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드디어 첫번째 혼잘여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서도 잘 사는 여성들'이라는 이름이 너무 길어 멋대로 혼잘여라 줄여부르기로 했어요. 더 좋은 생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비혼비출산은 확실히 이상한 짓이죠. 가끔은 한국의 모든 적대적 대상의 교집합에 스스로 기어들어간다고 말하는 게 과장이 아닐 거란 생각도 합니다.
저는 '비혼비출산인'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이 메일을 기획했습니다. '~이 아닌' '~이 싫은'이라는 뜻의 아닐 비(非) 말고, 남성과의 결혼없이, 출산없이 사는 게 기본값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보려고요.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그러니까, 미혼 말고 비혼이요.
첫번째 혼잘여 뉴스레터 요약
- 비혼 비출산 여성만을 다루는 혼잘여 뉴스레터
- '~이 아닌' 말고 '~인' 비혼비출산인(人)
- 여성에게 결혼도 출산도 필수가 아니었다는 놀라운 소식
- 커리어에 '자발적 어머니' 대신 'C-Level' 달기
Theoretically not new, but in reality......
페미니즘 이론은 오래됐는데, 현실에선......
페미니즘은 오래된 이론입니다. 2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최초의 페미니즘 사례는 기원전 3세기에 언급된 기록이 있으며, 최초의 페미니스트는 14세기 프랑스에서 등장했다고 하네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페미니즘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런 제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이번 대선에서 표를 행사하고,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데에는 페미니즘이 크나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압니다. 페미니즘은, '남자를 성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개념에선 너무나 멀리 떨어진 이야기죠. 그렇지만 이마저도 이론적인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의 페미니즘은 작은 조각들로 쪼개져 여기저기서 등장합니다. 주로 '여자는'이 주어일 때, '하마터면 소비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 존중해야한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는 데서 등장하더라고요. "아, 요즘은 (여성에게) 이런 말하면 안되지"라는 식으로요.
'여성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여진 미디어를 매일 방문해보기도 하고, 뉴스레터마다 구독해보기도 했어요. 제 노력이 부족했는지, 비혼비출산 여성이 살아가는 이야기만을 다루는 곳은 보이지 않더라고요. 아직 이들의 서사가 누적되지 않았나봐요. 이렇게 많은 비혼비출산 여성들이 제 주위에 살아숨쉬고 있는데 말이죠.
구독자님께선 아마도 트위터에서 절 보셨으리라 추측해봅니다.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이죠. 월급 받고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K-직장인이요. 빡빡한 청소년기를 지나, 빡빡한 대학생활을 거쳐, 빡빡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여성으로 살아남아 성공적으로 제 손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뜻입니다. 비혼비출산은, 여성이 이런 생활을 정년퇴직이 올 때까지 유지하는 게 '기본'이라는 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했어요. 평범한 내돈내삶의 삶이요.
'비혼비출산'이라는 개념이 조금 더 일상적으로 와닿을 메일 이름을 고민해봤어요. 혼자서도 잘 사는 여성들은 출퇴근길에 창밖을 보면서,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스몰톡을 나누며 이동하는동안, '난 나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인데, 이걸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조금씩 좁혀나가다가 도달한 이름입니다.
사실, 주어를 '나'로 정하면 아주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전 원래부터 결혼할 생각도, 출산할 생각도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너는 왜 (남성과의) 연애에 관심이 없니", "너는 남자들이 딱 좋아할만한 작지도 크지도 않은 키네", "너는 여성스럽게 꾸미면 참 예쁠텐데", "네가 긴머리를 기른 모습이 궁금해, 정말 잘 어울릴텐데", "돈 많은 남성과 소개시켜줄게. 나이는 10살 연상이래", "매대에 올라가있을 때 결혼을 서둘러야하지 않겠니", "요즘은 직장이 있어야 결혼하죠, 어머니", "난 그런 데에 편견없다(레즈비언으로 추정함)".
실제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같은 말을 수백번씩. 전 이 모든 말들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죠. (ㅋㅋㅋ) 시장수요(?)가 있는 젊은 여성이라 당했다는 전설이 있는 성추행까진 언급하지 않을게요. 다시 비혼비출산으로 돌아가볼까요.
여성은 결혼할 필요도, 출산할 필요도, 출산한 아이를 육아할 필요도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이죠. 단지 세상에 태어났더니 랜덤으로 XX 유전자가 배정된 걸 알게된 것뿐입니다.
교과서는 2차 성징으론 어쩌구저쩌구 신체변화가 일어난다고 호들갑 떨던데, 솔직히 제 알 바인가요. 신나게 뜀박질하기 위해 스포츠브라와 생리용품을 쓰는 거죠. 유방과 생식기에 뭘 그렇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요. 신호등 초록불이 깜빡이는데 뛰어야할 때 귀찮기만 해요. 따지고보면 현대에 와선 팔다리같은 존재인데요.
그러니까 저와 구독자님은 결혼하지 않아도, 출산하지 않아도, 출산한 아이를 육아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성1명을 인생에 부착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사는 여성입니다. 이런 수많은 여성들은 앞으로 삶을 공유하며 미래를 그려나가겠죠.
