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에세이 연작 <상호불가침독백> #4 - 폐허의 콜렉션

4주간 진행되는 BOKEH의 에세이 연작 기획.

2024.04.04 | 조회 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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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공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는 BOKEH입니다.

상호불가침독백


상호불가침독백이란?

3월 14일부터 4월 4일까지, 4주 간 매주 목요일 오후 6시 BOKEH의 에세이 연작 기획 '상호불가침독백'이 연재 됩니다. 매 주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BOKEH의 상욱/윤 에디터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상호불가침독백'이라는 제목처럼, 누구에게도 침범 받지 않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담아 전해드립니다.

 


#4 폐허의 콜렉션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이런 시를 인용해본다. 내가 찾은 보금자리마다 폐허가 됐다.** 이런 가사를 인용해본다. 세상의 모든 마지막 화를 떠올려본다. 꼭 해피엔딩이라는 법은 없지만 어쩐지 새드엔딩이 익숙한 사람들이 있고, 세상의 모든 새드엔딩을 지나온 자리는 폐허가 된다. 오늘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 <폐허의 콜렉션>을 부제로 빌려왔다.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온 이번 <상호불가침독백>에서 징그럽게도 충실히 수집해온 두 에디터의 콜렉션을 공개해본다. 우리 안의 폐허에 닿아.***

* 황지우, 뼈 아픈 후회

** 피아노 슈게이저 <폐허>

*** 체리필터 <내 안의 폐허에 닿아>

#4 서문: 윤


첨부 이미지

 ‘언젠가 지금을 그리워하겠지’ 나는 이런 문장을 자주 생각한다. 내 오랜 취미 중 하나는 로드뷰 산책이다. 로드뷰에는 시간을 설정하는 기능이 있고, 내가 원하는 년도로 변경한 후 그 당시 촬영된 장소로 갈 수가 있다. 어릴 때부터 ‘상실’에 취약했던 탓이다. 초등학교 3학년, 날 때부터 살던 동네의 재개발이 시작됐다. 그 이후 내 주변을 이루는 일상은 절대 영원히 존재하지 않으며 삶이라는 건 영영 그리워할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굴었고 새로움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집의 인테리어가 조금이라도 변하면 슬퍼했다. 이전의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던 스무살에는 알게 되었다. 상실과 죽음이란 이미 내 눈앞에 닥쳐온 불편한 진실이었다.

 <상호불가침독백>의 1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음악가 이랑의 노래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가사 이야기를 한 것처럼 오늘 마지막 화에는 이랑의 <환란의 세대>를 구조적으로 마땅히 등장시키고 싶다. ‘귀한 내 친구들아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그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선수 쳐버리자.’ 나는 그렇게 다정한 가사는 처음 들었다. 동시에 다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깔끔한 멸망을 기원하는 일이 그 어떤 이별보다 달콤한 냉소 같다. 사람도 동물도 심지어 공간도 하루하루 죽음으로 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면 허무해진다. 우리 집 강아지를 앞으로 얼마나 더 볼까? 할머니와 얼마나 더 대화할 수 있을까? 부모님의 몸은 언제 작아져서 허리가 굽게 될까? 이런 상상에 금세 매몰되어 버리고 마는데, 그럴 때면 나도 차라리 운석이 떨어져 지구가 멸망하거나 핵폭발로 세상이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편리하고 무책임한 가정을 해본다.


 상욱이 ‘이별’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고 했을 때, ‘이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나 스스로 물었다. 보편적으로 이별은 슬픈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고 슬픈 이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식의 반박을 해주고 싶지만 나는 여전히 이별이 슬프고 상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하여 헤어짐이 두려워 이별하기 이전에 먼저 도망을 가는 식으로 나를 방어하는 철없는 짓을 자주 한다. 그러니 귀한 이들아, 그 시간이 오기 전에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상욱

첨부 이미지

 나의 뿌리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 어디에 누구와 있어도 일정한 깊이의 우울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 기분이 어떤 발병과 완치라는 개념이 있는 병증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나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 불행하게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사사로운 감정을 담담하게 받아내려 노력했고, 하염없이 실패했다.

 실패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잃어버린 모든 관계들이 실패로 느껴진다. 권투 선수는 많이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패배의 숫자가 적을수록 좋은 커리어를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링 위의 기준으로 내가 겪어온 관계들의 승패를 따져보자면 매 순간 치열하게, 주먹이 으스러지고 얼굴이 찢겨 피투성이가 되고 어금니가 박살 나도록 싸웠지만 평생 챔피언은 커녕 그 근처도 가지 못했던 선수의 기록 같다. 영광은 어디에 있는지 늘 고민한다. 죽을 만큼 상처받고 상처주고 이해하고 노력해봐도 평생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으면 어쩌지? 얄궂게도, 어떤 것들은 오래 생각 할 수록 멀어진다.

 될 수 있는 것과 되고 싶은 것을 고민한다. 너무 거창한 것들은 바라지도 않는다(이를테면 NBA 선수가 되는 것 같은). 다른 사람들은 다 쉽게 해내는, 당연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 나는 절대 가질 수 없거나 가지기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될 때 나는 당황한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내가 세상에 겉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다음의 일들이 나를 당황케 한 남들 다 하는데 나만 못하는 일의 예시들이다:

밤에 잘 자고 아침에 잘 일어나기

말의 속 뜻 파헤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내게 좋은 선택들을 하기

하지만 이게 쉬웠다면 정신의학과는 지금보다는 먹고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헤어짐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서야 이번 주의 주제를 구색이라도 맞춰보려 급하게 덧붙이는 것은 아니고내가 떠날 수 있는 것들과 떠날 수 없는 것들을 구분하는 일은 중요하다. 특히나 언제 어디에서도 비슷하게 우울한 사람들은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기에 더더욱. 하염없이 떠나고 싶어하는 그 기분을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안 태어나는 수밖에 없기에, 내가 떠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보는 일은 만성적인 우울감과 겉도는 기분을 잠시나마 누그러지게 한다. 적어도 내가 떠나서는 안 될 곳들을 늘 지키고 있다면 나는 꾸준히 울적해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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