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향의 재발견 9부

1980년대로 돌아가 보자. 만약 당시에 좌파에 관한 책을 출판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정식출간은 고사하고 다른 방식으로 책이 나왔다 해도 불심검문에 걸린다면 구치소로 직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백주대낮 신촌 번화가에서 전경(또는 사복경찰)에게 털려본 이들은 그 시절을 공감한다. 24시간 내내 자신을 감시하는 거대권력이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말이다. 

💊 불심검문 풍경 : 80년대 서울 시청거리 

좌파, 노동자, 계급, 사회주의. 대학 등굣길 대자보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던 용어, 익숙하지만 왠지 두렵고 갑갑한 현실을 암시하던 단어,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불사조 같은 존재다. 1830년대 유럽 노동자는 미성년자를 포함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그들은 유토피아를 꿈꿀 시간이나 여유가 없었다. 조직화가 불가능한 환경에서 노동에 대한 자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단어에는 어감이 존재한다. 유사어지만 어떤 단어를 택하느냐에 따라 독자의 여생이 좌우된다. 일이나 업무라는 표현은 비교적 일상적인 어감이다. 노동이라는 표현은 어떨까. 심각하고 무거운 어감에 속한다. 근로자와 노동자라는 단어도 복잡한 어감을 지닌다. 노조라는 단어 역시 비슷한 어감을 공유한다. 집요한 노조탄압의 역사와 이를 비하하려는 보수언론의 논조가 복잡함을 가중시켰다.

👕 버나드 길럼 : 우리 산업계의 수호자들

1891년 ‘노동헌장’이라는 회칙을 출간한 레오13세는 자본가와 사회주의 양쪽을 갈라치기 한다. 그는 고용주도 노동자의 복지를 책임지고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국가도 사회적 입법을 통해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글을 남긴다.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노조의 필요성이 레오13세의 입을 통해서 강조되기 시작한다. 노조가 권력으로부터 보호가 필요한 집단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자본주의국가는 결국 노동자 혁명을 통해 변화를 겪는다는 마르크스의 예언은 적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다양한 모습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1989년 소련의 붕괴로 마르크스의 유령은 출몰횟수가 줄어들었다. 마르크스의 영향권 아래 있던 러시아와 중국은 그의 논리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어가는 현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 영화 : 콘크리트 유토피아 

왜 저임금 노동자는 자본주의의 횡포에 무기력한 것일까. 이는 독재자, 국가, 무력, 다국적 기업, 미디어, 언론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종속변수가 위력을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간을 추가해보자. 저임금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노동에 할애해야 생계가 가능하다. 여가란 자본가 우선 순위로 제공되는 일종의 사치재다. 고로 마르크스 사상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은 의문점을 남긴다. 자본이 그 자리를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10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