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향의 재발견 4부

묻지마 칼부림, 예고 살인, 교권 붕괴.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서사시 <신곡>에서는 지옥(인페르노)을 육신없는 영혼들이 삶과 죽음 사이에 갇혀 있는 곳으로 묘사한다. 2023년 여름, 서울은 지옥일까.  연일 이어지는 사건사고를 접하면서 떠오르는 콘텐츠가 있었다. 바로 웹툰 <지옥>이었다.

🎏 바치오 발디니 : 지옥도 (1481년, 판화)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와 웹툰 <송곳>의 최규석이 뭉쳤다. 그들은 지옥이라는 서사를 중심으로 선과 악이라는 서브서사를 독자에게 반복제시한다. 선과 악이라니, 얼마나 고전적이고 종교적이면서 이원론적인 소재인가. 고전과 종교는 그렇다 치자. 이원론이라면 유럽애들이 신물이 나게 우려먹은 폭력적인 관념이 아닌가. 그럼에도 <지옥>을 주목했던 이유는 최규석이라는 기표 때문이었다.

최규석은 웹툰 <송곳>에서 대한민국의 구겨진 노동현실을 촌철살인의 대화법을 통해 풀어낸다. “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 인간의 누추한 욕망을 송곳처럼 찔러주는 부정어다. 부정어가 난무하는 웹툰은 독자에게 외면받기 십상이다. 여기에 노동운동이라는 소재가 합류한다. 불편함의 이중주인 <송곳>은 아이러니하게도 TV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진다.

 ♨️ 발설지옥 : 염라대왕이 지배하는 네번째 지옥

그는 2016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 상 글을 많이 넣을 수 없는 만큼 최대한 대사를 줄여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효과를 주려면 대사가 압축적이고 강렬해야 한다고. <송곳>은 대사의 힘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송곳>에서 노동자를 약자로 표현하지 않는다. 노동자나 권력자 모두 ‘시시한 자’라는 어법이 마음에 쏙 든다. 인간이란 태고의 시시함을 선함으로 포장해온 위악적인 존재니까.

환상만화가 아닌 현실만화에 대한 최규석의 눈은 이미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그린 <100℃>에서도 드러난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6월 민주항쟁 계승사업회 의뢰로 완성한 <100℃>에서 사회적 문제에 담을 쌓은 한국만화의 정체성에 경종을 울린다. 물론 허영만의 <오, 한강>이라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다룬 작품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노동소재는 흥미롭지 않다는 씁쓸한 현실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 웹툰 : 지옥 (등장인물)

연상호는 이미 <부산행>과 <반도>에서 세기말이라는 소재를 들고 나왔다. 보이지 않는 소재에서 보이는 현실을 끄집어내는 방식은 최초의 SF영화로 알려진 <달나라 여행, 1902년작>이나 <블레이드 러너, 1982>에서 확인가능하다. 인간의 표정을 한 달의 모습(달나라 여행)과 복제인간(블레이드 러너)의 등장은 새롭다는 전제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일종의 계시록으로서의 역할을 떠맡는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