 동쪽 끝부터 서쪽 끝을 연결하는 1번 고속도로는 밴쿠버의 서쪽 끝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99번 도로가 됩니다. 스키장에 눈이 없다며 걱정하던 저는 99번 도로 입구를 통과한지 5분만에 새파란 서해 바다 너머로 어마어마한 설산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울 뻔 했어요, 너무 좋아서.
넋놓고 스쿼미시(밴쿠버 북쪽의 도시, 바위산이 멋진 곳)까지 갈 뻔 했지만 간신히 정신 차리고 30분 드라이브를 끝으로 U턴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벌써 온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도는 거 있죠. 그래서 어린이를 자전거 파크에 너무 자주 데려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루 쯤은 제가 좋아하는 밖으로 나돌아 다니려구요.
저는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자유롭게 접속하고 일할 상황이 되지 못합니다. 어린이를 도시에 홀로 남겨둘 수 없으니까요. '디지털 노마드'가 유행어처럼 떠돌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수많은 시도와 후기를 읽으며 늘 중얼거렸어요, 부모들도 노마드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노마드 시대가 오는 거지, 무슨.
과연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모르겠습니다. 이 순간을 빌어 고백하자면 저는, 시계를 거꾸로 돌려도 사랑하는 내 아기를 반드시 만나는 선택을 할 것이지만, 누구에게도 이 선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거든요. 괜찮다가, 욱하다가, 괜찮다가, 욱하다가, 아직도 그 시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 이번 편지는 유독 글이 길긴 하지만, 그 사이 다른 데 올린 글들도 같이 전해드릴게요. 인스타그램에 스토리 안 올라온다고 걱정해주신 분들! 이제 기력 좀 되찾았고 원인도 발견했으니 다시 자주 올릴 거예요, 제가 보는 풍경, 풍경들.
(브런치) 사람을 찾습니다, 즐길 줄 아는 사람
(페이스북) 어린이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어요
새해에는 우리 서로 다정과 친절을 더 많이 나눌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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