여성 인생의 남성 탈부착은...교과서 속 2차 성징 정보와 마찬가지로 제 알 바가 아닙니다. 성장기에 온 몸의 뼈와 근육이 자라니(치아 제외) 조심하란 조언은 없으면서, 성적인 신체변화만 알려줘서 괘씸했거든요. 생애주기별 골밀도와 근육량 변화를 알려주는 게 살아가는데 훨씬 큰 도움이 됐을텐데 말이죠.
멋진 아내, 자녀교육에 성공한 어머니가 되고 싶나요? 그게 정말 100% 당신의 욕구라고 말할 수 있나요?
우리가 태어난지 얼마지나지 않았던 시점으로 되돌아가볼게요.
전 어릴 때부터 남성1:여성1 대응을 이어주려는 한국사회가 좀 낯설었습니다. 인위적이더라고요. 남자1:여자1로 짝지어주고, 짝 얼굴을 그려보래요, 자꾸만. 그리고 싶어야 그리죠. 어색해서 싫다구요.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끼리 노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면서요. 친구는 당연히 '여자'고, 애인은 '남자친구'라고 말하면 다들 알아듣습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친구가 존재하지 않는다'잖아요. 그러고선 어른이 됐더니 대뜸 여성과 남성은 대충 평등하다더라고요. 외우래요.
지금의 저는 과연 한국사회가 여자가 남자와 친구로 친해질 기회를 준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친하지도 않은데 어떻게 사귀고, 결혼하고, 성관계하고, 출산하고, 육아도 하나요? 관심 없어서 어색한 걸 부끄러워한다고 퉁칠 수 있어요? 그 불편함을 설렘으로 치환할 수 있어요? 격정적인 감정을 대화 대신 성관계로 푸는 걸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정말로? 전 아니더라고요.
저는 성공한 여성 직장인의 수식어가 '어머니로도, 직장인으로도 성공한', '워킹맘이지만 CTO인'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CTO(최고기술책임자)면 CTO인거죠. CTO가 비혼비출산 여성인 게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비혼비출산이니 주 40시간 이상 야근하는 게 당연한 장면을 그린다는 건 아닙니다. 이 또한 이미 현실에서 오래 전부터 일어나는 일이긴 합니다만...언젠간 2022년의 이 풍경이 구닥다리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혼잘여를 읽는 구독자님, 비혼비출산을 위해 반드시 어떻게 해야한다는 행동지침은 없습니다. 핵심은 당신이 여성이고, 비혼비출산을 쥐고 살아간다는 것. 구독자님이 스스로를 지키고, 그런 구독자님이 많아져서 여성이 편하게 숨쉴만한 곳이 되는 것.
그래서 혼잘여는 성판매자나 성폭행 피해자의 이야기, 출산 이후의 여성삶의 변화는 다루지 않습니다. 혼잘여는 비혼비출산 여성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오늘도 신나고 즐거운 하루가 되길 바랄게요!
다음에 또 만나요!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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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
'혼잘여는 비혼비출산 여성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라는 문장이 감명을 주는 선택지였어요. 조모부님께도 모부님께도 하물며 나보다 앞서 살아온 혼인한 여성도 애인 여부에 따라서, 행복지수가 달라지는 듯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무언가 계속 누군가 만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틈틈이 받아왔기 때문인 듯해요. '여자 혼자'라는 구를 살면서 쭉 들어왔기 때문일까요. 여기 여자 혼자로 살아가면서 듣고 싶었던 말을 이 뉴스레터에서 듣게 되어 기뻐요. 구닥다리가 될 체계에서 살아가는 의 용기 있는 이야기들은 전혀 구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혼자서도 잘 사는 여성들 (661)
여자 혼자 살아가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닌데, 꾸준히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함께 용기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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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전 결혼, 출산을 친정엄마한테 가스라이팅을 하도 당해서 결혼은 했는데 딩크로 살고 있어요. 한녀들이 가스라이팅하는 것도 진짜 무시못하는.... 사실 친정엄마가 짜증나서 도망(?)친 케이스같은데 애는 진짜 딱봐도 제가 노예행이라 안 낳으려는 심산이고 합의도 했고, 가사일도 거의 안하고 밥3끼, 청소 이런거 거의 안해요... ㅋㅋ 솔직히 가부장제 타파하려고 신혼때부터 망나니로 살았고 ㅈㄴ 싸워서 결론은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이혼안하고 사는... 근데 사실 눈만 뜨면 계산적으로 굴어서 그런지 행복감이 덜하네요. 좋은 사람인데 제가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그런건지... 한남들 ㄹㅇ 아무 것도 안하면 집안꼴은 돌아가야하니까 본인들이 해요. 예전부터 한녀들이 알아서 무급가사일노예를 자처해서 떵떵거렸던 것.... 솔직히 말하면 이 ㅅㄲ들 할 수 있는데 안한 것도 맞고요ㅋㅋㅋ ㄹㅇ 결혼 생활에서 갑을관계가 뒤바뀌어져야되고 차라리 평등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남 만났는데 마인드가 가부장제의 근본자체라고 생각이들면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는 멋진 여성이 되어야하는데... 말을 안 듣겠죠...? 어쨋든 각자 비혼 비출산 여성만의 행복감 응원합니다!
혼자서도 잘 사는 여성들 (661)
경제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계신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을게요! 꼭 쥐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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